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잡다
김조민
도시에서 유학하던 아버지는 배가 고프면 설익은 감을 따 아랫목에 넣어두고 배가 고플 때마다 손을 넣어 가만가만 감을 만져보셨다는데, 단단한 감이 물러지기 시작할 즈음 밤이 깊어가고, 만지면 보일 듯 말 듯 파문처럼 감의 껍질 위로 동그라미가 뜨는데 침이 고이고, 이불 속에서 설익은 감을 조심조심 눌러보며 나중에는 엄마의 젖가슴도 그렇게, 또 나중에는 갓 태어난 내 정수리도 그렇게 조심조심 눌러보셨다는데, 아직도 감나무를 보면 설익은 감을 따 가만가만 만져보시는 아버지, 초록빛이 도는 감위로 아버지가 비치고 아버지는 약관의 청년이 되고 초록 감이 붉게 익는 것만이 세상 가장 큰 소원이던 그때가 청년의 눈 위에 되비치는데, 그런 아버지를 볼 때면 나는 내 바로 전의 생을 조심조심 더듬어 기억해 내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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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작가 |
여전히 감을 따서 만져보는 아버지. 이 모습에서 초록빛 감위로 청년의 얼굴이 비치며 과거와 현재가 포개집니다. 아버지에게 설익은 감은 기다림의 열매였을까요. 이렇듯 아버지가 감을 만지는 행위와 “전의 생”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화자의 행위가 겹치며 깊은 울림을 주지요. 이 울림은 초록에서 붉음으로 익어가며 독자인 저를 화자의 기억 속으로 이끕니다.
손끝에서 그리움이 익어가던 시절이었지요. 단단하고 파란 감을 층층 쌓아 놓은 대바구니 속, 아버지는 아침마다 붉게 읽어가는 감을 눌러보곤 했어요. 그런데 감은 하루에 하나도 익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한 개가 익은 날은 할머니가 두 개가 익은 날은 아버지가, 그다음은 늘 제 눈시울만 붉었지요. 그래서 밤이면 몰래 감을 숨기고 다음 날 부화한 병아리를 반기듯 감이 익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어릴 적 향수가 오롯이 담긴 「감, 잡다」,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과 가족의 서정 때문인 듯해요. 어쩌면 우리의 아버지들은 부드럽게 시간 다루는 법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이 모습을 보고 자란 화자는 이제 시인이 되었고요. 시인이 되어, 시고 떫은 감을 노을처럼 풀어놓습니다. 아름답고 애틋하게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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