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뿌린 자가 거두어야 하는 탐욕의 원죄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6-06-01 10: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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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균형이 불공정으로 이어진 시대, 지금 우리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하는 곳이 어디일까? 나는 단연코 귀족 노조의 탐욕이 사회에 미칠 혼란 때문이라 생각하며 '노블리스' 단어 자체를 떠올렸다. 새삼, '가진 자의 부자유'가 '가진 자의 품격'이라는 진리를 느끼는 요즘이다. 가진 자는 얼마나 더 많이 가져야 만족할까. 우리는 이기심과 탐욕의 불편한 사안에 직면하며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주는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2026년 한국의 봄은 탐욕으로 무장한 귀족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 관철을 위해 거리에서 백병전을 치르고 있다. 돈에 환장하고 돈에 눈이 뒤집힌 자들이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를 볼모로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생산 공장을 멈춰 세우겠다는 발상에 회사 측과 우리 사회는 경악했다.

나라 경제가 거덜 나 많은 청년이 실직 상태에 있는데 삼성전자 노조는 돈을 향한 기갈을 '노사협상과 파업'이라는 핵폭탄으로 무장해 나라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삼성 노조의 다걸기 도박이 노동운동이 되었건 노사협상이 되었건 그들의 단체행동은 또 다른 단체 노동자를 자극하고 허탈하게 하였다. 우리는 이 사태가 몰고 올 태풍이 걱정스러워 사태 본질과 펙트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노조의 거액 성과급 배분, 노사 갈등에 관한 기사가 언론 톱뉴스로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특정 기업의 노사 갈등이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내세워 노조의 자제를 호소했지만, 탐욕에 눈먼 자들에게는 마이동풍이다.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직장인들이 심리적 공황에 빠졌다. 그야말로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특정 회사들의 성과에 노동자가 근거 없는 몫을 요구할 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조선, 통신, 플랫폼 등의 대기업 회사들이 성과금 배분을 두고 갈등이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게 뻔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을 자초한 그 혼란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노사정 협상으로 당장 급한 불은 꺼 파업의 면했지만, 문제는 성과급 합의안은 파업 못지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분배 방식과 크기가 우리 사회의 상식과 균형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를 남긴 삼성전자 사례는 기업에만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슈퍼 귀족 노조도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기업의 이익은 기존 주주의 몫이라는 상식을 두고 갑론을박이다. 우리 사회에 연봉 1억이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파업까지 한다는 것은 사회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대다수 구성원의 의견이다.

평균 한국인이 평생 모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거액을 1년에 받게 된 노조원들이 그것도 부족하다며 아예 제도화하자고 한다. 안 들어주면 파업으로 반도체 산업을 망쳐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저임금 노조의 생존권 차원의 투쟁이 아니라 철저한 이권 단체가 국가 산업을 볼모로 삼는 대국민 위협으로 봐야 한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며 삼성전자 노동운동이 노동 권력으로 변질됐다. 당초, 노동 가치의 순수성을 잊어버렸다. 지금 노동 권력이 하는 모든 것은 추상화되어 있고 이념화되어 노동운동의 구체성을 배반했다. 탐욕으로 무장된 뻔뻔스러움은 노동운동이라는 커텐 뒤, 추상성 속에 서식하며 사회 곳곳에 독소를 뿌리고 있다. 

 

그들이 노동법을 앞세운 노사협상은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말이 안 되는 몰상식이다. 공동체 상식에서 이 탐욕으로 가득 찬 행동과 말은 무의미한 수사에 불과하다. 노란봉투법이 삼성 노조가 보인 모럴 해저드의 토양이 되었다는 해석은 과하지 않다.

사용자의 부당 노동 착취에 맞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든 노동법은 스스로 권력화될 수 있는 함정을 그 법안에 지니고 있다. 주요 노총 단체들은 대부분은 그 함정에 빠졌다. 지금 노동단체의 권력화되어 가는 과정은 진보 정치권과의 공생관계로 전개되어 왔다. 노동운동이 극도로 억압받고 있던 군사정권 시절 이후 민주화로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으며 노동운동은 급속도로 권력화되어서 갔고 특권화되었다. 그 권력은 진보 정권에게 노동운동의 본질을 내어준 대가로 정치 권력으로부터 분양받은 반대급부다.

권력의 크기를 수치로 계량화할 수는 없겠지만 비대한 노동 권력 영향으로 사회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됐다. 거대한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건 생각보다 작은 빙하였다. 문제는 빙하의 크기가 아니라 충돌 지점이었다. 한국 산업이 대단해 보여도 실제로는 반도체 산업과 제조업 몇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핵심 산업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 바로 '노동 공급망'이 존재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위태로운 병목은 호르무즈 해협으로 꼽힌다.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고유가도 아니고 경기 불황도 아니다. 어쩌면 더 위태로운 게 노동 공급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젠 거대 고액 연봉 노조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때이다. 거대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노사 간 교섭력의 평행을 위해 시대에 맞는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노동 현장 투쟁의 본질은 노사 대립을 넘어선 노노간의 갈등이다. 노노 갈등이 일어나는 노조는 대부분 억대 안팎 연봉과 많은 성과금을 받는 곳들이다. 이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이나 저임금을 호소하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하려고 노동법을 이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노조는, 노조가 아니라 이익단체로 변질됐다. 약자를 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노동법을 귀족 노조 자신들의 탐욕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그 법은 노동법이 아니라 기득권 보호법이다.

모든 법은 옳은 법이라 해도 과하면 다른 법에 의하여 부정당할 수 있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 법과 공론의 기본 윤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의 법 잣대로 현재를 적용한다는 것은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변해버린 노동 조건을 강제로 편입시키며 일사불란한 법으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기에, 그 법은 또 다른 법에 의해 부정될 것이다.

노동단체가 파업을 무기로 권력을 행사하는 이 시대, 그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노동운동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 권력화시켜준 정치권은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공동에 대한 배려, 회사의 미래 경쟁력 따윈 안중에도 없는 탐욕 가득한 노조 뒤엔 노사 간 운동장을 기울게 한 편향된 노동 정책이 있다. 공히 입법 주체와 정부는 노동조합 단체의 과도한 권력을 축소하고 제한할 때가 되었다.

삼성 사태 노사정 협상 테이블 위에는 저급한 합의서 종이가 휴지처럼 널브러져 있다. 탐욕의 원죄, 뿌린 자가 가두어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나의 이 말은 혼자 담벼락에 대고 주절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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