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9일 오후 2시 삿포로 치토세 공항
검푸른 날개를 양옆으로 뻗치고 A-10지상공격용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차고 올랐다. 땅굴 파괴용 벙커버스터 폭탄을 가득 실은 1개 편대 4대의 전투기는 정찰용 헬기로부터 접수한 게릴라 사령부 본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다이세쓰산 일대와 이시카리고원 일대는 굉음을 내며 흙더미가 무너져 내렸다. 제3본부에 있던 참모요원들과 제1본부에 있던 정치부, 안전부요원들이 공격을 받았다. GBU-28 벙커버스터 폭탄은 뱀처럼 땅속을 헤집고 들어가 터지며 땅굴은 주저앉았다.
신문을 하기 위해 비좁은 임시 토굴에 와 있던 김나라 중좌와 호시노 소령이 머리를 숙이고 바닥에 엎드렸다. 20여 분간 계속된 공격 중에 본부에서 직접 운용하는 화승총 대공미사일 공격반이 반격을 했다.
휴대용 미사일 세발이 동시에 발사됐다. 낮은 고도로 오르내리며 공격을 퍼 붓던 A-10공격기 2대가 검은 연기와 함께 붉은 화염에 휩싸여 계곡 아래로 처박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갱도진지 작업을 하던 1개 소대병력은 땅굴공사 작업 중에 벙커마스터 공격으로 산채로 땅 속에 파묻혀서 반 이상이 사망을 했다. 참모부도 큰 타격을 받았다. 보위부장 안전식 중좌 머리통이 날아가 시신을 수습하기가 어려웠다. 108특공대 본부의 인원 절반이 이번 공격으로 손실되었다.
다음 날은 대대적인 미일 보병부대의 소탕작전이 시작되었다. 미일 연합군은 전날 지상공격기의 추락에 충격을 받고 프레데터 무인공격기를 이용하여 주요 은신 예정지에 정밀 폭탄을 쏘아댔다.
작전의 첫 번째 표적은 108특공대 각 지역대 본부가 널리 퍼져 있는 히다카산맥의 주요 고지였다. 미 82공정사단 예하 1, 2, 3 여단은 3개 방면으로 산개해서 작전을 전개했다.
제12기동여단은 산악기동이 민첩한 정찰용 오토바이중대와 정찰장갑차량에 보병을 탑승시켜 산악 도로 수색 활동에 나섰다.
자위대 1공정단 공중강습 시누크 헬기가 4대씩 10분 간격으로 이시카리고원 주변으로 공중 강습해 들어갔다.
하늘엔 공격용 헬기아파치 8대가 동서남북으로 경계하면서 게릴라의 기동이 의심되는 지역으로 로켓포와 기관포를 발사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문턱에서 108특공대 사령관 유현철 소장은 침착했다. 본부에 모인 군관들의 표정에 불안이 감돌고 있었다.
“동무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했소. 간부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오. 우리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오. 최대한 적들에게 피해를 줘야 하오. 오늘 이 시각부터 사령부 고정갱도진지는 없소. 매일 2차례 산악기동으로 기동 지휘소를 운용할 것이오.”
유현철은 단호한 어투로 오늘밤 12시에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밤 10시 김나라는 인질들과 별도로 갱도 안에 격리된 채 묶여 있는 호시노에게 갔다. 잠시 호시노를 쳐다보자 그가 갸우뚱하며 김나라를 쳐다보았다.
“지금도 일본제국주의를 사랑하는가?”
김나라가 불쑥 물었다.
“인간으로 태어날 때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소. 지금은 나의 조국은 일본이오. 군인이 조국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오?”
“나는 사춘기 시절 조국이 두개인 것이 내겐 아픔이었고 또한 부끄러움이었소.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지나갔고 이젠 내 부모님의 조국은 내 가슴에 묻어두고,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 나라를 위해 충성해야 하오. 이것이 내가 감내해야 할 운명이오.”
호시노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나도 어느 때는 얼굴도 모르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고 보고 싶소. 눈을 뜨면 나에게 누구 하나 애정 어린 눈으로 보지 않는 이 차가운 땅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짐하오.”
호시노의 뜨거운 눈물이 냇물처럼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나라는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다가가 묶여 있는 포승줄을 풀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수갑마저 열었다.
그리고 권총을 뽑아 등에다 겨누고 밖으로 나가라 명령했다. 호시노가 주춤거리자 권총에 힘주며 호시노의 등을 떠밀었다. 호시노는 무거운 걸음으로 갱도 밖으로 나갔다. 김나라와 호시노는 숲속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걸었다. 숲이 깊어 갈수록 경비병의 인기척은 사라지고 무수한 별빛만이 그들을 따라왔다. 그렇게 김나라는 30여 분을 호시노의 등에 총을 겨눈 채 걸었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 그는 호시노를 세웠다.
“나를 똑바로 봐라. 내 이름은 김나라다. 내가 북송선을 타고 일본을 떠날 때 남아 있던 세 살짜리 동생의 이름은 김대판이었다. 운명이란 참 묘하지. 소설처럼 다가왔구나!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가슴 아프지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김대판! 가라! 이 권총을 들고 도망쳐.”
그가 겨눴던 권총을 내밀자 호시노는 당황하면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며 총을 받아야 할지 주저했다.
“지금은 형으로서 너를 보낸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땐 나는 조선인민군 중좌로서 너를 쏠 것이고, 너는 일본 군인으로서 나를 쏴야 할 것이다. 가라. 빨리 안 떠나면 너는 다른 군관 손에 죽는다.”
“무슨 말입니까?”
호시노가 갸우뚱하며 묻자 그는 호시노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리라, 간나새끼. 지금 안 가면 넌 오늘 밤 보위부에 의해 죽는단 말이다. 빨리 가라우.”
그는 엉거주춤 서 있는 호시노의 손에 권총을 쥐어주고는 등을 세게 밀었다. 호시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깊은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야~ 대판이, 우리 조국 통일될 때까지 살아 있으라. 꼭 다시 만나자. 그리고 네가 일본을 사랑하는 마음 잘 알고 있어. 너를 키워준 조국이 조국이야. 그렇지만 네 어머니와 아버지의 조국도 잊지 말라.>
김나라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서늘한 산속의 바람이 그의 등줄기를 쓸어 내렸다. 그가 본부로 돌아오자 어둠 속에서 이동 준비를 하느라 어수선했고, 무너져 내린 한쪽 땅굴 입구에서 총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무너진 땅굴 안으로 들어갔다. 유현철 소장과 정치위원 오대좌 본부 경비요원들이 서 있었다.
“김나라 동무, 어디 갔다 오오?”
정치위원 오치열 대좌가 들어서는 그를 보자 물었다.
“예, 자위대 포로가 용변을 보고 싶다고 해서….”
그는 얼떨결에 답을 했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일본 민간인 인질 두 명은 보위부에서 총알이 아깝다고 예리한 단검으로 이미 살해한 뒤였다. 어둠 속에는 포승에 묶여 무릎을 꿇은 세 명의 특공대원 포로들이 있었고 그 옆에서 정치부 요원이 막 현장 즉결재판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동무들은 조국공화국의 배려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전투 중에 자결도 하지도 않고 일제 놈들에 포로로 잡혀 우리 특공대에 대한 비밀을 모두 적에게 알렸다. 인민군 108특공사령부 현지 군사재판위원회 이름으로 심판한다. 김판식 사형, 이극수 사형, 임성식 사형.”
정치지도위원 오치열 대좌가 권총을 뽑아들고 그들 뒤로 섰다. 모두는 눈물을 흘리며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애원했다.
탕! 탕! 탕!
3발의 총성이 울리고 포로가 되었다 다시 살아온 특공대원들은 사살되었다.
이들은 무너진 흙더미에 버려졌고 다른 본부대원들은 서둘러 자리를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치지도위원 오치열 대좌가 김나라를 보고 호시노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실은 용변을 본다고 하길래 돌아서 있는 동안에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김나라가 어정쩡하게 대답하자 오치열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요. 김나라 동무는 누구보다 혁명정신이 투철한 좋은 성분을 갖고 있는 집안으로 알고 있소. 비록 아버지가 귀국자지만 그래도 우리 조국에 많은 헌신을 했기에 동무가 여기까지 왔소. 동무 오늘의 이 과오는 별도로 비판하고 오늘은 이만 합시다.”
오치열 대좌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땅굴 밖으로 나갔다. 김나라의 다리가 풀리며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중좌 동무, 괜찮습네까?”
옆에서 사체를 구석으로 옮기던 경비병 하나가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김나라는 부축하던 경비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 산 정상 부근의 차디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쪽하늘 끝으로 별똥별이 조명탄처럼 타면서 떨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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