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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산업의학과 전문의)ⓒ일요주간 |
노동자 건강권 확보..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권리이며 의무
정부·기업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아닌 노동자를 위한 법안 필수
[일요주간=이희원 기자]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는 9만2,000여명으로 하루에 근로자가 5명이 숨지고 250명 가까이 부상을 입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산재 사망률 1위로 이른바 ‘산재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에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 운동은 확대되고 있지만 노동 현장의 요구에 비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렇듯 노동안전보건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25년간 안전보건을 위한 한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원진레이온 사태부터 근골격계질환센터 건립,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최근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까지, 바로 산업의학전문의이자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주 ‘2014 노동자건강권 포럼’ 개최를 앞두고 <일요주간>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의학실 임상혁 소장을 만나 노동안전보건의 과거와 현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전보건운동은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나하는 반문에서 시작됐죠. 원진레이온과 같은 노동현장에서 만난 그들의 현실은 실로 참혹하고 처참 했습니다”
1988년 한국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집단 중독 사태, 또 하나는 수은압력계 제조공장인 협성계공에 근무하다 수은중독으로 생을 달리한 고(故)문송면군 사건이다.
원진레이온은 비스코스인견을 제조하는 회사로 제조공정에 사용된 유해화학물질인 이황화탄소 배출로 수많은 근로자가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공장부지 인근 주민들과의 끝없는 마찰을 빚어왔다.
결국 공장의 가동이 중단됐고 해당 부지를 정부와 법정 관리인이었던 한국산업은행이 매각, 이를 건설업체인 부영 컨소시엄이 낙찰업체로 선정되면서 현재 8천여 가구가 넘는 거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원진레이온 사건이 드러난 88년부터 부지매각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이황화탄소 등 유해화학물질 환자들은 꾸준히 증가했고 사회적인 요구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정기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회의 방용석 의원이 “원진 부지 매각 대금 일부를 원진 전문병원의 건립과 향후 발견된 환자의 재해 위로금으로 써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후 원진직업병 전문병원의 건립을 요구하며 정부와 산업은행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온 원진공대위는 5차 협상에서 건립기금을 받는 데 성공하며 환자들의 보상금 일부를 적립해 모은 3억 원으로 녹색병원의 전신인 원진의원을 개원하는 데 성공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원진의원은 1999년 현재의 원진 종합센터 즉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복지관의 형태가 완성되면서 원진레이온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공대위 등에서 재단 설립 초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3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원진레이온 피해자 등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는 것, 두 번째는 원진 환자와 같은 직업병 피해자 재발 방지를 상담, 치료를 위한 연구소를 확립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원진 환자와 그 피해를 함께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한 복지관 설립이었습니다. 1997년 개원한 원진의원은 2년 후 현 원진 종합센터로 확장되면서 현 형태를 유지하게 됩니다”라며 설립 취지를 단계적으로 설명했다.
임상혁 소장은 “원진레이온 사태로 직업병을 얻은 환자는 900명이 넘어섰죠. 이황화탄소 등 유해화학물질의 중독은 쉽게 설명하자면 멀쩡한 사람을 한 순간에 ‘바보’로 만들어버립니다. 중추신경계의 장애를 일으켜 얼굴 신경이 마비되거나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죠. 원진사태는 아직까지 단일 사업장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직업병에 걸리는 사례로 남아있습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의대생 눈에 들어온 참혹한 노동계 현실
임 소장이 생소했던 산업안전보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원진레이온 사태가 발생한 1988년이다. 당시 한국은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노동운동에 대한 참여가 사회를 뒤흔든 때다. 학부시절 그는 “내가 과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나”는 고민이 머릿속에 항상 맴돌았다.
한양대 의대 본과 2학년이던 그는 현재 노동건강연대의 전신인 <노동과건강연구회>를 통해 원진레이온 피해 노동자를 만나 사례를 추적하게 된 것이 바로 그가 안전보건에 몸담는 촉매제가 됐다. 눈앞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이란 참혹하리만큼 비참했다는 게 그의 설명.
당시 전두환 대통령시절 산업안전을 위한 법은 있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은 일본의 법령을 그대로 가져와 명문화 시킨 것에 불과했다. 우리 현실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단순한 명문화에 머물렀을 뿐 이를 통해 보호받는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법망 역시 노동자를 위한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는 게 임 소장이 주장하는 요지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허울 좋은 안전보건법망의 사각지대에서 놓인 채 자신이 작업중 사용하는 물질이 유해화학물질인지 인지조차 할 수 없었고 작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안전장치가 풀린 프레스에 손이 잘려나가는 일은 다반사였다. 당시 노동자 현장은 야만적인 환경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 결국 당시 상황은 그를 ‘의사’라는 사회가 인정하는 화려한 직위를 버리고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위한 길을 걷게 만들었다.
원진레이온 사태와 함께 충격을 준 사건은 바로 고(故)문송면군 사망사건이다. 야간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상경해 수은 압력계 제조회사인 협성계공 노동자로 일했던 송면군은 작업 한 달 만에 수은중독으로 사망하면서 산업재해노동자장을 통해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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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안전재해에 대한 노동계의 현실은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에서 머물고 있다. 사진은 산업재해 사망자 추도 현장의 모습.ⓒNewsis |
임상혁 소장은 “당시 사업장으로부터 혹은 정부로부터 보호받아야할 어린 소년인 송면이는 ‘죽음’을 불러올 수 있는 열악한 작업환경에 노출된 채 자신의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직업병판정위원회가 세워졌고 ‘직업병’ 진단에 대한 회사의 위로금이 지급되면서 현재까지 천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직업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죠. 원진 레이온 사태와 송면이의 죽음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한국의 노동안전보건은 80년대에 멈췄을 겁니다. 아직까지 완성형이 아닌 제자리걸음인 부분은 아쉽지만 당시 두 가지 사건으로 직업병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리고 안전보건운동이 노동조합을 통해 ‘안건’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데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은 형태만 유지했던 법에서 정부 조직인 노동부에서 안전보건국이 신설됐고 산업안전보건 관련 전문의 자격이 도입되었다는 게 임 소장의 설명. 물론 아직까지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자를 위한 법안이 되기 위한 제자리걸음에 불과하다는 점은 아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원 없는 정부에 오히려 미운털
민간단체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운영 수익이 궁금했다. 아무래도 정부의 지원이 일정부분 있지 않을까라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임 소장의 대답은 “NO”였다.
임 소장은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민간단체에 지원을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죠. 정부의 연구 용역 수주가 있을 뿐이죠. 오히려 정부에선 연구소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연구소가 노동자를 위해 설립됐고 그들을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정치적인 색을 입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울 따름 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상한 균형 감각이 있죠. 노동자들을 위한 운동이라고 하면 정치편향이 있다고 여깁니다. 연구소 역시 이런 사유로 수천 만 원 대 벌금을 물었던 사례도 있죠. 지난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 후보가 병원을 한 차례 내원했습니다. 당시 안 후보가 만난 노동자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로 백혈병 진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안 후보 내원 후 건강관리보험공단으로부터 6천만 원의 사상 초유의 벌금을 냈습니다. 벌금을 낸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채 말이죠”
이어 임 소장은 “노동자 건강은 노동자 인권에 앞서 노동자가 누려야할 혹은 지켜야할 기본적인 가치입니다. 노동조합의 안전보건 사업 계획을 살펴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와 같은 소외된 계층과의 연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조합원 중심의 노조는 진정한 노동자를 위한 울타리가 되기 힘들죠. 노동자의 안전보건 영역이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연대는 물론 정부와 기업의 열린 시각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선 정부가 노동자를 위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에 관련 협회가 이를 처리하는 게 전부죠. 노동자를 위한 법안을 위해서는 노동자를 참여시키는 제도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여기에 비정규직 등 소외된 계층의 노동자를 포함한다는 조건도 넣어야하겠죠”라고 덧붙였다.
<다음호에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과의 두 번째 시간으로 감정노동자의 실태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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