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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언론의 역할이 보도와 논평에 있으며 보도는 사실에 입각하여 올바르게 하여야 함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언론의 보도 형태를 보면 독자들을 위한 '사실 보도' 보다 선동성 '주장 보도'를 앞세우며 계층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방송의 본질은 올바른 소식을 전하는 것인데 주요 일반 뉴스보다 정치적 뉴스는 감정적 멘트로 자신의 주장을 더 많이 방송한다. 언론 존재의 본질은 망각한 채 '여론 우선주의 '사회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여론 우선주의 방송의 특징은 대체로 선동적이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보도하는 멘트가 너무 다르다. 탄핵 찬성파 군중들의 모임은 미화시키며 "추운 날씨에도 도로를 가득 메웠다. 시민들은 윤석열 파면을 외쳤고 내란을 동조하는 국힘의원들을 질타했다."는 옹호성 발언을 했다. 그러나 탄핵 반대파 군중들의 모임을 "극우라고 말하며, 헌법재판소와 헌법재판을 부정하는 비민주적 발상이라는 멘트와 함께 재판관들을 공격한다"고 비난하며 부정적인 언설을 쏟아냈다. 공영방송 진행자도 야당 패널 발언에는 토론 내내 맞장구를 치며 거들지만, 여당 측 패널에게는 자신의 편향적 성격을 드러내며 반박하고 설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이런 방송용 언어들은 대체로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말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도한 정치적 멘트는 아무 쓸데없는 말 쪼가리로 변신하여 허공을 떠돌다 우리 주변을 기웃거리며 편 가름하니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지성이다. 제발 이러지 말라. 그렇게 해서 당신들 방송사에서 얻는 이익보다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더 크다는 사실은 왜 모르는가. 방송에서 아무리 자율이며 언론자유를 자신들의 견해에 따라 일방적으로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언론자유의 본질은 언론의 부자유이다. 이 부자유는 혹독한 자기 검열에서 온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의 자기 검열은 이념이나 지향성에 의한 통제 행위가 아닌 사실과 의견을, 존재와 가치를 구별하는 자기 통제 행위이다.
좋은 언론은 사실적 보도로서 가치를 지향해야 할 때 그 사명이 빛난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와 연계된 언론의 언어는 지극히 추상화되어 있고 이념화되어 있다. 심지어 대놓고 감정적으로 적대시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바른 언론은 말하기보다 듣기 훈련도 해야 한다. 독자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비단 듣기는 언론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듣기 훈련을 해야 한다. 방송의 언어는 자기의 주장을 담는 것보다 남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언어가 담벼락에 대고 혼자 주절거리는 소리가 되어서는 아무런 쓸모없는 소음 공해다. 대체로 이런 소리는 전체 국민 삶의 구체성을 외면한 채 내 편 국민만을 위한다. 이런 보도 형태는 대체로 내 편 정치 권력과 공생관계로 엮여 있다.
요즘은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여러 매체가 있으나 맑은 샘물처럼 올바른 여론을 전달하는 매체를 찾기가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가르치는 언론, 바른말로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 올바름을 위한 언로로 가는 그러한 매스컴이 없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언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이 정치에 오염되는 순간 의견으로 사실을 비틀며 사실을 자신들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국가의 위신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야당이 다수를 점거한 국회는 대통령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집요하게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있다. 일부 방송도 덩달아 깨춤을 추며 장단을 맞췄다. 모든 게 사실을 향해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언론에 당한 치욕과 조롱은 끔찍했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위정자들은 계엄을 내란이라고 분노하면서도 속으론 표정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또 다른 세력들은 계엄의 불법성을 확인하는 것은 국가의 위상을 훼손하는 일이며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여론도 만만찮게 있다고 했다. 언론은 과장, 축소, 왜곡으로 부정적 사실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국헌 문란의 원인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감추었다. 계엄에 관한 사실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이미 나름 정당성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군중들이 탄핵 반대를 외치지 않는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비롯해 사법부의 계엄과 관련된 재판은 처음부터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보다 여론몰이의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다. 대통령 측의 변론은 허공 속 메아리로 그쳤고 피해자 방어권 보장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된 채 진행되고 있다. 장외에서는 대통령의 혐의가 무엇인가 정확히 입증되기 전부터 파면 '불가피론'과 파면 '불가론'이 서로 적대하며 군중을 동원하여 장외전을 벌리고 있다. 두 가지 적대하는 여론은 발생한 여론이기보다 일부 언론에 의해 조장된 여론이다.
사실의 기초가 명확하지 못한 상황에서, 언론의 편향적 보도가 일상인데 '국민'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이 사실관계를 국민이 판단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일의 위법성을 가리는 헌법재판소가 있지 않은가. 나는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는 협박은 민주주의 탈을 쓴 파시즘에 불과하다 생각된다. 이 파시즘은 사실을 사실로 정립시키지 않고 사실을 대중의 정서 속에 은폐시킴으로써 자신들 주장을 합리화시키려는 기만술에 불과하다.
석 달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든 탄핵 정국의 본질은 권력투쟁이었다. 두 헌법 기관 사이의 권력 쟁취를 위한 충돌이다. 11차례 이어진 헌재 변론에서 국회 측은 29회 탄핵 과정을 모두 국회의 정당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대통령도 직접 마이크를 잡고서 비상 계엄령 역시 헌법이 보장한 행정부 수반의 고유 권한이라 받아쳤다. 양측의 주장대로 헌법은 국회에 탄핵권과 대통령에게 비상 대권을 부여했다. 양측 모두 헌법에 명시된 각자의 권력을 휘둘렸는데 결과는 최악의 파국 정치로 나타났다.
문제는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이다. 일부 언론은 야당의 주장은 과장하여 호의적으로 보도하였으나 대통령의 주장은 왜곡 보도를 하며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언론은 왜 이러는가? 내가 정작하고 싶은 말은 언론은 어떠한 경우에도 존재 자체의 사명과 본질은 잃지 말라는 것이다. 언론이 감정으로 치우친 보도를 해 분열을 조장할 때 우리 사회는 혼란과 혼돈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 다만 염려스러워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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