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될수록 안된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며 피한다. 과거에 나 자신도 그러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안다. 제발 하나님을 잘 믿을 테니 안 된다는 소리만은 사절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사정이라도 하고 싶었던 기억이 많다. 그 후 오랜 세월을 하나님과 함께 부셔지고 망가지면서도 한참동안은 그러한 생각을 온전하게 내려놓지 못했으며 그 길이 참의 길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 길은 전혀 예상할 수 없고 불현듯 찾아오는 것 같지만 모두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진행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그런데 신기하게도 진행하는 동안 부셔지면서 자신이 세워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그렇게도 자신이 없고 사건앞에만 서면 움추렸던 사람이 점점 당당한 모습으로 바껴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더 밀도있게 알게되고 인간과 세상의 의미 또한 과거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회한의 미소를 지을 때가 많다.그러했던 나를 이렇게 고쳐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다 표현하고 보답 할 수 있을 까마는 할 수만있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몇 만 분지일이라도 보답하고싶다.
사람들에게 가끔은 위로의 말이 필요 할 때가 있다. 찰나적인 순간에 한마디의 위로가 그 사람의 생사를 가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그러한 것들이 찰나적인 위기모면일 뿐 근원적인 처리는 불가하다.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찰나적인 위로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심각한 사태를 덮어두고 위로만을 일삼았기 때문에 오늘의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위로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속은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인데 괜찮다는 위로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위로는 근원적으로 온전한 길에 들어서 가는데도 힘이 부쳐 보일 때 조금의 위로만 보태어준다면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때 필요하다.
문제가 발생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들이 잘못된 상태에서 그러한 것들은 덮어둔 체 괜찮을 거야라고만 한다면 영원히 고쳐지는 기회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나마 지적해주는 것은 치유의 기간을 단축시켜주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하고 왔던 방법들이 어쩌면 사건의 진상은 그대로 두고 괜찮을 것이다, 좋을 것 이다 라는 것들 때문에 더 심각하게 진행이 되었다고 본다. 세상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책들 또한 모두 위로의 말이나 긍정의 말이나 좋게 된다는 것들의 내용이 많다.
그것보다는 누구라도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지적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앉으나 서나 그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신 것들을 토대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될수록 과거에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환영한다.
지금 고통을 통과하고 있거나 이미 오래전부터 고통에서 벗어나지못한 사람들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왔지만 도저히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기다리고있다. 이 길을 오는 동안 많은 목사님들의 도움은 받아왔지만 결국 깊이 들어 갈수록 혼자서 나의 하나님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그러므로 더듬더듬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앞서가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아무도 나의 초토화 되어가는 삶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게 하지 못했다. 나의 도움으로 그러한 고충과 시행착오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다.
특히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영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에 노출되어있다. 그 때를 놓치지 말고 나의 하나님을 만나야한다. 생명의 가는 길은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며 그 길만이 살길이다.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조차도 점진적으로 진행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생명은 기적이 없다. 가면서 돌부리도 만나고 폭풍도 만나고 허리케인도 만난다. 그러나 진실만 있다면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유익으로 만들어 더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통과 하게 하실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실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고통을 통과하는 사람은 그만큼 유익일 것이다. 인간의 정로는 어느 누구라도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기왕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것이 그나마 유익이다. 고통이 찾아올 때 나를 고칠 수 있는 조로의 찬스라고 맞는다면 엄청난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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