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엄지영 기자] 한 남자가 흙가루를 뒤집어 쓴 채 작업장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온다. 48년의 도자기 인생. 아직도 도자기를 만들 때면 처음처럼 설레고 새롭다는 그. 도천 서광윤 작가를 신둔도예촌에서 만났다.
그가 도자기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당시는 5형제들과 가난한 삶을 사느라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였다.
"초등학교를 나와서 살기가 힘들어서 중학교를 못 갔다. 그런데 어느 날 할일이 없어서 나무를 해서(베서)지고 오다가 보니까 도자기 굽는 곳이 있었다. 집에 갖다놓고 보니까 너무 신기했다. 특히 흙으로 만든다는 게 신기해서 지순택 선생님께 '이거 배우면 안되냐'고 했더니 하라고 하셔서 그 때부터 배웠다. 그게 70년대니까 지금48년이 된 얘기다"
그는 15세부터 가업을 잇기 위해 도암 지순택(무형 문화재)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며 10여 년간 도자기의 기본기술(성형-조각-유약 등)을 사사 받았고 그 후 또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10여 년간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시작한 48년의 도자기 인생이 평탄 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15년 전을 회상하며 '고통이 많았다'고 말했다.
"15년 전에 친구가 도자기 만드는 것을 같이하자고 해서 나는 기술을 대고 친구는 돈을 대기로 했다. 그래서 가마를 차리고 직원을 10명 데리고 했는데 친구가 돈을 안내고 내 돈을 몇 년 동안 다 썼다. 그래서 내가 여기저기서 돈을 꿔다 쓰고 그러다 보니 거지가 됐다. 그때는 정말 고통이 많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거쳐 도자기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맘껏 누렸던 시간도 존재했다.

"작품이 잘 안 나올 때가 있었다. 나와야 10프로에서 20프로였다. 그렇게 실패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11년 전부터 아름다운 작품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서 유약을 초벌한 곳에 칠하면 빨갛게 나오는 것도 있고 무지개처럼 나오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나온다. 그렇게 '요변'이란 걸 성공했다."
그는 도자기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이따가 자세히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그가 도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도자기를 만들 때 들이는 공은 엄청날 터. 만드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딘지 물었다.
"형태를 내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허리를 덜 내면 어깨가 좁아서 보기가 싫다. 어깨가 살아야 한다."
서광윤 작가가 도자기에 들이는 정성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전통 가마를 고집하며 가마의 장작을 모두 질 좋은 강원도 산 소나무로만 사용한다. 도자기를 구워낼 때 전기 가마, 가스가마 등 편리한 방법들도 있지만 좋은 작품 하나를 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공들여 만든 작품을 사람들이 소장하지 않아서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작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작품을 소장들을 잘 안한다. 그게 가슴 아프다"
같은 맥락으로 그는 우리나라 도자기 산업에 대해서도 어둡게 전망했다.
"(도자기 산업)전망은 몇 년 전부터 안 좋은 편이다. 모든 경기가 다 안 좋다 보니까 그렇다. 전에는 일본 사람들이 도자기를 좋아해서 많이 사갔는데 요새는 일본사람들이 안 들어온다. 중국 사람들은 좋아 하기만 하고 비싸서 사지는 않는 그런 현상이다."
우리나라에는 ‘한국도예고등학교’ 등 도예가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이 있다. 훗날 서광윤 작가를 이을 후학들에게 작가는 ‘전통 도자기가 너무 힘드니까 학생들이 하려고 안한다고 한다’며 속상해했다.
"학생들이 쉽게 가려고 하는데, 제 욕심인지 몰라도 깊이 들어가 보면 (도자기가)참 재밌고 범위가 넓다. 학생들이 힘드니까 공방 쪽으로 많이 가려고 해서 가슴이 아프다. 다음세대 정도 되면 작품 하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질 것 같다. 그게 슬프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오랜 전통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 뒤에 자신의 창조성이 빛을 발하면서 우선 전통의 방법을 착실히 배우고 나서 기술을 익히기를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 있는 스승을 찾아 배우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 한다"
유럽시장에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내가 장애자다 보니까 그런 쪽으로 범위를 넓여 보려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그는 과거 ‘장애우 권익보호기금 마련을 위한 도천 서광윤 도자기 전’을 열었던 경험이 있다.
그는 또 평생의 포부에 대해 "변함없이 흙과의 시간을 이어가고자 한다"며 "매 년 이맘때면 올해도 자신이 생각했던 작품을 만들어 냈는지 못했는지를, 또 미루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뒤돌아본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포부다"라고 전했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