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21)
김대판
홋카이도 히다카산맥 다이세쓰산
산 속으로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산 속은 가을을 재촉했다.
108특공대 포로를 신문하던 호시노 소령은 반대로 포로가 되어 땅굴 속에 갇혀 있었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호시노는 흑벽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곤 했다.
통역관으로 이곳까지 온 김나라 중좌는 6살 때 북송선을 탄 재일교포 출신이었다. 그는 할아버지 덕에 혁명 유자녀가 되어 평양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후 통역군관으로 군 생활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김나라 중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
급성폐렴에 걸려 3살 된 동생과 함께 오사카에 남았다가 결국 폐렴으로 죽었고, 동생의 소식은 알 수 없다고 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었다.
짧은 순간 옛 기억이 바람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일본 장교를 포로로 잡고 마주보니 그는 마음이 오히려 울적해짐을 느꼈다. 김나라 중좌의 본격적인 신문이 시작되었다.
“흠. 일본제국주의 군관이라, 귀관이 우리 인민군 특공대를 조사했다고? 조선말을 능숙하게 한다고. 그래 그럼 시작하지. 신문의 순서는 귀관이 잘 알고 있겠지. 고향이 어디인가?”
“오사카시 이쿠노쿠.”
호시노 소령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는 처음 대하는 김나라 중좌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오사카?”
김나라는 오사카라는 지명에 귀가 솔깃해졌다.
“학교는 어딜 다녔지?”
“오사카 법정대학, 전공은 정치학, 부전공은 조선어를 했소.”
“자위대 입대는 언제 한 거요?”
“대학 졸업 후 간부 후보생으로 조선어 통역관으로 들어갔소.”
“가족은 어떻게 되오?”
판에 박힌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을 하던 호시노는 가족 물음에 입을 다물고 가만히 물방울이 떨어지는 토굴 천장으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 친어머니께서는 일찍 돌아가셨소. 내가 3살 때였소. 그 무렵 일본 사람과 결혼해 일본으로 귀화해서 살던 평양 아주머니가 나를 키웠소. 그 분이 지금의 어머니요. 토굴 안에서의 분위기는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김나라는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이 강하게 떠오르게 했다.
“그래, 그럼 넌 조선 놈도 일본 놈도 아니구나.”
옆에서 기록하던 박 대위가 빈정대듯 말했다. 호시노 소령이 그를 쳐다보자 박 대위는 흥분이 되어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족보에도 없는 천황이라는 자를 등에 업고 그 이름으로 힘없는 나라를 짓밟은 놈들이지.”
“이보시오, 군관. 나는 일본 자위대 장교요. 원칙에 의한 질문과 포로에 대한 처우를 바라오.”
“너는 포로가 아니라 인질이다. 잡히면 그날로 자결을 해야지. 비겁하게 군인이 무슨 포로라고 자기 입으로 내뱉는단 말이지. 당신 조상들은 너 같지 않았어. 군인으로서는 훌륭했지, 아시아를 다 잡아먹었으니까. 그렇지?”
성격이 다혈질인 박 대위가 면전에 대고 윽박질렀다.
“그런데 말이지, 아주 악독했고 치밀했고 무자비했지. 반대로 우리 조상들은 순수했고 한 편으로 멍청하기도 했지. 결국 전쟁이란 건 말이야, 무자비하고 악독해야 승리를 한다는 거지. 그게 전쟁 승리의 원칙이다.”
김나라는 박 대위를 제지하려 했으나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할 때는 함부로 제지할 수 없었다.
박 대위의 말은 계속 되었다.
“우리의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과 김정은 최고사령관 동지가 영도하는 공화국은 이제 다시 미제나 일본 너희 놈들에게 절대로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을 것이야. 우리가 굶주리면서 군사력을 키우는 건 너희가 그렇게 만든 거야. 이 빠가야로 쪽바리 새끼야, 알겠어?”
박 대위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김정일 장군님을 떠올리며 말을 할 때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호시노가 그를 노려다보다가 침을 탁 뱉었다. 신문관은 절대 자기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김나라가 말문을 열었다.
“박 동무는 잠시 기다리라우 침착하게.”
“묻는 말에 잘 협조하면 그만큼 죽기 전까지 네가 편할 것이다.”
김나라가 부드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일본인이오. 태어날 때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본 국적으로 자랐고, 일본을 위해 영토와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군인으로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소.”
호시노 소령은 차분하게 자신의 직분을 말했다.
“너는 껍데기만 일본 놈이지. 네 몸 속에는 아직도 조선의 피가 흐르지 않는가? 그러니까 너는 조선 놈이야. 일본 쪽발이인 척하지 마라.”
“조선인과 일본인이 뭐가 다른 거요. 비록 나는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조선의 나라가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소. 그러나 일본은 나를 키워 주었고 나에게 보다 인간적인 삶을 누리게 해 주었소.”
“나를 낳아준 아버지는 형과 함께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갔다고 지금의 어머니로부터 들었소.”
듣고 있던 김나라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커지면서 눈동자에 힘을 주어 박 대위를 향한 반격이 계속 되었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조선이란 나라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에 걸맞게 살고 있소?”
“이 간나새끼.”
기록을 하던 박 대위가 벌떡 일어나자 김나라 중좌가 제지했다. 그는작심한 듯 계속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다.
“공화국이라는 체제가 왕조처럼 권력을 승계하오? 개, 돼지만도 못한 인민의 삶, 인민은 굶어 죽는데 김정일 왕가는 배 터지게 잘 먹고 잘 살고, 거기다 나라가 무슨 동네 구멍가게요, 자식한테 물려주게?”
듣고 있던 박 대위가 벌떡 일어나 호시노의 가슴을 발로 찼다. 호시노 소령은 켁 소리를 내며 뒤로 벌렁 나가 떨어졌다. 박 대위는 다시 머리통을 공 차듯 내 질러버렸다. 감정이 격해져 씩씩거리던 박 대위가 권총을 뽑아 들고는 호시노의 머리통에 권총을 들이대며 악을 썼다.
“한 번만 그 따위 반동적 막말을 하면 머리통을 날려 버리갔어. 간나새끼 뚫린 주둥아리라고 함부로 놀려.”
지켜보던 김나라가 박 대위를 제지했다.
“이보라우, 박 대위 감정을 죽이고 신문을 해야지. 그리 흥분하면 우리 과업을 속히 못 끝내잖소. 그만 하라우.”
김나라 중좌의 지도에 박 대위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이 자리에 않았다. 호시노 소령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그런다고 나의 생각이나 사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요, 물리적 힘으로 억압하고 목숨을 담보로 나를 협박한다고 쓰러질 대일본 자위대 장교가 아니란 말이요.”
호시노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할 말을 말했다.
“좋다. 신사적으로 하지. 대신 우리의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과 김정은 최고사령관 동지의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말라.”
“나 또한 마찬가지요, 당신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일본인의 기둥 살아있는 천왕을 욕보이는 이야기는 그쪽도 하지 마시오.”
서로가 신으로 받드는 대상을 꺼내어 비판하는 것은 서로 마지막 길로 가자는 의미인 만큼 중차대한 문제이기도 했다. 김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라는 바요. 어차피 전쟁은 신들의 싸움이니까. 신들의 이름으로 싸우고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닌가. 전쟁은 신들의 전쟁인 것이지. 미국 놈들의 신 하나님과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의 알라신의 싸움도 그런 것이니까.”
김나라는 하던 신문을 중지하고 일어섰다.
“저 간나새끼, 잘 감시하라. 포승 줄 풀지 말고 동무 허리에 묶어놓고 함께 움직이라구.”
지금 답답하니 좀 쉬었다 합시다.
“예, 중좌 동무.”
토굴 밖으로 나온 김나라 중좌는 숲속 나무기둥에 몸을 기대어 앉아 생각에 잠겼다.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아무리 봐도 저 자식 대판이 맞다.
쭈르하시 시장 판잣집에서 태어나서 어릴 적 ‘대판’이라고 불렀다. 오사카의 한국식 발음이 ‘대판’이라고 아버지께서 이름을 만들었지.>
그는 어떻게 이런 기구한 운명적 만남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밤에는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복받쳐오는 감정의 골을 메울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꼬부랑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연기는 헝클어진 머릿속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소용돌이치며 허공으로 올라갔다.
9월로 접어들어서인지 스쳐가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시원하긴 했지만 습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 왔으나 이제는 선선한 바람이 소매 사이로 들어오며 한기를 느끼게 했다.
삿포로 북부 방면 총감부북부지역사령부 회의실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은 미일 연합작전사령부의 지시를 받아 홋카이도의 모든 일본 자위대와 미군 부대를 지휘하는 사령부였다.
홋카이도를 침공한 북한 108특공대는 5개 지역대 중 총지휘본부가 홋카이도에서 제일 험한 산들이 모여 있는 이시카리고원과 히다카산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정보가 확인되었다. 특공대 사령부는 수시로 진지를 옮기면서 지역대를 지휘하고 있다는 것까지 포로 신문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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