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무노조경영’ 폐기 없인 빌게이츠 될 수 없다”
[일요주간=박은미 기자] “삼성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삼성의 경영방침이 다른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삼성이 다른 재벌 그룹은 물론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의 준거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범이 되어야 할 ‘국내 1위 재벌’ 삼성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보란 듯이 무시하는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노동조합 결성권, 단체교섭권, 단체협약권 등 자본주의 사회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가 삼성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삼성 예외주의’를 낳고 있는 것이다.”
조돈문 카톨릭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얘기다. 지난해 11월『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를 출간한 조돈문 교수는 이건희 체제의 악습이 폐기되지 않는 다면 이재용의 미래 또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건희 체제의 악습으로 ‘총수일가의 독점 세습’과 ‘무노조 경영 방침’을 꼽으며 이건희 시대가 끝나가고 있지만 이러한 악습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이건희 없는 이건희 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삼성에 악습을 거둬내고 세계 일류기업다운 사회적 책임과, 인권이 있는 기업으로 변할 수 있도록 분명한 조언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일요주간>은 지난호(469호)에 이어 조돈문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무노조 경영 방침’에 따른 노동 탄압 문제 등 삼성에 드리운 그늘에 대해 살펴봤다.
- 15년간 삼성 문제를 연구해 오셨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삼성노동인권지킴의 상임대표도 맡고 계시는데, 삼성노동인권지킴이란 어떤 단체인가.
▲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에 맞춰, 지난 2013년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했다. 국내 최초 삼성을 겨냥한 시민단체로 노동, 사회, 법조, 종교, 언론, 학술, 문화예술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뜻을 모아 자문위원회로 참여했다. 삼성노동인원지킴이는 노동자들의 인권 상담 및 조직 연대를 통해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삼성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감시해 이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출범 1주년인 지난 2014년 12월 10일에는 씨엔앰 고공농성 현장을 찾아 공동 집회를 열고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렇듯 삼성노동인권지킴는 노동권과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삼성을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의 삶이 보장되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매의 눈으로 감시할 것이다.
- 삼성노동인권지킴이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아시다시피 삼성은 노동조합이 없다. 지난 2011년 7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에 민주노조가 결성됐지만 대다수 삼성 계열사는 여전히 노조가 없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은 노동문제 연구자로서 상당히 수치스럽고 화나는 일이다. 삼성은 그동안 ‘무노조 경영·노조탄압·남치감금·직업병문제’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양산해 왔다. 하지만 국가도 언론도 아무도 삼성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삼성의 노동문화가 변화하게끔 계기를 부여할만한 제도적 장치조차 없다. 삼성은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데도 국가가 규제와 감시 역할을 포기하고 있으니, 삼성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저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더불어 삼성과 싸우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삼성이 일류 기업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의 노력을 통해 삼성은 국내최대 재벌기업이 됐고 노동자들 역시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서비스 수준은 세계최고인데도,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들은 협력업체를 사장들이 고용한 하청 직원이나 비정규직 직원들이다. 이는 상호적 공정성 측면에서 볼 때 매우 부당한 처사다. 삼성 총수 일가가 누리고 있는 거대한 부에 비해 삼성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못해 처참하기 짝이 없다. 지난 15년간 수많은 삼성노동자들을 만나며 안타까운 사연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또 하나의 가족’의 주인공인 故 황유미씨 모친은 ‘삼성전자에 노조만 있었더라고 자기 딸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에 입사한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이 안 되는 일이 많다고 하더라. 노조 만들기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납치·감금을 당했다고 털어놓은 노동자도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지금까지 무노조 경영 방침과 관련 한 번도 사법 처벌받은 적이 없다. 고용노동부나 검찰은 오히려 삼성을 감싸며 ‘삼성 예외주의’를 양산했고, 힘없는 노동자는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노조 설립을 포기해야만 했다. 삼성은 노조가 필요 없을 만큼 복지가 훌륭하다고 강조하지만 뒤에서는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해고·감시·회유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내부 문건에는 무노조 경영 뒤에 감춰진 삼성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문건에는 ‘비노조경영의 우월성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주입해라’, ‘노조가 발생하면 인사부와 협조해 조기 와해 시켜라’, ‘노조 탈퇴 및 설립취하를 압박하라’ 등의 노사전략 지시사항이 100페이지 분량에 적혀있다.
-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하는 삼성이, 정작 자사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힘을 쏟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투자’와 ‘비용’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질 국제공항에 내리면 호나우두가 삼성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현란한 전광판이 눈에 들어오며, 스웨덴 스톡홀름 중앙역에 가도 삼성전자의 광고판이 즐비하다. 이 밖에도 30초당 50억에 육박하는 미국 슈퍼볼 경기의 광고 등은 아무리 거금일지라도 삼성은 ‘투자’라고 여긴다. 베트남의 안면기형 어린이 수술을 위해 기부하고,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하지만 공장의 안전설비나 노동환경 개선 등에 들어가는 금액은 ‘비용’으로 치부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좀 더 인간적인 조건에서 안전하게 일하게 해줘야 하는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명과 맞바꾸는 것이다. 노동자가 위험물질에 접촉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들을 구비하지 않을뿐더러 위험물질의 목록조차 공개하지 않으니 어떤 물질이 위험한지 노동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노동자은 신체에 닿는 물질들에 대한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한 채 급여의 대가로 생명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팀 간의 경쟁을 유발해 기계의 안전장치를 센서를 작동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일해 생산성을 올리게끔 노동자를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안전장치의 센서가 작동하지 않다보니 노동자의 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기는 상황이 발생하는 일쑤다. 만약 이 같은 상황에서 센서가 제대로 작동됐다면 위험을 감지한 기계가 멈춰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작업속도는 느려져 결과적으로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게 삼성의 논리다.
- 삼성 백혈병 사건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이후 직업병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삼성은 여전히 ‘산재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 삼성 노동자 한 두명이 백혈병이나 직업병으로 사망하는 것은 실수나 단순 사고 혹은 개인의 지병일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수백에 이르는 사망자들이 발생하는 것은 ‘사고’가 아닌 ‘살인’이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자매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에 제보된 통계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삼성노동자 중 약 233명이 백혈병 등 산업재해에 걸렸고 그 중 99명이 이미 사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나오는 위험물질로 인해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데도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자 애쓰는 삼성의 행위는 살인에 가깝다.
- 지난 25일 삼성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故 김경미씨가 故 황유미·이숙영씨에 이어 세 번째로 항소심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28일에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과 반올림의 면담이 열리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사회적 분위기를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 ‘또 하나의 약속’ 이후 반도체 산재 사망이라는 이슈가 계속 이어져갔다. 삼성의 자발적인 변화의지보다는 사회적으로 관심이 이어지면서 삼성이 반올림과의 협상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삼성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을 비롯해 반올림이 근본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은 재발방지책이라는 점이다. 삼성의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은 물론이고, 앞으로 환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확실히 해달라는 거다. 하지만 삼성은 ‘그간 근로자 안전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다’며 여전히 노동자들과의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하루빨리 보상 문제를 마무리해 갈등이 해결되는 듯한 모습을 메스컴에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확실한 재발방지대책 없이는 저를 비롯한 반올림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변화가 없다면 교섭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이재용의 삼성이 선대회장부터 내려오던 ‘무노조 경영’ 방침을 깨뜨릴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 물론 이건희 회장 체제때부터 내려오던 ‘무노조 경영’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의 전향적 입장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과 다른, 좀 더 발전된 CEO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꼭 변해야 한다. 삼성의 경영승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치달은 만큼 삼성의 또 다른 그늘인 노동 탄압 문제를 거둬내는 것이야 말로 이재용 부회장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임이 분명하다.
앞으로 삼성이 더욱 빛나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이 경쟁해야 하는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 등을 주목해 보자. 빌게이츠는 어린이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단순한 기부행위 아닌 기부금액이 어떻게 쓰이는 지 직접 확인하고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는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어린이 결핵 백신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현실적인 문제점을 인지하기 위해 세계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공부했다고 한다. 이렇듯 차별화된 인권정책으로 전 세계를 아우르는 빌게이츠는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elesse oblige)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스티브잡스 또한 모든 제품마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을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한 따뜻한 휴머니스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특정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과 휴머니스트까지 지니고 있는 이런 부분을 이재용 부회장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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