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구경회 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 형인 김정남이 피살됐다.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단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 유지 차원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평가 받아온 이복형을 제거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김정남이 해외 망명을 타진하다가 적발 돼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 한국 비롯한 제3국으로 망명 타진하다 적발
이에 대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이 권력 불안에 의한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제거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면서 "오히려 김정남이 한국을 비롯한 제3국으로의 망명을 타진하다가 적발돼 피살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김정남은 이메일을 활용해 지인들과 소통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자기 존재감의 과시를 위해 계정을 계속 바꿔가면서 해외에 퍼져있는 다양한 지인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아왔는데 관련 내용이 북한의 감시망에 걸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남의 장남인 김한솔이 삼촌(김정은)에 대한 독재자 발언 이후 해외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졌고, 생활난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지켜본 김정남이 아들을 위해 망명을 타진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망명 과정에서 최대한 자신의 몸값을 높이 쳐주는 곳을 타진했고, 이메일을 활용해 여러 루트로 접근한 것이 김정은의 귀에 들어가 화를 입었을 수 있다는 있다는 것이 양 교수의 주장이다. 김정남은 북한으로의 소환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양 교수는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체제유지와 존엄 문제"라며 "김정남이 해외로 망명할 경우 북한 내부사회에서는 최고존엄으로 통하는 김정은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남의 망명 희망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로 들어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실제 김정남이 귀순할 경우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에는 치명적 악영향이 미친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범행에 나섰을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결과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정은 정권에 충성맹세를 하기 위해 정찰총국 간부들이 김정남 제거를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탈북민 출신 박사인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월16일을 며칠 앞둔 시점에 김정은의 정적인 김정남이 제거됐다"며 "공교롭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는지 아니면 제거 날짜까지 계획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피살을 주도한 정찰총국 간부는 김정은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남을 자신의 정권유지에 가장 걸림돌로 생각해 온 김정은 입장에서는 피살을 주도한 정찰총국 내지는 통일전선부 등 간부에게 훈장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 연구위원은 북한 여성으로 추정되는 공작원에 관해서는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이 수사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작원을 체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고도로 훈련된 공작원들은 이미 제3국으로 출국했을 가능성이 있고, 다른 나라에서 체포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北,‘김정남 피살’ 사건 자체를 철저히 은폐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은 "독재자들은 자기 권력에 저항하는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제거하려는 특성이 있다"며 "김정남의 피살에 대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권력암투가 있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집권한 지 오래됐지만 경제역량이 무너진 상태에서 북한 내부에서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군당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불안이 깔려 있고, 김정남과 연계해 저항을 꾀하려는 무리들도 있을 수 있으니 싹을 자르는 차원에서 본보기로 김정남을 쳐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수사에 강력하게 대응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관련 소식의 확산을 철저히 통제하는 모습이다. 북한의 관영매체와 선전매체들은 지난 13일 사건이 발생한 이후 22일까지 이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남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복형제라는 사실을 감춰왔던 데다가, 이번 사건이 잠재적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권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내부에 확산될 경우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 결과를 전면 부인하는 동시에 부검을 부정하고 시신 회수 의지를 내비치는 것 또한 이번 사건을 최대한 축소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주민들이 김정남의 존재를 잘 몰랐기 때문에 아예 이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이같은 생각이 얼마만큼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적지 않은 북한 주민들은 남측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데다 중국을 오가는 상인들도 많아 이미 북한 내부에는 이번 김정은 피살 소문이 적지 않게 퍼졌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 군, 정부 고위급 간부들은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을 알 수밖에 없다"며 "다만 조직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 "특히 북·중 접경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김정은이 이복형을 죽였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라며 "이번 피살 사건에 북한 내부에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장마당을 통해서도 급격하게 소문이 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북한은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장마당을 통한 소문 확산을 막기 위한 통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 처형에 대한 공포가 더욱 확산될 거라는 관측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의 소식통을 인용해 "당국에서는 장기간 휴식을 지시한 데 이어, 장마당도 문을 닫았다"며 "이 때문에 주민들은 '골목장(노점상)'을 통한 시장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객지에 나가 있던 형님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간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김정남 피살 소문 확산을 막지 못할 경우 이번 사건을 적국의 소행으로 포장하려 할 가능성도 크다. 이미 북한은 주말레이시아 대사를 앞세워 이번 사건의 배후에 한국 정부가 있다는 억지 주장까지 펴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의 배후에 김정은 정권이 있다는 수사 결과의 확산을 막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나아가 이번 피살 사건으로 북한 내부에서 처형에 대한 공포가 더욱 확산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당국자는 "이번 사건이 주민의 반발과 저항으로 이어지기보다 몸을 사려야 한다는 인식이 주민뿐만 아니라 간부들 사이에서도 커질 것"이라며 "전형적인 공포통치 효과가 북한 내부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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