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Newsis | ||
대한민국에서 삼성그룹은 일개 재벌그룹 그 이상으로 위상을 지녔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삼성그룹, 특히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기업군의 일등 대기업임에는 분명하지만, 역시 국내 재벌기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영향력과 위상은 단순히 기업을 넘어 정치, 사회, 외교 등 전반에 이른다.
이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초기 삼성을 두고 “한국의 권력이 정치에서 경제로 넘어갔다”고 말한 바 있으며, 최근 외국의 한 이코노믹지는 세계적 영향력 순위에서 삼성의 오너 이건희 회장의 영향력이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다고 밝혀 삼성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현재 경제적 위상의 상당부분을 삼성그룹에서 감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점에 비춰 우리나라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삼성공화국이라는 단어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같은 삼성의 영화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삼성그룹 신경영 20주년 기념행사
삼성그룹은 지난달 28일 신경영 20주년 기념행사를 서울 장충동 소재 신라호텔에서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이날 기념행사와 관련 삼성그룹은 “당시 선포된 신경영 이념은 오늘날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의 기초가 됐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널리 알려진 신경영 선언은 당시 김영삼 정부의 군사문화에 대한 개혁 드라이브와 맞물리면서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또 당시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 회장이 선친 故 이병철 회장 체제의 2인자 소병해 비서실장을 삼성생명 부회장으로 발령내는 등 선친의 가신세력을 모두 일소한 후 이건희 체제의 출발을 공식 선언한 자리라는 점에서 신경영 20주년 기념행사는 사실상 이건희 시대 개막 20주년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행사에서 이 회장은 “앞으로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며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초일류기업을 향해 다시 한 번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한편, “지금까지 우리는 큰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에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며 위기론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이 회장은 환한 표정, 밝은 메이크업, 세련된 옷차림 등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위기론, 창조경제, 사회책임을 강조한 연설에서도 자신감있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이 회장은 가수 조용필을 직접 초청하는가 하면 그의 공연 이후 직접 단상에 올라가 포옹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도 선보였다. 이는 자신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킴으로서 항간에 떠도는 건강 악화설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신경영의 눈부신 성과
삼성그룹의 신경영은 지난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시작됐던 새마을운동과 경제부흥에 비견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글로벌 3류 전자기업에 불과하던 삼성이 지금은 스마트폰 부문 세계시장 50%, 메모리 반도체 시장 30% 이상을 장악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섰다. 당시 구멍가게 삼성이 보고 배웠던 일본의 소니 등은 20년이 지난 지금 모두 도태되어 사라졌다. 현재 세계인들의 인식 속에 스마트폰은 애플과 삼성, 반도체는 인텔과 삼성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3류 구멍가게 수준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놀랄만한 위상 변화인 셈이다.
세계 경영인들은 삼성의 이같은 변화를 전적으로 이 회장의 개인 리더십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충격적인 휴대폰 화형식을 벌이며 전 사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줬다. 이 때 불에 탄 휴대폰들은 당시 기준으로 5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재무재표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2012년 실적이 1999년 실적에 비해 매출액 기준 121배, 당기순이익 기준 123배 성장했다.
또 삼성그룹의 신경영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삼성 경영의 패러독스’라는 주제로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일본의 우익 학술단체 ‘일본 토론 연구 학회’가 ‘세계 최강 기업 삼성이 두렵다’라는 단행본을 출간하며 일본기업인들에게 삼성에 대한 경각심과 벤치마킹을 주문했다. 불과 10년 만에 이 정도면 대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삼성의 이같은 성공 요인에 IMF 외환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1998년 말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는 삼성그룹과 이 회장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줬다.
이 회장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친정체제 강화에 나섰다. 당시 이 회장의 신경영 행보는 질 경영 선언, 부채경영 제고와 그룹 내 당좌자산 확충, 경영진 세대교체와 자율경영 확대로 요약된다. 이 중 부채경영 청산은 그룹 내 가신세력과 재계에서 많은 비웃음을 샀다. 당시 기업들은 은행 대출로 발생한 부채를 갚아야 하는 빚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은행은 약정된 이자만 제대로 지급하면 언제든 상환기한을 연장해줬었고 재벌들은 하나회 세력의 권력자들과 밀착을 통해 언제든지 나랏돈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신경영 이후 상환 기간 내 대출금 상환 등 정상적인 경영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삼성그룹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주도 아래 진행된 강제적 M&A를 피해간 유일한 재벌이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삼성그룹과 삼성 직원들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대다수 기업과 가정을 수렁과 고통으로 밀어넣었다. 많은 기업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직원들을 대량 정리해고하면서 가정이 파괴됐고 중소기업이 도산하면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재벌기업들도 정부의 강압적 빅딜과 정책적 지원 속에 간신히 숨만 쉬는 상황에 내몰렸었다.
이같은 과정에서 이 회장의 신경영은 책 속에서만 경영을 배운 치기어린 소영웅주의라는 평판을 하루아침에 앞날을 예견하고 준비함으로서 위험을 기회로 바꾼 선각자적 안목으로 칭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회장과 삼성그룹은 국민들의 뇌리 속에 한국경제의 부흥을 이끌 소방수이자 준비된 영웅으로 자리매김 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2년 삼성에버랜드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까지 이 회장은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삼성그룹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재벌기업으로 인식됐었다.
![]() | ||
그러나 삼성의 이같은 성공은 삼성만의 성공이었던 것이 큰 문제다.
2005년을 기점으로 삼성그룹과 이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공공의 적으로 지목받게 된다.
원인은 크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로의 차기 후계구도 확충 과정에서 발생한 편법적 탈세, 시사저널 사태로 불거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부적절한 행보, e삼성 등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 부각을 목적으로 하는 무리한 기획이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됐다.
하지만 당시 삼성그룹을 주도해 온 이 회장 일가나 그룹 경영을 책임졌었던 이학수 당시 부회장 등 구조조정본부 인력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범죄의식이나 죄책감 등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경제학계 전문가 A씨는 “삼성그룹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발행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주주 등극은 결코 잘한 것도 아니며 불법적 요인이 명백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당시 재계 상황에서는 보편적인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차명 주식 등으로 넘겨 받고 세금도 거의 납부하지 않았던 것에 비춰보면 나름대로 합법적인 테두리를 지키려 했던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 경영진들은 국가부도 위기를 계기로 기업에 대한 대국민 정서가 바뀌었다는 것을 간과했고 그 결과 치명적인 댓가를 치러야만 했다.
A씨는 “만약 이재용 승계 작업이 IMF 이전에만 진행됐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환사채의 편법 발행과 배임 및 세금탈루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강한 문제제기가 있더라도 대국민 이슈로, 정치적 현안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2000년대 초반에 벌어진 이같은 실책이 삼성그룹으로 하여금 한국경제를 사실상 지탱하는 공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싸늘한 시선과 감시의 눈초리를 받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이 회장의 뛰어난 경영성과가 기대와 자랑거리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양극화와 승자독식, 부의 편중 등 사회적 건전성을 해치는 암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이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세간의 인식은 ‘삼성공화국’이라는 단어에 함축할 수 있다. 삼성공화국은 삼성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삼성의 막대한 영향력과 독주에 대한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삼성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극복하고 다시금 경제를 살려나갈 지도자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삼성과 이 회장에게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세금탈루 및 편법증여 논란은 도덕성과 신뢰에 치명적인 흠집으로 깊이 새겨졌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오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스마트폰 등 세계 IT시장을 장악하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공헌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삼성사태 이후 불거진 삼성의 치부
이때부터 삼성그룹 내 무노조 경영,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근로자들의 혈액암(백혈병) 발병 등이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그룹에서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해고된 사람들에 의해 그룹 차원의 도청과 협박과 회유 시도 등이 폭로되고 심지어 납치, 감금 주장까지 제기됐다. 특히 민주노총 산하에서 삼성노조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김성환 위원장은 “삼성은 노조 결성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납치해서 끌고 다녔다”며 “노조 포기 각서를 쓰도록 압박하고, 회사는 무노조경영 방침이니 사표를 쓰도록 강요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삼성전자 근로자들의 백혈병 파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환경부 산하 환경공단과 환경과학원에서 백혈병 연구팀을 운영해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위기론 해결책은 품격경영
삼성그룹의 위기론, 반(反) 삼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삼성그룹이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회장은 이번 신경영 20주년 기념사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바로 “품격있는 삼성”이다.
이와 관련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진행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이재용 띄우기는 결코 품격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며 “이건희 회장이 제시한 품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삼성에 대한 시선이 따뜻해질지 아니면 더욱 차가워질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호에 계속>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