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인간의 회복이다. 그동안 잠식당한 환경의 정체를 밝히고 그 환경의 철퇴작업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환경을 다스리는 상태로 회복되어야한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려 그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가능한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힘과 위치가 바로 되지 못하면 언젠가는 외부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인간도 스스로 인간들이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에 환경에 권리를 빼앗겨버렸다. 이러한 원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이 우주는 결국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당하게 되어있었다.
결국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은 스스로 강함의 소유자가 되는 길이다. 그 가는 길초에 더 강한 것들에 의해 잡아먹히게 되거나 굴복 당하게 되어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가게 된다. 호시탐탐 정복하기 위하여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원리를 알았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느 사이 사람들은 사람의 어떠함보다는 그 사람의 환경을 더 숭상하고 환경의 어떠함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환경을 가꾸려고 안간힘을 다 한다.
인간들은 오래전부터 다시 회복의 당위성도 알지 못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다. 누구도 인간의 중요성을 알게 하지 못했으며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회복을 주장하는 이도 거의 없다.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정도일 것이지만 그 말 자체도 숨어 버린 지 오래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그 동안 인간에 대한 실망이 한 몫을 담당했으며 인간에서 출발한 인간은 아무리 잘 났다고 해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결론에 도달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인간에게 바라는 기대에 식상해버린 지 오래 되었다.
그것의 회복은 가능한 것일까? 모두 의심하고 있다. 인간자체보다는 좋은 환경을 등에 업은 인간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환경이 곧 인간의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시대가 되어버렸다.환경을 통하여 참 사람이 되어야 할 인간의 실존적 가치가 숨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환경을 위해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그러한 해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환경에 빼앗긴 권리를 다시 찾아와 환경의 지배에서 놓임을 받으면 된다. 누군가 이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가 나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야한다. 환경이라 하면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든 것들을 뜻한다. 무엇이나 넘지 못하면 약자요 결국 강자의 지배를 받는 것이 이치다.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려야할 인간이 약자가 되었으며 환경은 강자가 되었고 그러므로 약한 인간이 강한 환경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지금껏 실패한 원인도 인간의 힘으로만 시도했기에 안 되었다. 이제라도 출발이 하나님이었으므로 지금까지 따라갔던 하나님이 아닌 수정된 하나님으로 다시 출발하면 가능케 된다. 다시 각자 삶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재손질하여 다듬어나가면 된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보이는 현상인 환경의 정체를 먼저 파악하여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의 길인지 알아야한다. 먼저 환경에서 자유를 누려야한다. 환경을 하나님과 함께 자유 하여 인간이 환경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되는 모습이다.
보이는 현상, 환경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그림자다. 보이는 세상을 철저하게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참의 길이다. 그렇게 되면서 서서히 환경에서 자유를 얻어간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다. 영원한 세계와 연결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도인지 알아야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인지 그것이 문제다. 모두가 그러한 갈망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또 다른 신을 찾는다.우선 우리의 시각부터 바로 잡아야한다. 지금 당장에 펼쳐져있는 보이는 세계는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미래의 보이는 세계를 위해 준비된 재료들이다.
미래를 위하여 보이는 현상을 통하여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현재의 보이는 세계가 육의 차원이라면 보이는 현재의 삶을 하나님과 함께 다시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다. 누구라도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당장 현재 보이는 현상을 통하여 다가오는 나의 신상의 문제들을 하나님과 함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진행이 되어야만 한다.
이 세상의 전투는 혈과 육이 아니라 영의 전쟁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영을 알아야 만이 살아갈 수 있으며 영을 모르면 영원히 숙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지금도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발단은 영에서 부터의 고장이 시작이 되어 왔지만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므로 문제의 핵심은 물론이고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모든 움직임을 영으로 꿰뚫어볼 수 있어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점 하나에서 출발하여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것은 영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일순간에 퍼져나간다. 시대가 악화일로에 처하고 있다면 좋지 않은 세력들의 결집은 더욱 거세게 일어난다.
반대로 좋은 것들의 결집은 좋지 않은 세력들 때문에 기를 펴기가 어렵다.그만큼 영의 세계는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렵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의 승리는 있게 마련이다. 비록 지금은 아주 작은 점에서 출발이 되어도 결국 참은 언젠가는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세상은 악이 극치를 달리고 있어 왔지만 악의 붕괴가 시작이 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그 동안은 참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그 의미자체도 이론만 접했을 뿐 몰랐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더디 되더라도 분명히 참의 승리가 이뤄지리라 믿는다. 앞으로 어떤 지도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 다스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본다.
누구라도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은 본인의 영적인 현주소라고 보아야한다. 지금까지는 다소 미흡하지만 머리로 지식으로도 웬만큼은 가능했을 것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어렵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는 점점 어렵게 되는 시대가 도래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들 역시 하나님을 믿지만 아무리 열심을 다 한다고 해도 지극히 피상적인 믿음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과는 전혀 무관했다고 보아야한다. 그러한 것들은 세상적인 지식과 다를게 없다고 여겨야한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본인이 영을 알아야하고 그것은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악한 영에 시달리고 당하면서 이기는 연습을 많이 했어야한다. 그러면서 그 악을 통하여 내면에 생명이 쌓이게되고 자신이 변화되는 현상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생명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이 되어야 이 세상을 넉넉하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여지없이 많은 돌발사건에 직면 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 악을 어떤 방법으로 장악하거나 다스리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영원히 무덤까지 그 악과 함께 가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악은 더 큰 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가난도 더 큰 부요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해야하며 세상의 부귀영화는 잘못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을 즈음하는 이 시대는 모든 악이 동원되었으며 그 악을 딛고 보이는 모든 현상을 장악하는 시대가 도래되고 있다.
누군가 반드시 그러한 악들과 가난들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를 거둔다면 이 세상을 승리하는 모델이 되어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이기게 도와줄 수 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삶을 살아간다고 했지만 그러한 방법들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극히 피상적인 방법이었다.
오랜 역사를 진행해오면서 왜 지금까지 그러한 방법을 알지 못했을까 의구심이 들것이지만 그것역시 하나님의 계획의 일환이셨을 것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수준도 단계가 있다. 육으로 믿는 피상적인 방법과 영으로 믿는 참의 방법이 있다.
대부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피상적인 방법만을 고집하고 있지만 그것은 영원히 하나님의 참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한다.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격적인 시작은 영으로의 진입이 될 때부터이며 그때부터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이 된다고 보아야한다. 그것이 생명이다.
언제든지 본인이 원하면 하나님께서는 즉시 과거의 육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또다시 재현하시면서 처리를 받게 하시고 생명으로 진입이 된다. 영의 삶이 시작되면 삶 자체도 더 빠르게 진행이 되면서 날마다 전투가 일어나게 된다. 그동안 잠자던 귀신들의 출현이 시작되므로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되면 날로 승리하고 나아지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신명이 난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생명은 당해야만이 생성이 되기 때문이다. 당하면서 육에 있는 귀신이 해결이 되고 깨닫게 되어 점점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지게 된다.
인간의 태어남이 모순으로 태어났기에 날마다 두들겨 맞아야 육속에 들어있는 귀신이 나가게 되고 새롭게 변화되기 때문에 당분간은 날마다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나의 결핍이 있는 만큼 새로운 사건이 즐비하게 일어나게 되는 가운데서 부딪히고 당하면서 변화된다.
지금당장 눈앞에 설정된 보이는 현상은 참 나를 만들기 위한 가상적인 세계라고 보면 된다. 그 세계를 뛰어 넘어야 만이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현재 보여 지는 현상을 통하여 당하면서 나의 내면에 가치로 바뀌어 쌓여 진다 .그 가치들이 모여 빛을 발하게 될 때까지는 어쩔 수없이 인내하며 앞으로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 시간과 당하는 고통은 만만치는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임시방편으로 지금 현재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그러나 정작 알고 보면 그것은 참이 아니며 환경일 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으로 생겨난 부나 명예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다시 망가뜨리고 세우시기를 원하신다.
그것만이 참이요 영원하기 때문이다. 부나 명예뿐이 아니다 모든 요소요소에서 다 그렇다. 그러나 아직 어느 누구도 그렇게 다시 만들어진 사람은 없었다고 보아야한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그 뜻을 알고 끝까지 죽지 않고 해낸다면 아마도 엄청난 일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재탄생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그냥 망하고 안 되는 것이 다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하나님께서 치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당하면서 날마다 승리하며 깨닫고 가치의 축적을 일 삼아야한다. 그러한 이유와 원인을 모른 체 마냥 가난하고 망해가는 것은 더 큰 문제가 된다.
하나님을 모르고 당하는 고통은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어쩌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극복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참의 방법이 아니므로 또다시 그러한 고통에 휘말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완벽하게 극복이 될 수 있다.
누구라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부와 명예는 영원한 것이 못 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반드시 있다. 오늘에 있어지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해결하게 하시려고 주셨다는 것을 알고 놓쳐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이 망하고 깨어지고 부셔지는 현상을 만날 때도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내야하며 나의 결핍의 보완을 위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날마다 아직도 무엇을 고치기를 원하시는지 기웃거려야한다.가다보면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을 때가 있을 날이 분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본인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들 속에서 어느 정도 감지가 된다.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하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부가 영원한 것이라 착각을 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도 영원히 가난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날마다 가치를 위해 살아가야만 한다. 가치가 양이차면 외형은 자연적으로 채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방법을 어느 누구에게도 듣지 못하였으므로 모두가 엉뚱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당하지 않고 망하지 않으면서 일평생을 살아갈까 모두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 누구라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주위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오늘의 있어지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해결하게 하시려고 주셨다는 것을 알고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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