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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지나가 버렸지만, 아직도 지난 정권의 행적은 너무 많이 우리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이제 항시 열려있는 문으로도 이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아니 돌아올 수 없는 것이건만 국민의 마음은 아직도 어리석은 애착으로 시달리고 있다. 어쩌다 펴보는 신문에는 어김없이 지난 잘못이 나열되어 자주 우리 생활 속에 망연한 사념 속에 나타난다.
아침에 신문을 읽기는커녕 펴 보기조차 두려워졌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눕는 풀처럼 언론이 그 모양이다. 그들의 본질인 현재 권력을 견제하는 게 아니라 과거 권력을 난도질하는 내용으로 온통 도배 되어 있다. 늘 상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머릿기사를 차지하는 언론들을 보며 언론에 글을 기고하는 나로서는 고해성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밖에서 하루가 멀다 하며 변해가는 수출 환경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인권은 둿전이다. 물론 현실과 이상, 이 두 가지를 함께 이루기는 진실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갈등과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금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과거에 겪었던 갈등보다 더 심각한 갈등에 시달리게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간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를 내쫓고 누가 정치 권력을 쥐느냐로 피가 터지도록 싸우는 그들만의 리그 전. 정치가 이래서 안 된다고 저래서 탈이란 내용이 이젠 식상하다. 잘 짜여진 각본과 그에 따른 프레임에 갇힌 블랙홀 정치를 보며, 마치 지난 시절의 정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 과잉된 행동들. 그래서 모든 일에 더욱 관심을 잃게 한다.
세상 문제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역동적 시대다. 우리의 현실인 고용절벽의 내몰린 청년세대와 노년층의 복지 문제 등 절박한 미래 이슈를 다루겠다는 시대정신은 어디에도 없다.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환경, 교육. 언론이 시대적 어젠다를 효과적으로 공론화해야 함에도 그런 문제는 늘 관심 밖이다. 언론과 정치가 국민의 눈과 귀를 국내 정치와 과거 권력의 잘못된 것에 붙들어 놓는 것은 직무 유기를 넘어 죄악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작금의 보도 형태나 정치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그 배경에는 부족 정치에 머문 우리 정치인들과 그에 보조를 맞춘 로컬 미디어들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자만에 빠진 '주지주의'(主知主義)의 허영과 과욕에 찬 성취의식이 세상을 빙하기로 만들고 있다. 호들갑을 떠는 실존 권력, 그들은 모두 헛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게 아닌지. 그들은 특검이라는 정국을 마치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으며 계엄이 무슨 이변(異變)이라도 된 것처럼 과장하며 요란스럽지만, 오직 그들만이 시대의 해결사인 것처럼 오도하지만, 그 짓거리 자체가 국민으로부터 대지와 생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허공에다 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게 옳을까. 주어진 칼로 아무 곳에나 찔러 상처를 만들면 광란의 굿판이 끝이 날은 없지 않은가. 특검은 자신들의 기발한 상상력이나 엉뚱한 속단, 또 한 허상으로만 이루어진 그들만의 상형문자(象形文字)를 평범한 민초들이 해독하지 못한다고 온갖 이유를 붙여 자신들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기실 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지금 하는 모든 것이 부메랑으로 이윽고 무너져 내릴 그 바벨탑과 더불어 땅에 떨어져 묻히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일 수도 있다.
아, 불행한 자들이여. 당신들의 지나친 얇을, 독선을 경계하라. 자신들의 감정을 과장하지 말고 단순하고 정직하라. 하늘을 보고 역사를 보라. 그리고 이젠 "고만 하고, 그만해라." 지금까지만 해도 충분하니 광대의 굿판은 거두어라. 마지막 잔까지 다 따르고 빈 잔을 쳐다보는 허탈함을 기어이 봐야 하겠는가.
기댈 곳 없는 소시민들은 또 어떤 미망에 사로잡힐 것일까. 정치, 경제, 외교, 계층간사회 불안 등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해 모두가 비관적 견해다. 지주주의에 빠진 빙하기 정치는 새 정권이 본격 출발하기도 전 벌써부터 삐꺾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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