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황정산
선생들은 무척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셀 수 없고 잴 수 없다고
그래서 운산할 수 없다고
형체가 없어 그릴 수 없다고
모두 지우라고 시켰다
그래도 무척을 보았다
몽골 초원에서
그곳 말 타는 아이들 손짓에서
그 위를 나는 독수리 날갯짓에서
무척이 서 있었다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먼지 속에서
새벽녘 젖은 풀잎 끝에서
내 이름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 젖은 눈 속에서
무척이 있음을 듣고 보았다
어깨를 쓰다듬던 바람 한 점
울렁이던 미세한 떨림과 울림
이 모두가 자라 무척이 되었다
숫자로도, 선으로도 담을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척을 꺼내 든다
때로 말없이 때로 분명하게
시공을 건너는 그 눈금을 생각한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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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몽골 초원의 광활함, 아이들의 순수한 손짓, 독수리의 자유로운 날갯짓을 떠올려 보세요. 이 모든 것은 숫자로 설명될 수 없는 경험이에요. 새벽 풀잎의 이슬, 바람의 감촉, 미세한 떨림 등 이런 감각의 순간들은 측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들이니까요. 그렇기에 ‘무척’은 그런 측정할 수 없는 감정들을 담아내는 말이 아닐까요. 사회의 수량화와 수치화에 대한 저항을 담은 이 시에서 어떤 단어는 마음속에 오래 머물지요. 말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쉽게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요. 마치 감정의 방향과 깊이를 측정하는 단어처럼 말이에요.
어쩌면 ‘무척’은 자신의 언어적 한계를 고백하는 순간에 나오는 말일 거예요. 이 단어가 들어간 의미들은 ‘몹시’ 또는 ‘매우’라는 고백에 가까울 것 같거든요. 그만큼 감정을 증폭시키는 확성기 같은 어휘지요. 이것은 이 단어가 가진 힘일 게예요. 그래서 “무척”은 형용사보다 뜨겁고 명사보다 명확하게 그 사람의 감정을 짚어 낼 수 있지요. 자신만의 감각으로 ‘무척’을 읽어낸 시인의 이 시처럼 말이에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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