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거대담론이 사라진 자리에 미시담론이 판친다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4-09-13 10: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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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연일 싸우는 모습이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니 신문이나 TV 보기가 무섭다. 언제 끝이 날지 기약 없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보며 왜 저렇게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가.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세상만 어지러운 게 아니다. 눈을 안쪽으로 돌려보니 우리 정치도 수선스럽고 시끌시끌하다. 여ㆍ야당이 서로 싸우며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느니, 이 정권을 탄핵해 조기에 대통령을 퇴임시켜야 한다느니, 현 정권의 정치 상황이 불리하니 계엄령 선포를 준비한다느니, 말도 안 되는 사항이 뒤엉키고 있다. 싸움 붙이기를 좋아하는 언론은 진보ㆍ보수 양쪽으로 갈려 연일 싸움 내용을 극한으로 증폭시키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국민은 헛갈린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게 있다. 가장 번번하고 심각한 기미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들 때문에 국가 미래를 위한 '거대담론'의 퇴조와 개개인 이익이 걸린 '미시담론'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 사회는 국가와 미래를 위한 어젠다는 없고 온통 개개인의 정치 소신이 사회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목소리가 큰 그들은 보편과 객관은 걷어치우고 상식과 정의를 조롱해 가며 자신만의 의견과 편견을 주장하니 국회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가 '갈등'일 것이다. 지역 갈등, 이념 갈등, 노사 갈등, 노노 갈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국민 소득 3만 불 달성이 되어 먹고살 만하니 갈등의 고리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치 쪽으로 옮겨진 듯하다. 얼마 전 고려대 한국사회 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참가자 10명 중 9명이 우리 사회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했고, 22회 국회 개원 이후 정치권 갈등이란 단어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갈등은 하도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흔히 갈등은 서로 양보하며 풀어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도 하고 갈등을 매개로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우리 정치인의 불신은 갈등이라 표현하기에는 한참 동떨어진 싸움 수준이다. 국가 미래를 위한 거대담론이 사라진 곳에는 미시담론이 자리 잡으며 가짜 뉴스로 서로 싸우고 있다. 싸움도 보통 싸움이 아닌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철천지원수들이 만나 싸우니 문제다.

우리 정치인의 수준이 너무 실망스럽다. 국회가 자신들의 안방으로 착각한 것인가. 신성한 장소인 의회 전당에서 내뱉는 막말이 실망을 넘어 국민적 분노를 유발시킨다. 야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에서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에게 '불행한 전철'이라는 막말을 퍼붓는 행위는 무례함을 넘어 협박 수준이다. 여당 의원인 강선영 의원도 야당 대표를 '레닌'에 비유해 위원회가 정회되는 소동을 빚었다. 물론 정치적 표현의 자유 측면은 이해가 될 수 있으나 의원의 품격을 생각할 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야당에서 즉각 '또라이'라는 표현하며 손가락질한 의원도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야당 상임위원장도 인사청문회 후보자에게 "뇌 구조가 이상한 것 같다"라는 말은 사람을 앞에 세워 놓고 모욕의 수준을 넘어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다.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거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싸울 수밖에 없고 그 싸움을 바라보는 국민은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 막말로 인한 싸움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작금의 행태는 가히 병적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트릴 수만 있다면 어떤 막말도 서슴지 않는 의원들, 일부 몰지각한 의원은 막말과 고성을 특권인 양 해되며 싸움하는 걸 즐기는 듯하다. 이 잘못된 관행을 고쳐야 함에도 오히려 그들만의 리그로 특권 행세를 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과 명예훼손의 죄가 면책되기 때문이다.

국민은 국회의원을 뽑을 때 무슨 기준으로 뽑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거시적 안목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올바른 인격의 지도자를 뽑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미시적 에고(ego)로 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뽑았다. 국회의원을 뽑은 게 아니라 싸움하는 싸움닭을 뽑았으며 그런 군상들을 뽑은 유권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여당과 야당은 채상병 청문회와 김건희 여사 특검, 탄핵 정국으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엎고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은 상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극한투쟁이다. 민생과 정책 실종도 아랑곳없이 막무가내로 벌이는 죽기 살기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적개심에 불타는 정치 언어들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쪽수가 우세한 야당이 선을 넘은 공세로 여당은 초장부터 싸움의 고삐를 일방적으로 빼앗겠기며 연일 수세에 몰렸다.

벌써 몇 라운드째인가. 이 싸움은 룰도 반칙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방식이다. 전방위로 전방위를 치는 싸움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사생결단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슈가 잦아들면 밑도 끝도 없는 가짜 뉴스가 떠돌며 싸움의 불씨를 키웠다. 국회는 저주의 굿판에서 한바탕 씨름을 하는 역겨운 모습의 연속이다. 진보와 보수로 확연히 갈린 유튜버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극한 언어로 싸움을 붙이고 연일 판을 키우고 의혹을 증폭시키며 오염된 언설을 배설하고 있다.

UFC 타이틀 매치에 나서는 프로 선수들은 자본주의의 검투사들이다. 그들의 승부는 명료하다. 쓰러지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링에서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탈을 쓰고 상식과 개인의 인격을 무시한 채 닥치는 대로 싸우니 이 링의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시간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다. 심판 노릇을 해야 하는 위원장도 규정 해석을 아전인수 엿장수 가위 치듯 멋대로 하고 있다.

이 싸움은 단순히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싸움이 아니다. 국회 청문회법 조항 책을 손에 끼고 계속 들먹이는 위원장은 자신의 회의 진행 방법에 아예 토를 못 달도록 엄포를 놓으며 경기 진행을 했다. 이런 방법은 경기 심판이 편파를 부추기는 것으로 민주적 방법과는 하등 상관없이 정면으로 위배된다. 진상규명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은 야당 의원의 행동 원리로서 나무랄 데 없는 책무와 상식에 속한다. 그 상식을 위해 국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또 다른 야당 대표의 방탄 의혹과 관련된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다. 국회의원 책무의 핵심은 민생 우선이 정치적 리더쉽에 복속해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수식어도 국민을 설득시키지 못한다.

국회에서 각종 현안은 접어두고 탄핵과 정쟁으로 허송세월하면 그 피해는 누가 보는가. 싸움이 치열할수록 드러나는 내용이 공허하고 국민의 삶과는 무관하며 무내용해 보인다. 죽은자는 말이 없고, 김 여사의 혐의는 검찰과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무혐의라는 결론이 났다. 심판관이 무혐의라고 선언했지만, 야당은 수용할 뜻이 없고 또 싸움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 국민은 이 싸움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다시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불을 지피며, 이대로 종결하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 이란 엄포를 놓고 있다.

국민은, 야당이 이런 경우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경기 불황과 일자리가 없어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관심으로 매일 싸우기만 하는 정치, 개콘보다 못한 정치에 국민이 왜 관심을 둔단 말인가. 특검과 탄핵을 통해 밝혀야 한다는 야당의 공세는 무엇 때문이고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밝혀져 나라가 뒤집히는 사건이라도 일어나는가. 아니면 국민 생활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서 주장하는 것 그것은 매우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면이 있다.

이 불합리성으로 국회가 열릴 때마다 난장 싸움판이 되니, 제발 이러지 말라. 정치하는 당신들이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국민이 보고 있다'라는 협박은 허깨비 기침 소리처럼 들리며 어떤 국민이 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내 눈에 그 국민이 보여야 할 텐데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나는 나의 이런 사고와 정서를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쪽수에서 절대 우위에 서 애초 상대가 되지 않는 이 싸움은 바르지 못한 여론을 주도하며 민생도 경제도 정치도 다 쓸고 같다. 이러다 나라까지 쓸려갈까 걱정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국가 미래를 위한 거대담론은 없고 개인의 미시담론이 세상 여론을 형성하여 판을 치니 다만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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