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선초롱 기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 수가 266명으로 늘어났다. 접수된 피해자 수도 벌써 184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까지 정부에 신고 된 피해자 수인 1282명보다 훨씬 늘어난 수치여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옥시 레킷벤키저(이하 옥시)’는 피해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사망자가 발생한 후 5년 만인 지난 2일에서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과는 피해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웠고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01년 국내에 처음 출시된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은 ‘옥시싹싹’ 브랜드 인지도 덕에 가장 높은 인기를 기록했다. 점유율은 한때 80%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습기에서 발생될 수 있는 유해세균을 없애준다는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는 폐질환 환자들을 양산했고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의 피해자를 냈다.
그리고 이러한 옥시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 환자를 의료진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면서 부터다. 그해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 요인이라고 판단, 사용과 판매를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2년 피해자 유족은 옥시를 고발했고, 이후 2014년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규정, 그리고 2년이 흘러서야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에 시작됐다. 가습기 살균제가 심각한 폐질환의 원인이란 사실이 밝혀진 지 5년 만이다.
옥시, 유해성 논란 5년 만에 사과
지난 2일 옥시 한국법인장 아타 샤프달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샤프달 대표는 “소비자, 대한민국 국민들께 사과를 드린다”며 “옥시 제품을 사용한 뒤 1등급, 2등급 장애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포괄적인 피해보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샤프달 대표의 공식 사과에도 불구, 피해자 및 가족들의 반발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이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들은 샤프달 대표를 향해 '왜 그동안 피해자들에게 연락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는가', '피해자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열었는가' 등을 추궁하기도 했다.
피해자 대표 최승운씨는 “검찰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옥시의 이러한 보여주기식 사과를 강력히 거부한다”며 “수사 면피용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실험결과 ‘은폐’ 의혹
그러나 이러한 사과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실험 결과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 진정성이 의심되기에 이르렀다.
앞서 옥시는 지난 2011년 자사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 발병과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옥시가 자사에 유리한 보고서만 제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같은 내용의 실험은 서울대학교 실험실에서 자체적으로 진행됐다. 당시 옥시가 서울대 수의과대학에 의뢰한 ‘흡입독성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임신한 실험쥐 15마리 중 13마리의 새끼가 뱃속에서 사망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생식독성 가능성이 존재하며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옥시는 이를 숨기고 이듬해 임신하지 않은 실험쥐를 대상으로 재실험을 진행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얻어, 이 같은 내용의 2차 보고서만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옥시는 실험보고서 은폐·조작, ‘유해 가능성’이 적시된 자료 삭제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옥시 측에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대학교 수의대 조모(56) 교수를 증거위조 및 수뢰후부청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옥시제품 불매운동’ 전국 확산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은폐 논란은 옥시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이용하는 각종 시설 등에 옥시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하거나 아직도 제품이 진열된 유통점 등에 퇴출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옥시 불매운동은 꾸준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10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1차 불매운동에 이어 오는 31일까지 2차 불매운동을 진행한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시민단체는 2차 기간 동안 불매에 참여한다고 발표한 뒤에도 재고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 등을 대상으로 항의 방문에 나설 예정으로 알려졌다.
옥시 불매바람은 유통업계에도 거세게 휘몰아쳤다. 지난 3일엔 대형마트, 4일엔 쿠팡·티몬 등 소셜커머스 업계가 각각 신규 발주와 판매를 중단했다. 여기에 오픈마켓인 G마켓·옥션·11번가 등 3사가 ‘옥시’ 키워드 검색 서비스를 전면 중단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특히 오픈마켓은 회사가 물건을 구입해 파는 것이 아니라 개별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중개사업자이기 때문에 입점 판매자 동의 없이 오픈마켓 단독으로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신현우 등 옥시 전·현직 경영진 줄줄이 검찰소환
이번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제품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뿐 아니라 경영진들도 검찰에 줄줄이 소환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신현우 전 옥시 대표와 김모 전 연구소장, 최모 선임연구원 등이 구속됐다.

특히 신 전 대표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드러났다. 신 전 대표는 2000년부터 PHMG 제품이 생산됐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제품 제조법 관련 문서 등의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검찰은 이와 함께 존 리(48) 전 옥시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제품 제조·판매 업체의 외국인 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구글코리아 사장을 맡고 있는 리 전 대표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옥시 대표를 역임했다. 그 시기는 문제가 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검찰은 리 전 대표 이후 2012년 5월까지 대표직을 맡았던 거라브 제인(47) 전 옥시 대표에 대해서도 소환 세부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