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쟁] 빨찌산의 후예 '108특공대원들'

정치 / 일요주간 / 2016-04-28 17:16:31
  • 카카오톡 보내기
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25)
광명성

9월 22일 히다카산맥 후라노산
숨이 턱밑까지 차 올라왔다. 신차력은 벌써 2시간째 험준한 산길을 뛰고 있었다. 그의 저격총은 다른 동료들보다도 무겁고 길었다. 더욱이 전투짝을 이루는 박금철 중사의 발사관 로켓포탄까지 2발을 배낭에 넣고 있기 때문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가슴은 뽀개질 듯이 벅차올랐다.
그때 조장 고재팔 대위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험악하게 들려 왔다.
“야, 이 간나새끼들. 서둘러 뛰라우. 우리가 이래도 혁명전사라 말할 수 있는가? 하늘에서 수령님이 보고 계신다 말이다. 좀 더 뛰라, 얼간이들.”
조장의 다그치는 소리에 신차력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남조선의 여자들은 체력이 약하고 의지도 약하다는 소릴 자주 들어왔던 터라, 남조선의 여 기자 동무가 잘 따라오는지 걱정이 되었다.
소나는 힘든 기색 없이 묵묵히 그들을 따라 뛰고 있었다.
물론 비무장이기도 하지만 고교 및 대학시절 마라톤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니뻬소스산 누카비라호수 주변으로 매복 작전을 나갔다가 미군 기동부대 장갑차량과 전투 지프차량을 기습하고 도주하는 길이었다.
고재팔 조장은 남조선의 여 기자라 해서 별도의 대우를 해 주지는 않았다.
게릴라 대원들 틈에 끼어있는 소나는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함께 하는 그들과 다를 게 없었다. 먹는 것, 자는 것, 이동하고, 매복하고, 습격하는 등의 모든 일에서 함께 생활하는 그녀도 게릴라가 되어 갔다.
소나는 자신을 끌고 다니는 108특공대원들이 과거 한국전쟁의 상처로 남아 있는 빨찌산의 후예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여자를 성노리개의 대상이 아닌 혁명동지로 받아주는 그들의 사상은 오히려 존경스러웠다. 밤이면 개처럼 바위틈에서 웅크리고 잤고, 배고픔에 계곡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지만 서로를 아끼고 고통을 분담하며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눈물이 났다. 그녀가 느끼는 전쟁은 처절한 생존의 싸움이었다. 막내 동생 같은 저격수 신차력은 유독 그녀를 많이 배려하면서 따랐다. 편히 쉴 곳을 살펴주고 산더덕이라도 생기면 선배 대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녀에게 더 먼저 권했다. 날 것이라고는 초밥 위에 올려 진 생선만 먹어보았지, 뱀과 개구리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던 그녀였지만,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배고픔은 그녀를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신차력은 자꾸만 처지는 자신의 몸을 추스르며 크게 호흡을 하고는 부조장을 부지런히 따라갔다.
얼마만큼 뛰었을까? 뛰다가도 바람을 가르는 헬기 소리가 나면 얼른 나뭇가지를 꺾어 머리 위로 가리고서는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때가 그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숨을 헐떡이고 있는 신차력의 어깨를 김유만 상사가 툭 쳤다.
“야! 이보라. 차력이 산에서 뛴 걸음을 할 때 두 번은 짧게 들이 마시고, 두 번은 내 쉬는 복식 호흡을 해야지. 흡흡 푸푸 이렇게 말야. 너처럼 그렇게 하면 오래 못 달린다 말이지. 저 남조선 여 기자 동무를 보라. 저렇게 연약해 보이지만 복식호흡이 몸에 배여 있으니깐 지치지 않고 우릴 따르는 것 아니갔어? 이런 얼간이 같은 혁명전사가 어케 여기까지 왔는가?”
김 상사는 이소나와 그를 비교하며 핀잔을 주었다. 신차력은 그렇게 해 보려고 노력을 했었지만 아직은 숙달이 되지 않아서인지 잘 되지 않고 호흡만 거칠었다.
“기자 동무.”
신차력이 부르는 소리에 이소나가 옷소매로 땀을 닦으며 쳐다보았다.
“동무는 복식호흡을 어케 그렇게 잘 합네까?”
“연습을 했으니까요.”
소나가 짧게 대답하고 빙그레 웃었다.
“연습? 언케했습네까?”
“학교 다닐 때 살 뺀다고 장거리 마라톤을 했어요.”
“예? 살을 빼다뇨? 무시기 소리합네까?”
소나와 대화할수록 차력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배고파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나라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살빼기는
도대체 장난하는 말일까?
“에이, 기자 동무! 우리 놀리느라고 그런 말을 조작했지요?”
“거 남조선 사람들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조작하는데 일등이죠? 그렇지요?”
소나는 헛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으며 진지한 말투로 답했다.
“음,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직이 생명이에요. 거짓말 아니고요. 젊은 여자들은 자신의 미용을 위해서 몸을 날씬하게 만드는 운동을 많이 하고 먹는 것도 때로는 줄여요, 그걸 다이어트라고 말해요.”
신차력은 대화할수록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예? 다이나마이트?”
“아니 다이어트, 살빼기란 말이에요.”
소나가 강조했다.
“에이 우리 조선에서는 통통하게 살집이 있어야 미인인데…. 거 비썩말라보이면 인기가 없다 말이지.”
차력은 인상을 쓰면서 말대꾸했다.
화성 여인하고 금성 남자가 말하듯 대화는 엇박자를 뛰었다.

그때 옆에서 눈감고 말없이 듣고만 있던 김 상사가 신차력의 뒤통수를 툭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야! 차력이 얼간이같이 이 판에 미인이 뭐이가 거 쓸데없는 개수작하지 말고 수령님 항일혁명사상이나 말하라우.”
정찰 헬기 소리가 사라지자 선두에서 출발 소리와 함께 대열은 재빠르게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빨리 서두르라우. 5분 후면 지금 있던 자리 저 놈들 로켓포가 떨어진다.”
고재팔 조장은 다그쳤다.
그때 신차력 바로 앞에 서서 뛰려던 박금철 중사가 갑자기 다리를 움켜 잡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다리야!”
다리에 쥐가 나 고통스러워하는 박 중사 앞으로 조장 고 대위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성큼 다가섰다.
그는 허리춤에서 날이 선 단도를 쑥 뽑아 들고서는 박 중사의 허벅지를 갑자기 푹하고 찔렀다.
“으으악!”
이를 악문 박 중사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고 붉은 피가 얼룩무늬 바지에 검게 번져갔다.
“야 차력이 끈 있으면 그 위쪽을 묶으라.”

고재팔은 그렇게 지시하고 대열을 따라 뛰었다. 신차력은 배낭 속에 있던 신호줄 끈을 이용해서 허벅지 상처 윗부분을 묶어 주었다.
잠시 후 박 중사의 발사관은 신차력이 짊어지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박 중사는 절뚝거리며 대열 후미를 따랐다.
“혁명투사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투는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느거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남아라!”
고재팔 대위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앞서 나갔다. 지난번 공격헬기 로켓포 공격을 받아 고재팔 조는 현재 5명으로 줄어들어 아직 보충이 되지 않았다.
멀리 토카치산 정상 온천수 부근에서 하얀 증기가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은거지 방향을 향해 계속 뛴 걸음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신차력은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한 손에 저격총을 또 한 손엔 발사관을 메고 있어 땀을 닦을 여유나 시간도 없었다.
그의 얼굴은 땀과 흙먼지가 범벅이 되었고 허연 소금이 양 볼에 번졌다.

얼마만큼을 뛰었을까? 그들이 표시로 해 놓은 꺾어진 나뭇가지가 보였다.
오늘은 어느 방향에서 은거할 지는 조장만이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조장은 잠시 여러 지형적 특징을 살피다가 서쪽 지형을 바라보는 곳에 오늘의 은거지를 편성했다.
박 중사의 허벅지는 지혈되었지만 바지를 벗고 보니 족히 5cm 정도는 찢어져 있었다. 좀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누가 조장에게 반항을 하거나 말을 씹을 사람은 없었다.
신차력은 상처 위에 소금주머니에서 소금을 꺼내 뿌려주었다.
박 중사는 참호 안에 들어 온지 1분도 안되어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신차력은 앞이 잘 보이도록 나뭇가지들을 옆으로 살짝 제치고 전방을 관측할 수 있도록 총을 거치시켰다. 바로 옆 잠복호의 이소나도 잠이 들었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신차력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그가 눈을 떴을 때엔 이미 검푸른 하늘엔 손톱 같은 초승달이 예쁘게 걸려 있었다. 덩그러니 매달린 달을 보니 갑자기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들이 생각났다. 그때 신호줄이 탁탁 울렸다.
깜짝 놀라 탁탁하고 반응을 보이니까 조장 은거지로 집결하라는 신호였다. 신차력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박 중사를 깨웠고, 옆 참호의 이소나도 깨웠다.
그들이 50m 후방의 조장 은거지에 집결하자, 고재팔 대위는 서둘러 조원들을 데리고 200m 떨어진 타격대 본부로 이동했다.

타격대 4개조와 타격대의 본부조요원들이 모두 모였다.
원시림으로 우거진 숲속에서 타격대장 김진수 소좌가 훈시를 시작하기 위해 대열정돈을 명령했다. 타격대장이 직접 지휘를 했다.
“전원 좌로 돌아!”
김진수 소좌의 구령에 맞춰 전원이 좌로 일사분란하게 돌자 하늘엔 붉은 초승달이 덜렁 걸려 있고 그 옆쪽으로는 막 켜놓은 새 전등 같은 초저녁별이 환하게 빛났다.
신차력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 오며 머리끝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차렷 자세를 취했다.
“동무들이 보듯이 저 하늘에 빛나는 광명성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별이오. 이렇게 모이게 한 건 중앙에서 최고사령관 동지의 격려문과 입당 승인허가서가 접수됐소. 동무들의 영웅적인 행동과 혁명정신이야말로 분명히 우리 공화국에서 빛날 것이요. 3조 고재팔 대위, 1조 나형구 상사 이상 2명의 현지 입당을 축하하오.”
그 말에 모두가 소리를 죽인 박수로 축하를 해 주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별 광명성을 향해 결의합시다.”
“일동 차렷! 광명성을 향하여 경례!”
그들은 일제히 오른손을 들어 별을 향해 경례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구호를 붙였다.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 최고사령관 동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구호가 끝나자 그들은 구령에 맞춰 힘차게 인민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계속>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