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오히려 그러한 환경의 해택을 받을 수있는 사회적 여건에 감사할 뿐이다. 남존여비의 사고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시대를 살아오면서 스스로 얼마나 소외감을 느끼면서 언젠가는 해 내겠다는 각오가 있었는지 모른다. 모든 열악한 환경은 내가 나되는 것을 한층 부추겨 주었으며 그러한 것들 때문에 오히려 감사를 느끼고있다.
나의 모든 현상들은 모두 사실이요, 어느 것하나라도 과정이 생략된 것이 없다. 만약 과정이 허술하게 지나간 것이라면 다시한번 아니 여러번의 반복을 경험하고 합격의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들을 수 없이 체험하였다. 그 만큼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기에 그 과정의 시간과 노력만큼 귀하고 값진 것이요 남들이 겪지 않는 고생을 겪어야만 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와 오해등 수많은 억측들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함구 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를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느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를 기다렸다. 물론 그 동안 오랜세월을 억울하게 당하고 견디며 수많은 눈물을 참고 또참으며 그 시간을 기다려왔다.
나의 작은 가슴에 맺힌 한의 양은 그 누구보다 깊고 많았다. 그러기에 그것들의 제거 작업이 그토록 모질도록 힘들고 어려웠다. 이 세상은 잠깐 머물다 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실제로 인정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모든 것들의 이해가 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진실만큼 하나님을 알 수있는 진실만큼 그것 또한 명료하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진실만큼 종류가 다양한 것이 없다. 모두 자신의 것이 진실이라고 할 것이므로 그 기준이 어느지점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진실의 기준은 하나님으로부터가 참일 것인데 하나님의 기준도 인간의 진실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그것 또한 만만치가 아니하다.
그러한 진실이 밝혀지는 시간만도 오랜시간 필요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누구든지 사람을 변화시킬 수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참에 가까울 것이라는 얘기다. 변화라는 의미는 근간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근간이 움직여서 변화되는 것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있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나님과 손잡고 진실한 대응으로 삶을 뚫고 나온 사람을 보지못했다. 만약 그러한 진실이 존재했다면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세월이 흘러오면서 그 역사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들이 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되어 진다면 어느정도 완숙의 경지라고 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참의 진실이 각자의 진실에 따라 다르기에 언제나 문제제기가 된다.모든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그러나 그 진실을 측정할 수있는 기준이 없었으며 있다고 해도 과연 누가 할 것 인가도 문제다.
그것의 분별이 쉽게 되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상식으로는 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삶에서 알 수있게 된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그 삶의 기준 또한 애매모호한 상태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것의 진실을 완전하게 분별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렵고 그 근사치만이라도 될 수있다면 다행스런일이다.
결국 그 분별은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그 사람자체의 진실여하에 따라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의 함량정도가 나타나게 될 것이고 그것에 따라 하나님의 증거 또한 나타나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며 결국 그것 또한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용이치 않다.
지금까지는 외형의 크기가 기준이 되어 오고 있지만 그것들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어도 아직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확실한 이정표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얼버무리는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류의 올바른 이정표가 가장 핵심이다.모두 보이는 이정표를 쫓아온 결과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본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영원히 회생되기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된다.
아무도 보이는 현상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외치는 자가 없었다.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보이는 현상으로 유지가 되어왔고 그 동안은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반면 정신세계는 점점 고갈되어 어느누구도 지금의 상태는 틀렸노라고 부르짖는 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론만으로는 불가하며 실제가 되어야 힘이 발휘되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믿는자나 믿지 않는자나 보이는 현상의 색다른 인물에게 모두 기대를 갖고 동조해 보지만 역시 그 또한 실망의 잔재들만 남겨주고 떠나버리고 또다시 새로운 인물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 줄 것을 기대하지만 과연 원하는 욕구가 채워질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언제나 이전보다 더 나은 새로운 것만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마치 체면에 걸린 시람들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제나 저제나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인간의 한계를 맛 보았으면서도 어느사이 망각해 버리고 또 다시 반복적인 기다림의 연속만 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그러한 욕구가 채워질 수있을 지 대부분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설사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대책을 알 수가 없으므로 그런대로 세월만 보내고 있다. 어느느구도 모든 인류의 바램 자체가 진정으로 바래야 할 것을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없이 슬픈일이다.
그것은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고 잘못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므로 문제해결의 필요성을 방향이 전혀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라리 그 어떤것도 참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어느 한쪽이 아주 심각하게 못쓰게 되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면 치유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잘못되어진 원인 규명조차 대충적인 방법이지만 땜질을 잘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대처에 능수 능란하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할 뿐아니라 그로인해 언제나 근원적인 해결이 더 어렵게 된다.지금 처해진 상태의 문제가 경제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경제만 회생되기만을 바라고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인선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 또한 엄밀히 따져보면 땜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오늘에 나타나는 부작용의 원인이 경제가 잘못되어 나타난 것으로 오해 하고 있을 뿐 그 한가지의 이유때문이 아니며 하루이틀에 있어진 것들이 아니다.먼저 물질만 해결된다면 그 다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를 따져 보는 것이 순서다.
지금 당장은 놓여진 상태의 핵심적인 치유와 응급조치는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것과 발맞추어 애시당초 이러한 문제가 생긴 발단이 어디서부터 였는지 알아야한다. 역사가 진행해오는 동안 그 길을 제대로 걸어오고 있었는지 아니었는지 인류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의 틀이 제대로 가고있는 상태에서 생겨진 것들인지 아닌지 따져 보는 것이 더 우선 되어야 한다.보이는 판단은 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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