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마구잡이 세상 이대로 괜찮은가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4-11-01 13: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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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최근 언론에는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사건을 빼고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 해주는 작은 사건들이 여럿 보도된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의 하나는 평소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을 마구잡이 폭력행사를 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한 사건들이다. 살인의 동기는 답답한 사회 현실에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신 처지의 어려움이나 사건의 몽매한 잔학성을 떠나서 자신의 범죄를 사회적 관점에서 정당화한 것은 더욱 넓은 함축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

묻지 마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을 한 것은 단순히 원한이 있었다거나 그 외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 사회에 대한 격분에 자신의 분노 조절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협이 없이 치닫는 사회의 형태를 볼 때 범인의 사회학적 이유에 전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고 그의 분노의 원인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문제는 그의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에 이용된다는 것에는 어떤 이유로도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제는 아무에게나 마구잡이로 사건을 일으키는 행동 자체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뭐든 마구잡이로 내닫는 사회의 풍토, 이것이 점점 보편화 되어 가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이다. 그 책임이 작게는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있다고 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가는 지도층에도 있다고도 봐야 한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사회는 분명 빗나간 사회다. 특히 서로의 이해가 빗나감이 일반화하는 풍토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나라 성인 절반은 만성적 울분 상태에 있은 것으로 나타났다. 30대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울분을 느끼는 비율이 전 연령대 가운 대 가장 높았다. 지난 6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의 2024년 한국 사회 울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6월 만 18세 이상 1024명에게 1년 동안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 등을 19개 문항으로 묻고, 답하게 했다. 그 결과 49.2%가 만성적 울분 상태로 집계됐다. 특히 심각한 울분 비율(9.3%)은 G7 국가 평균 조사치(3.8%)의 2.4배에 달했으며 그 결과는 마구잡이 폭력행사와 묻지 마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조사됐다.

조사의 결과를 보면 마구잡이식 폭력이 온전히 개인 탓은 아니다. 경제 저성장과 높은 집값과 고물가 등 구조적 원인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짓누르고 있다. 정부가 선제적 정책을 제대로 못 한 측면도 있지만, 문제는 정치도 한껏 더 보태며 울분의 사회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더욱 우리를 전율케 하는 것은 지도층 세력의 전가(傳家)의 보도처럼 이용하는 정의와 평등, 약방의 감초처럼 빼놓지 않는 국민팔이는 어느 수준의 누구를 향한 국민인지 모호하다. 그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엉터리ㆍ저질 ㆍ거짓ㆍ선동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은 조금도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22대 국회가 개원 후 마구잡이 몰지각 망령 여의도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일반적 분석으로 부정적인 감정과 가치에 기초한 사회는 지속적인 발전과 희망이 없는 사회로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 계층과 계층 등 복합적 요소가 뒤엉킨 세상에는, 강한 대중적 호소력을 갖기 쉬운 것은 부정적 요소다. 특히 권력 투쟁을 위한 여의도의 파당적 정치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 정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게 강한 사회이고, 이것은 사회의 주요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감은 너무나 쉽게 부정적 감정에 연결된다. 야당에서 지적하는 여러 사안의 현상적 수사(修辭)에도 이것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면한 문제는 해소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그러나 당면한 과제가 전부인 정치 기획에는 부정적 감정의 촉발만 시킨다. 의회를 주도하는 정치는 마땅히 대중의 불인지심(不忍之心)을 환기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마구잡이식 야당의 수사에서는 이러한 것은 찾을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물론 현 상황에서 적대 감정을 환기하는 것이 우리 정치 문화에선 언감생심일 수도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이 모두 인기는 얻지 못한다. 어떤 정책은 대다수가, 때론 모두가 외면한다. 인기는 없어도 국가의 생존이나 좋은 사회를 위해 절실한 정책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정치 영역이 열린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일은 평범한 소시민이 울분케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안이 발생할 그때마다 국민은 없었고 오로지 정치적 이해관계만이 그 중심에 있다. 이제 좀 바꾸자. 유리한 여론을 위해 괴담을 퍼트리며 민심을 현혹하는 정치, 인기를 위한 퍼주기식 선심 행위. 오바마는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눈치 보려 정치하는 건 아니다."라며 "인기 관리가 목적이면 정치인이란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 욕먹더라도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하려고 대통령이 됐다"라고 했다.

지도자를 참칭하는 정치 사기꾼들의 발호로 국민이 항심(恒心)을 가질 수 없는 혼란하고 암울한 요즘이다. 고착화 된 미움이 세력화하는 시대, 마구잡이가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 사는 국민은 불행하다. 그래서 이것을 바로잡는 것을 재촉하는 일은 아직도 유효하다. 정치란 대체 무엇인가? 서민들이 근본을 잃을 때 망각을 치유하는 샘물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서민들이 근본으로 회항해야 하는 이때 한국의 정치는 외려 마구잡이 시대로 가자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그런 길을 정치가 터주어야 된다. 무엇보다 대승적 차원의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이 사회적 문제에 답하지 못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모든 담론은 다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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