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사이
고추잠자리 한 쌍 옥상 위를 빙빙 돌고 있다
두 마리가 하나로 포개져 있다
누가 누구를 업는다는 거
업고 업히는 사이라는 거
오늘은 왠지 아찔한 저 체위가 엄숙해서 슬프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러운 과녁으로 꽂혀서
맞물린 몸 풀지 못하고
땅에 닿을 듯 말 듯 스치며 나는 임계선 어디쯤
문득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있다
앉는 곳이 곧 무덤일
질주의 끝이 곧 휴식일 어느 산란처
죽은 날개는 너무 투명해서 내생까지 환히 들여다보인다
![]() |
▲ 이은화 작가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평론 ) 고추잠자리는 서로 날개를 포갠 채 날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 장면을 “업고 업히는 사이”라며 뗄 수 없는 관계로 바라보지요. 이어 “아찔한 저 체위가 엄숙해서 슬프다”고 전합니다. 끝을 알면서도 놓을 수 없는 숙명처럼, 잠자리의 모습을 서럽게 바라보는 관조가 읽히는 시. 단순한 육체의 교감을 떠나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정서 때문일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서러운 과녁으로” 꽂힌다는 문장이 아프게 번집니다.
이런 이유로 “땅에 닿을 듯 말 듯 스치며 나는 임계선”에서 사람들은 매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곤 하지요. 그러나 시인은 아슬아슬한 틈에서 죽음을 쉼으로 바꿔놓습니다. “앉는 곳이 곧 무덤일” 수 있지만 동시에 휴식의 산란처가 될 수 있다고요. 이 통찰은 “죽은 날개는 너무 투명해서 내생까지 환히 들여다보인다”라며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내력을 투명하게 녹여내지요. 이와 같이 고추잠자리의 그 짧은 생애가 담긴 날갯짓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어쩌면 사랑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그리워하는 일의 반복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감정이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이 시의 날갯짓은 우리의 삶과 닮았습니다. 삶이란 함께 걷거나 스치거나 포개며 각자의 길로 날아가는 순간들의 연속이니까요. 죽을 자리를 알면서도 찾아드는 사랑이라니! 잠자리처럼 작고 연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서로를 향해 날아가려는 그 마음만큼은 우주보다 큰 그 사랑이 아닐까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