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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정치 1번지 여의도엔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인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근간이 사라진 것이다. 지도자들의 진정한 경세(經世)의 리더쉽은 간곳없고 상대방 죽이기의 결사 항전만이 난무한다. 정치는 나라를 바르게 정자정야(政者正也)하는 것이며 '국가는 국민을 위한 최선의 삶을 실현하는 공동체'라는 당위를 비웃는 듯 정치 거간꾼들이 활개 친다. 여ㆍ야 모두 절박한 정치 쟁점을 두고 사생결단의 난전(亂戰)으로 비화하니 국민의 삶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난파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현 시국과 정치는 비정상의 총체적 집하장이 되었다. 권력에 환장하고 권력에 눈이 뒤집힌 자들 모두가 권력을 향한 기갈을 깊이 감추고 정의와 공정의 깃발을 흔들며 온 나라를 수령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구별조차 헷갈린다. 통치 권력이 되었든 의회 권력이 되었든 힘센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힘없는 서민들을 이처럼 능멸하고 내 팽개쳐도 되는가. 정치인 모두가 미쳐서 날뛰며 이기화(利己化)된 정치 언어의 뻔뻔스러움은 추상성 속에 서식하며 서민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무기력증과 야당의 막무가내식 끝장 투쟁에 훼손된 통치력. 급기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무제한 기자회견을 자청했지만 시국을 풀어나가는 해결 실마리는 찾지 못했고 난국은 제자리걸음으로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소수당이 된 것도 모자라는지 계속적으로 계파 간에 불협화음이 들린다. 힘을 대야 전선에 쏘아도 모자랄 지경인데 내분에 휩싸여 불필요한 소모전을 하는 기가 막힌 경우를 보며 달리 뭐라 말할 길이 없다.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 민생에 빨간불이 들어온 지가 오래다
민주당도 쪽수의 힘으로 적대 정치를 하며 적을 양산했고 전방위로 정치 전선을 확대했다. 탄핵과 특검, 고소ㆍ고발의 남발로 정치를 법정으로 끌고 갔지만, 자기 당 대표의 정치 운명은 법정에 맡기는 형세가 아이러니하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법치라고는 하지만 판결이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이 정상인지, 우리 정치는 너무 법에 오염돼 있다.
뫼비우스띠처럼 끝없는 수렁에 빠진 여의도 정치를 보며 좋은 정치 잘하는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진정한 정치의 궁극은 책략을 넘어선 곳에 있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은 권력ㆍ 부 ㆍ명성을 노린 정치 투쟁을 넘어 인간다움을 고민하고 성숙한 시민 정신을 실행하는 도덕적 지평을 천착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현실이 어지러울수록 근본을 돌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 여ㆍ야 정치에 꼭 필요한 게 지지지지(知止止止) 이다.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군사와 오랜 시간을 대치 중이던 고구려 을지문덕은 지질대로 지친 수나라 장수 우문중에게 지지지지(知止止止)라는 내용의 시를 보냈다.
"신묘한 책략은 천문을 꿰뚫었고 기묘한 계산은 지리를 통달했네, 싸움에 이겨 공이 높으니 족함을 알아 인제 그만두게나" 을지문덕이 우문종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정확하게 이런 것이다. "그침을 알고 그쳐야 할 때 그칠 줄 알았지, 인제 그만 철군하여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다친다"라는 뜻이다.
지지(止止)는 주역 간괘(幹卦) 초일(初一)에서 "그칠 곳에 그치니 속이 밝아 허물이 없다"고 한 데서 나온 글이다. 범이 산속에 있지 않고 도심에 출몰하면 사람들은 재앙으로 여겨 범을 잡는다. 장수가 칼을 찼으면 전쟁터에서 칼을 뽑아야 칼의 위력이 있지 아무 곳에서나 칼을 뽑으면 칼의 위력은 쪼그라든다. 이미 도를 넘었는데 아무 일 없으니 괜찮겠지 하며 멈추지 않고 계속 내지르다가 큰코다친다. "그침을 아는 지지((知止) 도 중요하지만 이를 즉각 실행에 옮기는 지지(止止)가 더 중요하다" 고 경전은 말한다. 모든 일은 그칠 수 있을 때 그쳐야지 나중에는 그치고 싶어도 그칠 수가 없는 게 세상 이치다.
대선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주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년 2개월을 끌던 재판의 첫 선고인데 무죄를 주장하던 민주당은 예상치 못한 상당한 중형이라며 충격에 휩싸였다. 야당은 법원의 1심 선고를 받아들이기는 고사하고 "미친 정권의 판결"이라며 마치 정적 제거에 검찰과 법원이 동원됐다고 적개심을 불태우며 장외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그야말로 법치주의의 법치를 전면 부정하며 정치와 법이 전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장외 투쟁은 과거 거대 여당에 일방적 횡포 반발해 소수 야당이 온몸으로 저항하는 수단으로 써 온 것이다. 180석이라는 절대다수의 입법 권력을 쥔 거대 야당이 장외 투쟁에 나서는 모습은 그야말로 볼썽사납다.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리자고, 헌법으로 보장된 삼권분립을 무시하며 장관을 탄핵하고, 적법한 절차로 임명된 기관장을 탄핵하며, 대장동 불법을 조사했던 검사를 탄핵하는 것도 모자라 내 맘에 안 들면 판사도 탄핵하는 세상이다. 그래도 성에 안 차면 장외 투쟁까지 과연 이것이 올바른 방법인가. 법과 제도가 내 입맛에 안 맞으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 이게 후진국형 파쇼이즘의 독재 정치다.
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은 무죄 선고가 되었다. 야당은 환호했고 여당을 판결에 부정적 논평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죽이는 정치는 그만하자고 했다. 그렇다 이젠 여ㆍ야 공히 정치싸움 상대방 죽이는 정치는 그만해야 한다. 양식이 있는 사람은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가려야 한다. 꼭 해야 할 것을 잘 가리는 게 지지(止止) 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반복적으로 행한다면 결국은 추하게 된다. 그런데 이 분간이 참 어렵다. 지도자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이 분간을 잘하기 위해서다.
지금 정치인들은 과연 해야 할 것과 삼가 할 것을 잘 구분하고 있는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구분해야 할 일, 그들의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 통치 권력이든 의회 권력이든 모든 권력은 국민들이 민주정치를 찾아 헤매기 전에 먼저 멈출 줄 알아야 하며, 정치는 우리사회를 옥죄고 있는 비정상의 동아줄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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