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을 베고 눕는 것들
오늘
나, 모든 것을 무게로 표현하지.
발끝의 가벼운 만남과
가슴을 누르는 아픔도
정확히 숫자로 보여줄 수 있지
네가 내 몸에 오르면
제로였던 시간들이 깨어나
나를 움직이게 하지
내 눈빛의 바늘은
상수리 숲을 지나 화려한 저녁 식탁을 가리키지
네가 내 손가락에 끼워주던 약속의 무게
몇 온스의 와인을 삼킨 입술의 무게
마지막 밤의 절정은 몇 킬로그램이었을까
네가 내려간 자리에 아직도 남아있는
무게의 흔적
탄력 좋은 스프링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조금 비뚤어졌던 눈금이 아픈 건
너와 내가 나누었던 사랑이
0은 아니라서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저울은 거짓말을 모르지요. 그런데 이 시는 기계의 입을 빌려 정직함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것을 고백하고 있어요. 시인이 저울이 되어 말하는 순간 객관적인 도구를 가장 주관적인 화자로 바꿔놓거든요. 시는 “발끝의 가벼운 만남”과 “가슴을 누르는 아픔”을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지요. 인연의 가벼움과 부재로 인한 통증의 무게감은 한 사람의 연애사를 압축하고 있어요. 시인은 저울이 이런 감정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지요. 사랑이 오기 전까지는요.
사랑 앞에서 “절정은 몇 킬로그램이었을까”라고 묻는 시인, 사랑을 단위로 환산하려 하지만 이 물음은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닌 것 같아요. 사랑은 무게를 잴 수 없으니까요. 시인은 말하지요. 비뚤어진 눈금, 이 미세한 기울기야말로 그 사랑이 실재했었다는 흔적이라고요.
“상수리 숲을 지나 화려한 저녁 식탁을 가리키지” 이 시선은 사랑이 깊어지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지요. 이렇듯 평범한 밥상에도 사랑이 얼마나 큰 의미를 더하는지, 수치 대신 풍경으로 보여주는 시인. 사랑이 끝난 뒤에도 우리 안의 바늘은 완전히 멈추지 않나 봐요. 그리고 그 어긋남과 틀어진 눈금 안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을 품고 살아가겠지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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