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마디로,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란 소금답지 못한 소금이나 설탕답지 못한 설탕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짜지 않은 소금이나 달지 않은 설탕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짜지 않은 소금이나 달지 않은 설탕과 마찬가지로, 사람답지 못하면 사람은 아예 자신의 기본적인 역할조차 할 수 없으니.
그래서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란, 충분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못하는 사람이란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짜지 않은 소금은 더 이상 소금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없으며, 달지 못한 설탕도 더 이상 설탕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없듯이.
자신의 역할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도대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따라서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란 짜지 않은 소금이나 달지 않은 설탕처럼 있든지 없든지 전혀 상관없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 즉, 허무한 존재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아니, 혹시라도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차라리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더욱 나을 수도 있는.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훨씬 나았을 수도 있는.
더구나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결과는 모두 허무하게 되고 만다.
비록 매우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와 가치가 없는, 그저 허무한 존재가 하는 일이니 당연히 그 결과는 모두 허무하게 될 수밖에.
이런 형편이니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 ‘허무하다’, ‘괜한 짓을 했다’ 등의 푸념이나 잔뜩 늘어놓을 수밖에.
그러니 사람답지 못한 사람은 심지어 허무한 음식을 먹으며, 무엇을 하든지 하루 종일 허무한 말이나 행동을 하다가 허무한 잠을 자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것뿐.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쓰레기처럼.
심지어 더 이상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는 폐기물처럼 온갖 악취를 풍기는 등 주변을 잔뜩 오염시키면서.
2
짜지 않은 소금이나 달지 않은 설탕은 쓸 수 있는 곳이 없다보니 결국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진다.
즉, 자신의 자리를 강제로 빼앗기고는 내쫓기게 되는 것이다.
소금이나 설탕으로서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됐으니 당연히 이같이 될 수밖에.
이것이 바로 자신의 역할을 못하는, 즉, 허무한 존재들의 운명이요 숙명인데, 이는 사람의 역할을 못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결국 짜지 않은 소금이나 달지 않은 설탕처럼 뭇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그동안 아비로서의, 어미로서의 역할을 못했기에 자식에게 외면당하는 아비들이나 어미들처럼.
물론, 이들의 결말이 이같이 되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온통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만드는, 허무함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사람이 자리를 빼앗기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
원래 허무한 사람이야 있거나 없거나 어차피 마찬가지이니.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허무한 사람의 자리야 있거나 없거나 결국 마찬가지이니.
더구나 차라리 사라지는 것이 훨씬 나은 사람이라면 누가 내쫓지 않으려고 할까?
그런데 그에 앞서, 자신의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반드시 있어야할 자리를 못 지킨다는 말이 되며, 그중에는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그렇다보니 못하는 역할이 늘어날수록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그러니 사람답지 못한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마음 편히 머물지 못한 채 계속해서 떠돌게 될 수밖에.
이와는 달리, 사람답게, 사람의 역할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경찰관은 경찰관다워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듯이.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사람의 역할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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