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설정하고, 에너지강국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이후 시베리아 횡단철도, 가스관 연결 등 다양한 경협 사업 제안이 오갔음에도 실행단계에서 번번이 성과를 내지 못하며 여전히 논의 단계에 멈추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러시아를 대함에 있어서 러시아인들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 기연수 교수는 단기간 이익이 아닌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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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기연수 명예교수 ⓒ일요주간 |
-러시아 입장에서 바라본 주변 국가들의 우선순위는.
▲글로벌 차원의 국제무대에서 맞부딪치는 미국이 있지만 주변국으로서는 우선 중국일 수밖에 없다. 그 다음에는 일본, 그 다음 우리나라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아마도 경제적인 측면과 연결시켜 본다면 글로벌 차원에서도 중국이 러시아의 최우선 관심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러한 근거는 무엇인가.
▲푸틴 대통령이 2012년 5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6대 대통령) 가장 먼저 방문한 국가가 중국이었고, 후진타오 주석과 양국 간 영수회담을 했다. 이에 앞서 미국에서 열린 G8 회담을 의도적으로 불참한 뒤의 행보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존심 문제도 있었을 텐데 필요에 의해서 푸틴이 해외순방으로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이것만 봐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또 국익이라고 하면 보통 경제이익을 말하는데 일본은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우리보다 영토도 넓고 인구도 더 많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등 세계무대에서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차이가 나는 나라인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일본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측면이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 일본, 한국의 순서인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기분 나쁘다고, 서운하다고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의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G2 국가로 소위 글로벌 파워를 지닌 나라들이고, 일본은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경제대국이면서 지역 강대세력이다.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힘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다시 예전의 명성과 힘을 회복해 가고 있지 않나. 푸틴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을 누르고 포브스 선정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오른 것도 러시아의 글로벌 파워 복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러시아 관계 설정에서 바람직한 우리의 자세는.
▲그렇다고 우리가 러시아에 가서 아부한다거나 굽실거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러시아를 잘 알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어떻게 해야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주변국들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며 통일한국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통일을 언급하면서 경제적인 효과, 특히 국내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의 이점을 강조했는데 이 생각을 우리가 좀 더 넓혀서 국가적 차원의 관련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태스크포스팀(TFT)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즉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이 대내적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대박일 수 있는 가능성 까지를 충분히 연구·홍보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또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대러시아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면.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보다 더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제시한 조건이 우리 입맛, 요구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별한 손해가 아니라면 긍정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러시아를 돕는 입장이다’라고 보는 관점은 옳지 못하다. 지나치게 손익을 따져서 대증적 계산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원래 장사라고 하는 것은 이익을 보기 위함이 목적이나 지나치게 단기적 이익만 따지면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때론 손해를 볼 줄도 알면서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고 접근해야 한다. 러시아와는 달리 미국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미국 못지않게 러시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견지는.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나는 러시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자세가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에게 표하는 수준의 관심을 똑같이 보여주길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대통령이 미국 먼저 가고, 중국 가고, 일본도 가고 나서야 그 다음에야 러시아를 방문하는 관례에 대해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러시아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가져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마지못해 접근하는 방식은 거부한다는 뜻이다. 러시아라는 나라는 대인관계나 국제관계에 있어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고리대금업자식 손익을 따지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러시아인들은 예를 들어, 1년 전에 500만원을 빌려준 사람과 6개월 전에 500만원 빌려준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갚을 돈이 생겼을 때 꼭 먼저 빌려준 사람(1년 전)에게 먼저 갚지는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빌려준데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갚고자 할 당시의 상황에서 누가 더 가난하느냐, 누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갚는 순위를 정한다는 게 러시아인들의 기본적인 마인드다. 또 돈을 빌리고 이자를 갚을 때도 이자 갚을 돈이 있으면 원금부터 갚으라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정서라면, 우선 이자라도 갚으라는 것이 한국인들의 생각이다.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이자라는 개념을 특히 죄악시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의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버러지 같은 인간’이라고 살해한 이유도 기본적으로는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와는 원천적으로 다른 세계이다. 따라서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지나치게 우리의 순간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외교정책을 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러시아는 우리가 앞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있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국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한 나라이다. 중국 역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확실하게 G2로서 자리매김 하기 위해 계속 국력의 강화를 도모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공급을 확보 받지 못하면 경제발전이 뜻밖의 어려움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우리도 역시 식량을 비롯한 에너지 자원의 원활한 공급루트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우리의 운명임을 깨달아야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러시아는 중국 이상으로 국제무대에서 통일 한반도,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전략적 접근의 맥만 잘 짚는다면 중국보다 더 여유가 있고 경제적 손익만 꼬치꼬치 따지는 국가가 아니어서 의외로 보다 더 상호 긴밀한 국가 간의 관계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나라이다.
오늘날 공식적으로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라는 한·러 양국 간의 관계가 외교적 수사만의 차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전술과 전략의 차이가 무엇인가. 전술이 커다란 목적을 보면서 토막토막 끊어서 단계를 설정하는 것이라면, 전략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최종목표를 바라보는 것이다. 단순히 어느 한 토막에서는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커다란 이익이 될 수 있는 그런 전략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대할 때는 ‘자원 강국, 국제무대에서 힘센 나라’로서만 대하지 말고 전통과 문화 강국이라는 측면을 깊이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친구에게 “나는 네가 부자고 힘이 세서 좋아”라고만 말한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우정은 결코 아닐 것이다. 러시아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와 볼쇼이발레가 있는 나라이다. 그들이 이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매우 자주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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