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Newsis |
10년이 거의 다되어가는 어느 날 추앙추는 먹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붓을 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단 하나의 선으로 게를 그려냈습니다. 그림 속의 게는 마치 살아있는 듯 완벽했습니다.
세상사는 겪어야 알 수 있고 인생은 살아봐야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큰소리로 떠들어도 내가 겪고 내가 살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세상만사에는 저마다 때가 있습니다. 때가 차야 변하고 변해야 한계를 넘어 거듭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속이 영글어야 벌어진 밤송이에서 토실한 밤알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무언가를 이루고 누리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채우고 나누기를 반복하며 기다림과 인고의 순간에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과에 연연하며 매사를 서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낚시를 가면 대어 낚을 생각부터 하고, 산에 가면 얼른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겨우 일주일 운동을 하고는 효과가 없다며 안달하고, 배우고 읽어도 남는 것이 없다며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공부도 게을리 하고 책 읽기도 꺼립니다. 마치 모든 일에 시작이 곧 결과인 것처럼 강박증을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빨리’입니다. 빨리빨리 어른이 되어서 빨리 돈 벌어 부자가 되고 싶고 빨리 성공하고 싶고 빨리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습니다. 알다시피 빨리빨리 한다 해서 빨리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듯 결과에만 치중하다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들에 소홀하게 되고, 서두르다보면 되어가는 중에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삶의 소중한 질료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추앙추의 이야기는 자칫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더 깊이 음미해보면 마음에 이는 묘한 감동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추앙추는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런 그가 게 하나를 그리지 못해 5년을 허송세월하고 그것도 부족해 5년을 더 요구했을까요? 당시 사람들 역시 게 그림쯤이야 쓱쓱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릴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추앙추를 손가락질하며 영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추앙추는 본연의 충실함에 흐트러짐 없었습니다. 실제에 가까운 살아있는 게를 그리기 위해 마음으로 수도 없이 그렸다가는 지우고 또 그렸다가는 찢어버리며 5년을 보내도 족함이 없자 다시 5년을 더 요구했습니다. 황제가 인정할 정도로 능력 있는 추앙추가 어쩌면 경시할 수도 있는 게 그림 하나에도 이와 같이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얕은 생각의 사람들 눈에 추앙추의 이런 참모습이 보일 리 만무했겠지요.
한순간에 그려낼 수 있기까지 보낸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추앙추는 게만 그렸던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비워 오직 게와의 혼연일체에 전념했습니다. 자신이 다 사라진 자리에 오로지 게만 살아 꿈틀거리자가 비로소 단숨에 그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충만해지고 싶다면 자신을 비워라.”(도덕경) 이 말의 뜻을 추앙추는 온몸과 마음으로 읽고 행했습니다. 엄청난 정성을 들이고도 그를 믿고 10년을 기다려준 황제는 추앙추의 이런 마음을 엿보았던 모양입니다.
인생은 길고긴 꿈과 같습니다. 길고 긴 꿈이니 만큼 때로는 잡몽(雜夢)에 끄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깨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를 알게 된다면, 그를 천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삶의 모든 과정이 눈물겹도록 소중해집니다. 설령 고단한 언덕을 오르고 시련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사람은 본시 소중한 것이 생기면 그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려는 의지가 발동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별의미가 없으니 연연하지 않게 되고 연연하지 않으니 서두르지 않을 테고 서두르지 않으니 삶의 매순간순간이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게다가 즐겁고 좋아하는 일은 그만큼 잘하게 되어있지요.
천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바로 알고 그 본성대로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물의 어떤 변화에도 휩쓸리지 않고 본성과의 조화를 이루려면 사심(私心)을 지우고 빈 배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길에만 충실해야 합니다. 삶은 깃털처럼 가볍기도 해서 제 길이 아니다 싶으면 조금만 고단해도 열정이 사그라들고 조금만 위태로워도 쉬이 포기하거나 놓아버리게 되니까요. 10년에 가까운 마음살림이 있었기에 추앙추는 세상에 둘도 없는 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조급하면 가진 것도 잃게 됩니다. 서두르다보면 가진 것도 누리지 못합니다. 자신의 때에 이를 때까지 지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열정적으로 꾸준히. 바로 길고 긴 꿈을 상대하는 묘책입니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