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이수근 기자] 롯데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달 20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소환조사했다. 그리고 6일 뒤인 26일 신 회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신 회장의 신병을 확보한 뒤 최장 20일 동안 추가 수사를 벌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 검찰의 수사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마무리될 공산이 커졌다. 검찰은 법원의 판단에 난감해하는 반면, 그룹 임직원들은 한숨을 돌리며 안도하는 중이다.
검찰, 종착역 앞두고 신동빈 놓쳐…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9월 29일 기각됐다. 신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찰은 고심 끝에 청구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신 회장을 포함한 비리 관련자들을 일괄 기소하는 것을 끝으로 3개월 넘게 이어진 롯데그룹 비리 사건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으로부터 불구속 기소의 명분을 얻은 만큼 시간을 더 끌면서 이 사건을 손에 쥐고 있을 이유가 사실상 없다는 판단에서다.
애초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전 사상 최대 수사력을 투입해 장기간 수사를 벌였으면서 영장 청구조차 하지 않을 경우 수사 실패를 자인하거나,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이란 의견이 수사팀 내부에서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기업인 수사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검찰은 향후 수사 마무리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신 회장을 제외한 비리 연루자들에 대한 혐의 입증 작업을 사실상 끝내고 이 사건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르면 다음주 중 수사 결과가 발표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은 신 회장과 함께 신 총괄회장,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그룹 총수 일가를 일괄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에 앞서 탈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 총괄회장의 세번째 부인 서미경(57)씨와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 대한 자료를 일본에서 넘겨받아 탈세액 등을 수정하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강현구(56) 롯데홈쇼핑 사장 등에 대한 영장 재청구 시기, 롯데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한 나머지 수사도 이 과정에서 함께 마무리될 전망이다.
검찰은 롯데 일가가 지난 10년간 모두 2100억원의 급여를 받아 챙겼고, 이중 실질적 업무수행을 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을 제외한 금액을 500억원으로 보고 있다. 신 회장과 신 총괄회장의 지시로 이 같은 횡령이 이뤄졌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신 회장이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서씨 일가 등에게 몰아주는 등 모두 770억원대 손해를 회사에 입힌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신 회장은 롯데피에스넷의 손실을 감추기 위해 다수의 계열사들을 유상증자에 동원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47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도 있다. 다만 신 회장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됐던 롯데케미칼의 270억 소송 사기 혐의, 롯데호텔의 제주·부여 리조트 헐값 인수 의혹 등은 구속영장 혐의에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임직원들 일단 ‘안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롯데그룹은 일단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게 됐다. 그룹 임직원들은 한숨을 돌리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신 회장에 대한 기소를 피할 수 없는 롯데그룹 입장에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그나마 현재로선 가장 최선의 결과였다. 아울러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일본인이 ‘어부지리’로 한일 롯데의 총괄 경영권을 쥘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관계자는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신 회장의 구속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개혁의 고삐를 죌 수 있는 기회마저 잃을까 걱정했지만 우려에 그쳐 천만다행”이라며 “그동안 위축된 임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롯데그룹은 지난달 20일 신동빈 회장이 검찰에 소환될 당시 공식 입장자료를 통해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큰 책임감으로 사회공헌에 앞장서고,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 신뢰받는 투명한 롯데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계에서도 신 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일제히 ‘환영’ 의사를 밝혔다. 앞서 ‘오너 공백’ 상황을 맞게 될 우려 속에 재계 5위 롯데그룹이 성장 동력을 잃고 ‘최대 위기’를 맞을 것이란 비관론이 제기되면서, 롯데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의 경영활동 위축에 대한 불안 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경영공백 막기 위해 ‘조기 인사’ 단행하나?
하지만 앞서 그룹 2인자 이인원 부회장의 극단적인 선택에 이어 앞으로 그룹 내 핵심 측근 인사들이 모두 기소를 앞두고 있어 사실상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마비된다는 불안함은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경영공백을 막기 위한 ‘조기 인사설’이 제기되지만 롯데그룹은 이 같은 세간의 관측을 거듭 부인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정상적인 일정과 계획에 따라 인력을 운영해야 한다”면서 “인사시기를 앞당긴다던지 별도로 준비하고 있는 사항은 없다”고 일축했다.
앞서 지난 8월 롯데그룹이 2017년 정기임원 인사를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시행한다는 ‘11월 인사설’이 나온 이후 고(故) 이인원 부회장의 사망과 겹치면서 비교적 고령인 소진세 총괄사장, 황각규 사장, 노병용 사장 등 그룹 최고위층들에 대한 세대교체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재계 안팎에서 제기된 바 있다.
더 나아가 그룹 수뇌부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 하에 외부의 명망있는 인사를 수혈할 것이란 추측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신 회장뿐 아니라 핵심 측근들에 대한 기소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검찰 수사 이후 장기간의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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