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일들이 생긴 배경에는 많은 억울함과 분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같은 입장이 되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직 슬픔을 털고 일어나기에는 이르지 않느냐는 핀잔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언제까지 마냥 있을 수 없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생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 같아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한다. 세상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입장으로 보는 이 사건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억울하고 분노만 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 슬픔의 내용이 사람들의 것과는 다를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건을 생각하는 방향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글을 써본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 때문인지 그러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지 아는 것이 우선이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다스리셨던 분은 하나님이시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했었다면 그러한 불상사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들이 이룬 모든 것들을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힘든 고생도 가장최고의 권력도 인기도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게 만든 정말로 누구보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숱한 고통들을 하나님도 의지하지 않고 통과했으며 또 최고의 자리도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인간의 힘으로도 그 높은 자리를 올라갈 수 있었던 모델이며 그것도 최고의 수준까지 일궈낸 분들이다.
그것이 다인 냥 그렇게 아귀다툼하며 살아갔는데 결국 그러한 것들의 무상함을 보게 하셨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었음에도 결국 그들 또한 인간의 한계 앞에서는 자신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이 이룬 가장 최고의 높은 자리도 하나님 앞에서는 순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며 보이는 바벨탑은 한줌의 재로 변할 수 있다는 육의 허무함의 실상을 보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인간으로 이룬 것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아울러 강조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을 희생시키시면서 까지 하나님은 사람들이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때가 급하니 정신을 빨리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또 그만큼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들이 철저하게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셨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작은 것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최고의 정점까지 갔다가 다시 점진적으로 하향하는 것을 개인의 삶 가운데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요사이 세상의 거목들을 쓰러뜨리시는 것을 보면 지금이 최고의 큰일들을 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는 신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처럼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 다음은 누구를 희생 시키실지 모르는 일이다. 그분들은 남은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당하신 것이다. 그렇게 잘 살아가는듯하더니 역시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추종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 누구든 희생을 원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여 돌이키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다.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해결이 안 되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 안에 그 답은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면 가능케 된다는 것까지는 맞았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방법에서 차질이 생겨 아직도 완전하게 이것이다 라는 것이 밝혀지지 못한 상태다. 이 지구상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너무 많지만 정작 하나님을 자신의 삶 속에서 호흡하고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자신의 삶 속에서 매순간마다 하나님이 기준이되시고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은 그 무엇도 용인하면 안 되는 삶을 살아가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 같고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믿는 것 같은데 자신들의 삶속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지 못하며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보이는 성경에 적혀진 그대로만 지키려 할 뿐 지금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우선 자신의 일이나 세상의 일이나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기에 하셨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부족한 나를 날마다 고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일들과 맞춰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반응해야하며 생각이나 판단이나 행동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두고 해야 한다.
사전에 아무리 사소한 일 앞에서도 이 일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떻게 생각하실까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여 자신의 행동들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시는지 그것의 훈련의 시작으로 하나님의 길을 바르게 갈 수 있게 된다. 가는 동안 내가 틀린 만큼 고쳐지고 만들어지게 된다. 사실 그 비밀들을 알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그것만 알게 잘 된다면 이 세상을 넉넉하게 잘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것들을 제대로 모르기에 하나님과 자신들을 위하여 하는 일임에도 날마다 틀렸다고 저지하거나 인간적인 동정에 사로잡혀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들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되면 모든 것들을 우선 하나님과 연결시켜 뜻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므로 쉽게 막거나 선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의 주변에 생긴 일들은 결국 내가 고쳐야 할 것들이므로 수용하면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길이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길이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길이다. 그리되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게 되고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우지 않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모든 것들이 해석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인간적인 훌륭함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과 함께 손잡고 치리를 제대로 받은 것만이 참이라 것도 알게 된다. 또 하나님을 믿어도 믿지 않는 사람보다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역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참 사람이 아니면 거기서 거기라는 분별이 생기게 된다. 결국 제아무리 큰 것을 이루고 좋은 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하나님의 원하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사자나 평소에 존경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용인할 수 없다고 비난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자신의 피붙이까지도 과감하게 멀리해야한다는 훈련을 수없이 받아왔으므로 그렇게 하는 것만이 올바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인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처음에 다소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결국 차원이 높아지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속담처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가없다. 하나님을 어느 정도 믿게 되면 그러한 것들은 상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정말로 훌륭하고 아무리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과 참으로 빚어진 사람이 아니면 인간 안에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있다.
하나님의 길은 대충이란 있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면 안 된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에서도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잘못하는 경우도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하나님을 인정했는지 안했는지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안에서 만도 해결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뜻을 제대로 찾아가느냐만해도 너무 바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올바로 되어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우리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하는 것이 과제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그렇게 많은 인파가 죽은 영혼에게 제사를 하는 모습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아직 그러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도 갖추지 않았다면 심각한 문제다.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옥석을 가리는 일들을 더 많이 하실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아직도 보이는 글자속의 하나님을 따라가면 그러한 우를 범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삶 속의 하나님의 신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대오 각성이 필요한때라고 본다. 이대로 진행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 올 세상을 버텨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번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보내시는 결정적인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기준에서 다시 요약해보겠다. 요사이 일어나는 일들은 한 때는 세상에서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는 특권을 누렸으며 또 한때 세상에서 최고의 인기를 장악하고 사랑을 한 몸에 받았거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남들이 누려보지 못한 최고의 것들도 누려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해 버렸다. 그렇게 어렵사리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그렇게 쉽게 모든 것들을 포기하게 만든 것들의 정체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을 비롯하여 너무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수없이 죽고 싶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또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나 불치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거나 생계가 어려운 가난한사람들이나 사업이 안 되어 수십 번 죽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 등 수 십년 고통 앞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을 이기고 살아있는 사람들 보기에는 어찌 보면 호사스런 죽음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지금까지 그들은 수 십 년을 고통과 싸우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들이라고 더 쉬운 길임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러한 죽음을 보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물론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올라간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요 그 자리가 크고 높았던 만큼 견디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죽하였으면 그 좋은 조건을 모두 내팽개치고 가버렸을까 많은 이해를 해보려고 했다.
그렇다고 억울함이나 분노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살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것은 산다는 것이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인간의 눈으로나 생각으로는 그 가치 발견이 쉽지 않으며 답을 얻을 수도 없다.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 할 때 정답을 구할 수가 있게 된다. 아마 그들이 간 길은 정답이 아닌 인간의 생각으로 답을 알아내어 좇아갔기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재료들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세상의 모든 재료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닮는 것에 사용해야한다. 그 재료들이란 인간이 싫어하는 고통이나 슬픔이나 억울함이나 모든 것들이 그 안에 포함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재료들에 대한 인식이 보는 것으로만 보기 때문에 모두 피하거나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사실 오늘에 있어지는 사건들도 바로 그러한 맥락의 일환인 것이다. 고통 앞에서 몸을 감추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너무 크고 억울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감당할 만하기에 생겨진 것들이라고 하신다. 다만 인간의 힘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가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힘을 과시하려다가 끝내는 달성하지 못하고 가버린 셈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능가하겠다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처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짓을 한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것들을 몰랐던 무지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인간의 눈과 하나님의 눈은 다르다. 어쩌면 반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고통은 하나님의 눈으로는 인간을 만들어주는 보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들이 그러한 것들을 알 리가 없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예쁠 리가 없다. 그렇게 기회를 주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외면하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하다가 결국엔 포기해 버린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결국 패배자들이다. 그런 그들을 다만 인간적인 마음에 사로잡혀 동정하고 슬퍼한 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실패를 보고 힘과 용기를 얻어 남은 고통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겠는가?
설사 마음으로 그것은 가혹하다는 마음이 생길지라도 남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니 다른 길을 가야한다고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환경들을 하나님을 만나 고통을 통과하여 고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늘의 사건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통을 통과하면서 고통의 의미를 알기에 살아있음의 소중함과 가치는 물론 오늘도 나를 만들기 위하여 고통을 찾으러 열심히 가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이 바보 같은 것이다. 이미 그들은 희생이 되셨지만 그분들의 희생이 결코 희생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분들의 희생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해야 다시는 그러한희생을 막을 수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왜 그러한 일들이 생겨났는지를 알아내어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생겨나지 말도록 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과제다.
하나님께서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힘을 과신하는 사람들은 결국 처참한 결과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인간의 목적은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사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 간 것이고 분명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는 길을 갈 수있다라고 알게 해야 할 것이다. 이 순간도 고통을 통과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고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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