또한 출석 증인들의 태도는 법치주의 근간과는 전혀 무관한 입장을 견지한데다, 마치 고강도 합숙훈련인양 한결같이 일사분란하게 부인하는 모양새이다. 아예 불출석 하는가 하면, 마지못해 끌려나온 신세라 선서조차 거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정조사특위’ 냉소주의 팽배
야권은 새누리당의 온갖 훼방과 트집 잡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는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며 애써 자평한다. “여당은 진상규명 의지는커녕 철저한 수호견 역할을 맹렬하게 수행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과 축소 수사의 몸통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국정조사가 마무리됐다.”는 야권의 맹공은 집권당의 한계를 생생히 노정시킨 셈이 되었다.
금번 국정원 국정조사에 대해 민의는 어떤 시각을 견지하고 있을까? 2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는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활동에 70%에 가까운 국민들이 불충실했다는 근거의 데이터를 내놓는다. 경찰이 대선 목전에서 발표한 수사 내용에 대해서는 과반이 넘는 56.6%의 응답자들이 ‘특정후보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할 목적으로 증거를 조작해 허위로 발표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권의 집요한 무력화 시도와 민주당의 열악한
정보력 부재에 하나마나한 청문회로 전락
과잉충성과 법리적 ‘정면대결’
지난 19일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서 한 경찰간부의 스타탄생은 부자연스러움의 극치이다. 그 주인공은 댓글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39) 前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現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다. 새누리당 특위 위원 9명의 집중 포화, 사실상 '1대9'의 싸움에서 올곧게 진술한 권은희 과장에 대해 격려가 연신 쏟아진다.
국회의원들이 그녀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일까? 권과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경찰에 특채 투신한 케이스여서 법률과 수사에 전문성을 겸비하였다는 점에서 소신과 강단은 이미 예고된 것에 다름 아니다.이날 청문회에서 권과장을 영웅으로 조연들은 다름 아닌 새누리당 의원들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의혹 사건 청문회에 출석한 권 과장은 2012년 12월 16일 밤 11시 서울경찰청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얼마나 대선에 영향을 미쳤겠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얼마나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이었음은 분명하다고 판단한다."고 딱 부러지게 답했다.
이 뚝심 발언이 여권의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패착을 두기 이른다.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청문회 장소인데도 새누리당 조명철의원이 작심한 듯 지역감정을 촉발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 엄청난 후폭풍을 불렀다. 지역주의 발언 그 자체만도 초대형 악재인데, 지역주의와 무관한 탈북자 출신의 발언은 정권에 과잉충성이라는 여론의 뭇매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조 의원이 던진 "권 전수사과장은 광주경찰이냐? 대한민국 경찰이냐? "라는 해괴한 질문에 누구든 조소와 경멸의 화살을 날렸을 것이다. 이에 권 과장의 "경찰은 누구나 대한민국의 경찰이라는 즉각 응수에 후회막급이었을 것이다. 일부 보수단체가 "권 과장의 발언은 소신이나 양심선언이 아니라 호남 운동권 출신이 특별한 '의도'를 갖고 한 폭로"라고 비난한 것은 너무 아찔하게 다가온다.
본인도 탈북 출신으로 심적인 고통이 적지 않았을 텐데, 자살골에 대흥역을 치르는 것을 보면서 “옳지 못한 일을 보호해야 하고, 옳은 일을 폄훼해야 하는 그는 이미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조의원은 ‘국민을 경찰을 광주’를 욕되게 했다.”는 혹독한 비난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비애감이 한층 엄습한다. 민주당이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여당 대표가 유감을 표명했지만, 지역민들의 분노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권 과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은 금년 초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과 관련해 '외압'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부터이다. 권 과장의 '윗선 축소ㆍ은폐 개입'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수서경찰서에서 수사팀 실무책임자로 2개월 동안 수사를 진행했다.
권과장의 법률적 논거가 뒷받침된 소신발언에 세인들은 왜 뜨거운 반응을 보일까?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이익을 얻거나 혹은 진실을 말할 때 불이익을 얻을 경우다. 그러나 권 과장에게 그럴만한 동기의 부재가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권 과장의 언행은 대한민국의 경찰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보여줬다는 것이 경찰 내부의 정제적 평가인 만큼 경찰 수뇌부는 겉으론 불쾌한 표정을 지을지언정 속으로는 진정 안도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 전향적 대책마련을
내부 고발과 제보가 얼마나 지난한지는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폭로한 전 현직 국정원 직원 사건에서 그 고충을 가늠할 수 있다. 이들은 재판에 넘겨졌고, 조직에서는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야권에서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보호 요청을 했지만, 현행법에 따라 공익침해행위로 규정되지 않아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비단 미국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美 군사법원의 매닝 판결이 이를 생생하게 예시한다. 미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이 2010년 이라크에서 정보 분석관으로 복무하면서 70만 건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정보 보고서와 국무부 외교 기밀문서를 빼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한 사건으로 지난 21일 美 군사법원은 매닝에게 징역 35년형을 선고했다.
최근 외신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미국 정보기관의 개인 정보 수집 활동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다. 스노든은 얼마 전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추천받았다. 현재는 러시아 정부의 1년간 한시적 망명 허용으로 겨우 은신처를 마련한 딱한 처지이다.
지난 2010년 ‘위키리크스’에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 건을 공개한 이후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공격을 받다 줄곧 수배신세가 된 ‘어산지’ 또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제보나 폭로는 조직의 이단자나 국익을 저버린 매국노로 낙인찍힌 지 오래이다.
모처럼 가뭄에 단비격의 희소식이 들린다. 지난 7월 22일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18년 만에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1995년 이지문 시의원이 낸 `서울시 공익정보제공자 보호 등에 관한 조례 청원`이 상위법령이 없다는 이유로 본회의에서 부결된 이후 18년 만이다. 금번 서울시 조례는 공익신고 뿐 아니라 부패신고까지 국민권익위의 표준안을 확대하고, 공익제보지원위원회를 단순 자문위원회에서 의결위원회로 위상을 강화한 것이 전향적이다.
이의 후속조치로 서울시에는 공익제보전담팀이 신설된다. 전담팀은 서울시는 물론 서울 소재 기업 등에서 올라오는 내부고발 접수와 처리를 담당하며, 제보를 한 뒤 발생하는 소송비용과 병원비를 후원하며, 제보자가 사직할 경우 3년간의 월급도 지원한다.
얼마 전 검찰은 원전비리 수사에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검찰은 원전비리 내부 신고자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나 구형 감형 등의 지원책을 내세운 '원전비리 제보자 보호 및 자수자의 형 감면 방안'을 마련하여 6월초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 6월 27일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신고자 보호를 강화하고 공익신고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바 있다.
미국은 내부고발자에 대해 부당한 배치전환, 승진봉쇄, 강제퇴직 등을 예방하는 철저한 보호주의 원칙을 강제하고 있다. 공익신고자의 신분을 철저히 보장하고, 내부 비리에 가담했더라도 처벌을 면하거나 감해주는 지원책이 없으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신고자는 아예 씨가 마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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