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최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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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연수 시인 |
최연수 시인. 2015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계간 『시산맥』 등단.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외. 평론집 『이 시인을 조명한다』. 철도문학상, 등대문학상, 항공문학상 등 수상. 계간 『시산맥』 편집장 역임. 현재 계간 『시산맥』 편집위원.
Q. 선생님은 “시의 원천은 슬픔”이라고 하셨습니다. 태생적 슬픔과 환경이 빚어낸 슬픔이 겹쳐 있다고 하셨는데, 그 슬픔의 뿌리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 제 시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원천이 되는 시입니다. 이 정서는 태생적인 것도 있지만 유년의 환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정서 깊은 곳에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있습니다. 저는 외할아버지와 유년을 보냈습니다. 맞벌이로 타지에 나간 부모님은 가끔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병치레가 유독 심한 아이는 원기소 통을 목에 매달고 다니며, 들일 나간 외할아버지의 등을 향해 “할아버지~~~” 부르면, 그 소리가 슬픔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고개를 돌려 웃어주는 얼굴이 제겐 위안이었습니다. 할머니를 잃은 할아버지는 외로움을 저와 함께 녹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가 울며 매달리는 저를 뿌리치고 떠난 날, 울음 범벅 된 제 얼굴을 씻겨주고 늦은 저녁을 내어준 외할아버지였습니다. 마냥 인자하신 할아버지 품, 그 품에 안겨 맡던 할아버지 냄새는 참 좋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고등학생일 때 세상을 뜨셨습니다.
Q. 맏이로서의 의무감이 많던 시절, 일탈을 동경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 시는 어떤 의미에서 허용된 일탈인가요?
▶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맏이로서의 십 대는 의무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영향은 지금도 일상적 관계에서 저 자신을 단속하곤 합니다. 차마 풀어내지 못한 엄숙함과 진중함이 오히려 인간관계의 걸림돌이 되곤 했습니다. 가끔 저를 “대하기 어렵다”라는 주변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삶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평소 자신을 억눌렀던 환경과 스스로 만든 규율이 한몫했습니다. 의미도 모른 채 동경했던 그 시절의 시는, 결국 저 자신을 시에 투영해 자유로움 가 닿고픈 이상적 꿈이었던 것입니다.
Q. 외적 일들로 삼십 대는 자신과 무관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시를 만났을 때의 당시 마음이 어떠셨는지요?
▶ 삼십 대는 제 삶에서 끊임없는 책임과 의무감으로 저 자신을 잃고 지내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고, 문득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무게가 머리맡을 짓누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가계와 육아의 책임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졌고, 자신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것이 ‘시’였습니다. 시는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울분과 슬픔과 미움까지 받아준 일탈이자 필연이었고, 그것을 시에 넘겨주면서 주위에 관대해지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시는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Q.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와 평론집 『이 시인을 조명한다』를 나란히 내셨습니다. 시집의 핵심 주제와 함께, 시인이 평론집을 쓴다는 것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였는지 듣고 싶습니다.
▶ 오래전 시집을 냈지만 실제 활동은 평론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시인이라는 직함을 갖고도 중심에서 멀어진 시는 늘 고독했고, 그래서 한 선생님의 조언으로 평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원로부터 신인까지의 시를 읽고 분석하며, 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희열을 느끼곤 했습니다. 모 문학지에 몇 해 동안 평을 연재하고 청탁받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시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고, 시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에 집중하며 출간한 책이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입니다. 평론집이 시를 분석적으로 읽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시집은 자신의 시를 한 단계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이성혁 평론가의 평도 함께 실린 이 시집은,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를 거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순화하고 정제해 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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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출판기념, 양현주 시인과 함께. |
Q. 시집 제목은 시 「빈칸이 많은 캔디통」에서 뽑으셨는데 “안녕이 혼자일 때 녹는다”라는 이 문장에 담긴 의미를 들려주세요.
여기,/ 오래 녹여 먹는 달랑 한 개의 이름/ 길이거나/ 꽃// 여백이 많은 캔디통/ 동그란 소리가 난다면 둥근 뚜껑이 있을 것이다// 그때 까맣게 자란 눈동자들은/ 눈꺼풀 여닫은 캔디/ 열 번쯤 울고 난 뒤에야 우리가 다 녹았지// 차르륵 박하향이 달려가다/ 느닷없이/ 두 개의 바퀴가 한복판으로 넘어지고// 서로를 일으키지 못한 우리가 헛돌았다/ 오래도록/ 네 개의 각을 지운 둥근 캔디통, 그곳엔/ 너 하나만 들어 있다// 여름 반대편으로 달려간 길은/ 같은 이름을 되 녹이고// 여럿으로 바래진 빛깔//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빈칸이 많은 캔디통」)
▶ 예시를 들어보았습니다. 둥근 캔디통을 흔들다 떠오른 감정을 적었습니다. 관계는 나와 타인, 타인들 사이의 소통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지속되기보다 혼자의 시간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롯이 혼자일 때만 보이고 이해되는 것들, 그것을 ‘녹는다’라는 관점으로 연결해 보았습니다.
Q. 시집 속에서 독자들께 들려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목련의 오차
인구조사는 호흡이 가팔랐다
손이 가리킨 골목, 오래거나 갓 핀 송이를 통계 낸 목련의 필체가 흐릿해
가지는 여러 번 숫자를 담에 눌러 적었다
몰래 챙겨 내려간 짐가방은 비밀, 숨은 꽃을 암산으로 헤아리고
발 헛디딘 눈먼 주소지 옆엔 빈 괄호만 남겨두었다
무료함을 켜놓고 일 나간 익숙한 이름을 들고
다시 칸칸을 두드릴 때면
지붕을 밟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산 번지, 찢어진 연과 붕붕거리는 꽃의 시종들과 동거하는
한 채가 적막해
눈부신 외출을 마친 인기척 없는 사월 옆에
온기 잃은 한 켤레 걸음을 기록했다
마른 젖을 물린 어미개와 마주친 순간 녹슨 고리처럼 표정이 얽혔다 풀어졌다
서류철엔 몇 마리 울음이 추가되었다
계약직 같은 봄날의 낮과 밤이 다른
오차와 통계
수수료를 떼듯 하얀 방에 들어앉은 목련 촉이
팍,
끊어지고
학점과 맞바꾼 길에서 유리 밟는 소리가 났다
▶ 위의 시는 대학 시절의 인구조사와 통계에 대한 경험을 적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촌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달동네였던 그곳의 풍경과 심정을 적은 시이기에 애착이 갑니다.
Q. 슬픔과 고독을 감추면서 상상과 이미지에 집중한다는 말씀과 함께, 동시에 그것이 독자와의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반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평론가의 눈으로 자신의 시를 냉정하게 짚는다면 어느 지점인가요?
▶ 현재 제 시는 정서는 뒤로 숨고 기교에 집중해 있다는 자평입니다. 기술에 능한 시일수록 해석이 어려워지고, 그것이 독자와의 거리를 멀게 하는 듯합니다. 이미지가 뛰어나다는 평을 듣지만, 모던함을 추구하면서 시적 서정이 가벼워진 것도 같습니다. 시가 어렵다는 말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독자와의 거리 좁히기가 앞으로 제 시가 추구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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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측부터 성금숙 시인, 한영미 시인, 김영찬 시인, 최연수 시인, 양현주 시인과 함께. |
Q. 「오, 모딜리아니」처럼 회화나 음악에서 시적 영감을 받으실 때, 다른 예술의 언어를 선생님 고유의 시어로 옮기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 저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리기보다는 보기를 즐기는 쪽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속에 감춰진 정서에 집중하게 됩니다. 색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화가가 살았던 시절과 그림 속 이야기에도 눈이 갑니다. 그래서 유독 와닿는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러면 저만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것을 글로 옮기고 싶어집니다. 마티스, 모딜리아니, 피카소를 비롯한 여러 그림을 소재로 글을 쓰곤 합니다.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제 상상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그림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Q. 철학자들은 종종 죽음보다 망각을 더 근원적인 소멸로 봅니다. 시는 잊히지 않으려는 언어이기도 하지요. 노년과 기억의 소멸을 가까이서 지켜보신 선생님께 존엄한 죽음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 근래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편찮으신 아버지, 어머니와의 생활이 길어졌습니다. 맏이의 책임이 가장 앞서지만, 거기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더해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첫딸인 저를 낳아 얼떨결에 부모가 된 두 분의 아픔을 이제야 느끼고, 그동안의 곡절까지도 이해하게 됩니다. 동생들이 겪었을 힘듦도 헤아려지고, 제 가정의 소중함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부모님이 좀 더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주변을 살펴드리고 싶습니다.
Q. “존엄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시를 쓰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앞으로 쓰고 싶은 시의 방향이 있다면요?
▶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도 압니다. 눈빛이 변해가는 모습, 부성과 모성은 남아 있되 본성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부모님의 흐려지는 기억을 보며, 이제는 제 삶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시로 형상화해 보려 합니다.
Q. 앞으로 독자와의 거리 좁히는 일이 선생님께서 추구한 방향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선생님이 생각하는 ‘좋은 시’의 조건은 무엇인지요?
▶ 요즘 시인들은 시를 잘 씁니다. 오히려 제 시가 왜소해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좋은 시는 울림을 주는 시인 듯합니다. 그냥 ‘잘 썼네’ 하고 지나치는 시보다는 저의 경험이 녹아든 시, 독자들과 공감하는 울림이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Q. 부모님을 돌보며 느낀 사랑과 존엄의 의미를 담은 진솔한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시인으로서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리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 시는 저를 더욱 홀로 있게 한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만큼 시에 저를 내어줄 수 있고 또 다른 무엇을 돌려받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갈수록 폭이 좁아지지만, 그 깊이는 더해가는 것을 느낍니다. 시와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넓지 않아도 깊은 삶, 그것이 결국 제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 초대석’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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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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