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인 박용하(33)의 의문의 자살은, 그 사실만으로 국내보다는 일본 열도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는 듯하다. ‘그의 연예 활동을 보는 동안 행복했다’는 어느 일본 여성 팬의 진정어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신성하기까지 한 눈물의 고백이 짐짓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죽음이 짓는 한국사회에 대한 충격파가 작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배우 정다빈, 배우 장자연에 뒤이어 톱 여성 탤런트 최진실의 자살과 그녀의 동생인 가수 최진영의 자살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기 연예인 자살 도미노 현상이 부르는 충격파에 우리 모두 몸서리치고 있다.
특히 현재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그들이 받는 충격의 정도는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일로 그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또한 잃게 될 것이다. 이 때 그들은 정신장애, 곧 큰 혼란과 함께 생의 좌절 또한 겪기 마련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그가 왜 자살이라는 삶의 극단을 선택했을까? 삶의 화려함이 짓는 좌절과 고독의 깊이가 보통사람과는 다른 것일까? 우리사회는 그가 왜 그런 극단의 선택을 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는 유서조차 남기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극단적 선택을 더 깊은 미궁 속에 빠뜨렸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의 부모님께 남긴 ‘미안하다’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사회는 한 동안 이 사건으로 인해 확정할 수 없는 어떤 혼돈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우리사회는 또 다른 예능인의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서는 더 큰 두려움은 나와 같은 무영인, 곧 바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의 모방 형 자살이다. 생의 환희를 즐기는 이들 보다는 죽지 못해 사는 서러운 이들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 지, 우리는 이 점 또한 알지 못한다.
-박용하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연기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연기자 혹은 가수로서의 최전성기를 일본에서 맞았다. 그 역시 욘사마(연기자 배용준)처럼, 비록 속도는 늦었지만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 중의 한 명이다. 그가 그기에 다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으며, 그 과정에 또 얼마나 큰 마음고생을 했을까?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지근거리의 일본이지만 일단 그에게 일본은 모든 것이 낮 설다. 말부터 먹은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충분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모진 시기를 거처 일본에서의 연기자 생활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가 20대 때 겪은, 청년 가장으로서 인고의 세월을 견딘 전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 동안 그의 평화로운 모습만을 보아왔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청년기는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그는 성공가도를 달려 나가던 인기 예능인이었다. 그런 그의 자살은 한국이나 일본의 팬 모두에게 마치 쓰나미와 같은 충격파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으로서 일본, 일본 국민은 ‘그 만큼 행복한 삶을 영위하리라’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 박용하의 죽음에 대한 일본 열도의 반향은 나로 하여금 일본인과 인본 사회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갖게 한다. 왜 일본 열도는 한국인인 가수 겸 배우인 박용하의 죽음에 대해 앞서 지적한 것처럼 뜨겁게 반응하는가? 단지 그가 인기 예능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그 점이 내게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같은 일본 열도의 반향, 곧 일본 내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사회현상은 일본 사회 속 국민생활의 실상을 투영하고 있다. 과연 일본 국민의 생활은 어떨까? 우리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최근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도대체 왜는 나는 나날이 쫒기 듯 생활하는 것일까? 일 년 365일 동안 내게는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이런 식의 삶으로부터 탈출의 길이 내게는 진정 없는가? 이로 인해 내 삶은 아주 불행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의 이 같은 불행한 삶, 이런 불행한 삶의 가장자리로부터 내가 벗어 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비단 나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의문의 자살을 선택한 박용하 역시 그 날 새벽 이 같은 삶의 굴레에서 자신이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한 순간과 맞닥뜨렸고, 그 순간 그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삶의 극단인 죽음을 선택했을 개연성이 크다.
아마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곧 국민소득 2만 달러시대를 맞았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나와 같은 일상 속에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나의 이 같은 생각이 틀렸기를 애써 바란다. 즉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행복한 데 나만 유독 이 같이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용하의 죽음에서 보듯이 우리 국민 대부분이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자신만이 가진 일정한 삶의 굴레에 스스로 갇힌 채, 스스로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
이 자유에의 억압,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모두 다 말할 수 없는 없지만, 즉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소 간 다르긴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 모두 모든 것으로부터 부자연스러운, 억압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 점은 모든 현대인에게 숙명처럼 다가서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국민이 나와 대동소이 한 특정 굴레에 갇힌 억압된 삶, 곧 부자유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판단을 전제하면 앞서 말한 나의 바람은 아주 무용하다.
하지만 역사 이전의 인류, 곧 원시인류에게는 이런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런 삶의 형태를 유지했다. 우리가 자연적인 것조차 하나의 조건으로 간주한다면 인간의 삶에 대한 해석을 달리해야하며, 그 기준 또한 새로운 것으로 마련해서 적용해야 한다. 지금 내가 전개하는 글의 내용은 모두 자연적인 것에 반하는 것, 곧 인간적인 것을 전제한다.
현실에서 내 주변을 잠시 돌아보면 한국 국민 대부분이 나와 같은 식의 삶을 살고 있으며, 단지 그들이 표출하는 몇 마디 말과 행위만으로도 그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비록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보다 더 나쁜 삶을 영위하는 이들 또한 많다. 이 점 또한 오로지 내 생각이며 충분히 나의 어리석은 해석일 수 있다. 다만 표현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아 앞서와 같이 나타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 또한 능사는 아니다. 일본, 한국 할 것 없이 세계인은 그들 대부분이 문명을 공유하며, 자연히 국경과 무관하게 세계인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같은 형태의 삶을 잇고 있다. 실제로 세계의 모든 문명은 역사 이래로 통합의 도상에 있다.
이 점을 매우 빠르게 촉진 시킨 것이 바로 언어 및 통신, 그리고 교통혁명이다. 이러한 혁명에 기대어 세계는 지역, 인종과 무관하게 단 하나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앞서 말한 단 하나의 길은 곧, 모든 세계의 문명화이며, 세계인의 지식인화이다. 이 결과 나타난 것이 우리가 말하는 사회발전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발전과 그 속 개인의 행복과는 현재의 우리들 생각과는 달리 상당한 괴리점이 있는 등 반드시 특정되어 있지 않다.
이는 개개인마다 적용되는 행복의 개념 및 그 기준이 서로 다르고, 더군다나 이것에 대한 그들이 지닌 뇌의 작용 또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발전과 함께 생활상의 모든 편의가 증진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편의가 증진된다고 하여 그것과 맞닥뜨린 개인 또한 반드시 행복하리라는 법은 없다.
다시 말해서 사회발전이 그 속의 개인을 행복의 세계로 반드시 인도하지는 않는 셈이다.
실제로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발전한다고 하여 그 속의 개인 모두가 반드시 여유롭고 행복하리라는 법은 없으며, 현실적으로 오히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자체가 복잡한 고비용 구조로 옮아가면서 그 속의 개인에게 새로운 멍에를 뒤집어 씌워 새로운 자유 또한 억압한다.
이 억압이라는 것에 별다른 뜻은 없으며, 단지 나 같이 쫓기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 곧 앞서 말한 자유에의 억압이다.
이 때 나타나는 것이 개인의 사회적 무력감이며, 그에 편승해 사회적 자살 사건 또한 다반사로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그 속의 구성원 중 상당수가 매우 불행한 사회적 종말 현상과 맞닥뜨린다. 인간에게 어떤 형태가 되었던 자유의 억압이 가해지면, 그는 심리적 압박에 의한 위축을 경험한다. 이 위축이 바로 사회적 자살을 낳는다.
이런 사회현상을 막는 방안이 없을까? 이런 생각이 일 때 내가 대안으로 생각했던 것이, 별반 소용이 없겠지만 바로 기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즉 이런 생각이 들 때 나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든 즉각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 나서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한다.
그러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 나서자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부터 먼저 알아야 하겠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그것의 실체를 규정지을 수가 없다.
결국 나의 행복 찾기는 오래 전 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늘 방황으로 끝나고 만다. 이런 나의 행동은 현대인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사회 속의 많은 개인이 나와 같은 갈등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 나선 내 행동이 늘 방황으로 끝나는 데에는 행복한 삶을 개념 짓지 못한 데 따른 것이긴 하지만 이와 함께 사회자체가 짓는 각종 규율, 비용 등 곧 그 구성원에 대한 사회의 억압 또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사회 속의 개인은 그 누구도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사회를 벗어나 독자적 생존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현대인이다.
미국과 일본 국민들은 행복할까? 나는 아직 미국이나 일본은 다녀온적은 없지만 다녀온 많은 분들과 대화를 통하여,그리고 매스컴이나 인터넷을 통하여 볼때에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음을 알았다.
미국과 일본 이들 국가의 발전상에 비하면 이 두 시기 중 마지막 시지까지도 한국은 그저 개발도상국으로서 그 속의 대부분의 국민이 이제 갓 배고픔으로부터 오는 서러움, 곧 보리 고개가 닥치는 시기를 겨우 면할 지경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 시기 한국은 거리나 환경 주택 등 주변생활환경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조차 정부나 국민 모두에게 아예 없었다.
자연히 이 시기 우리 국민의 주 생활공간인 대부분의 도시가 각종 공해에 찌드는 등 짓눌려 있다시피 했다. 설령 그것이 새로운 비용을 초래하는 등 또 다른 환경문제가 되어 우리들 곁으로 다가설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주변 환경 가꾸기에 전혀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까지 우리는 문화, 곧 도시 가꾸기와 같은 도시 환경 개선작업이 유발하는 경제적 효과 또한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설령 그것을 미리 안 선각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비용 때문에 그것을 실행할 엄두조차 감히 내지 못했다.
우리의 위정자들이 이 점에 전격적으로 눈을 뜬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 부터이다. 국민 역시 이 시기에 비로소 그 점을 본격 눈뜨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진행했던 도시환경 개선 사업은 그 사업 대부분이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하는 즉, 단순히 도시미관을 고쳐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다.
즉 생산성보다는 외국 도시들의 모습을 볼 때 우리의 도시 또한 그리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기초한 것이었다. 자연히 위정자의 의도적인 도시환경 정비 작업은 모든 도시 문제의 중심에 놓였고, 그 속의 개인에게 생명위협까지 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는 경제력의 확장과 함께 더 걷히는 세수 곧 소득을 기반으로 우리의 위정자들 역시 문화사업의 생산성이라든가 기타 그것의 효용가치를 등을 따지게 되었다. 국민의식 또한 상당히 개성되긴 했다.
이런 변화와 함께 비록 그것이 당장 소득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하 일임을 자각하게 된다. 아울러 그것이 새로운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깊이 깨닫는다.
이로 인해 실행된 대표적 사업이 청계천 복원 사업(2003년 7월 시작되어 2005년 9월에 완공)이다. 사실 청계천 복원 사업의 경우 당장 들어가는 사업비의 규모도 문제지만 이후 관리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이 진행된 것은 이후 이 사업이 국민에게 안길 행복감의 크기라든가 기타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수도 서울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기에 더해 이후 새로운 소득원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당시 이명박 시장은 계산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후보시절 공약이었다.
사실 그 동안 청계천은 그 이름과는 달리 건천으로서 그저 서울시의 생활하수를 흘리며 악취와 함께 콘크리트 더미에 뒤 덮여 있었다. 이로 인해 그곳 지명이 청계천인 줄은 알지만 그 밑에 천이 흐르는 것조차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었다.
아무튼 이후 복원된 청계천을 찾는 내국인 및 외국인 관광객의 숫자를 고려할 때, 일부 그 복원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긴 하지만, 이 사업은 매우 성공적 사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평가에 힘입어 당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주도한 이명박 서울 시장은 이후 대한민국의 제 17대 대통령이 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국가들 모두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이런 길을 다들 거쳐 우리보다 더 나은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즉 현재의 한국, 혹은 한국인이 걷는 길은 우리만의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문명화의 길, 곧 선진국의 사례를 뒤따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선험(先驗)을 우리의 현실에 반영하여 정책으로 실현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하여 삶의 환경이 개선된다고 하여 그 사회 속의 국민마저 행복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 이글에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 내용이다. 앞서 말했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는 그 속의 국민에게 더 큰 비용의 지불을 요구하는 등 강한 억압에 나선다.
지금 당장 당신의 가계부를 한번 들여다보라. 상하수도 비용을 포함하여, 전기세, 주택 관리비, 기타 각종 공과금 및 벌과금 등 오늘 서울이라는 도시에 그저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당신에게 이 도시가 얼마나 큰 비용을 부담시키는가? 어디 이뿐인가? 당장 당신이 거리에 나서는 순간 새로운 거리 비용, 곧 각종 공해 방지를 위한 보이지 않는 환경세를 비롯해 교통비용 등이 또한 발생한다.
이러한 도시비용은 당신의 가계를 짓누르고, 당신의 가슴을 옥죄어 당신이 마음껏 누리고 싶은 그 자유를 억압한다. 자유에의 억압 이 점은 분명 사회 발전이 부른 맹점이다.
현재 일본사회는 한국사회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선진화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속의 일본 국민 삶의 모습은 어떤가? 과연 한국 국민보다 월등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그들에게 가해지는 자유에의 억압의 정도는 한국국민에게 가해지는 것보다 더 클 것이다.
이 차이와 함께 양국의 차이를 굳이 더 지적하자면 사회 발전의 정도 곧 각종 상품의 무인 판매대 설치 시점의 차이가 고작이 아닐까 한다.
80년대 중반 일본 거리 이곳저곳에 설치되어 있던 맥주가 담겨 있는 검붉은 색의 페트병 무인 판매기가 그 시기로부터 무려 2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서울 거리에서도 아주 간혹 설치되어 있는 것이 목격된다. 이 차이를 빼면 이제 한국사회와 일본 사회의 차이점은 별반 없을 것이다. 일본의 거리에 있는 그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의 거리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한일 간 사회발전 정도의 차이를 인정한다. 아무튼 국제적 기준에 입각해보면 사회발전 정도에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일본이지만 그 속의 일본 국민 역시 여전히 현재의 우리들처럼 모든 것에 쫒기며 산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우리들과는 달리 그 같은 생활을 피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리 국민은 아직 배가 고프다며 일에 열중하는 등 아직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양국 국민의 이 차이는 생활습관 곧 문화적 수준의 차이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생활형태의 차이로 나타난다.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이 차이점을 우리는 가수 겸 탤런트인 박용하의 죽음을 대하는 일본 국민의 행동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즉 일본 국민 특히 일본 여성의 경우 그들 대부분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이미 찾아 나섰다. 이 도정에 일본 내 한류열풍이 만들어 졌고, 자신의 행복을 담보해줄 새로운 상징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특정 연예인을 자신들의 가슴 속에 마치 아름다운 꽃을 품 듯 품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에 번진 한류열풍, 그것은 행복을 찾아 나선 일본인의 새로운 행동 양태이다. 우리 사회에도 머지않아 이런 사회현상, 곧 행복을 찾아나서는 일단의 국민 무리가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행복을 찾아나서는 이들조차 정작 행복한 삶이 어떤 형태를 띠었는지 그리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우리 모두를 두렵게 한다. 나 역시 현재의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하겠다고 내심 다짐한다. 하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나는 아직 그 윤곽조차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내 삶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하지만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아나서야 한다고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처럼 가슴 속에 사람 꽃을 찾아 한 그루 심게 되면, 나 역시 그들처럼 그 사람으로 인해 행복해질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 정신 상태로는 그 어떤 꽃도 내 가슴에 결코 품지 못한다. 일본인은 하나의 꽃을 가슴에 품을 여유를 지녔지만 한국인은 그럴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한국, 한국인과 일본, 일본인의 차이다.
행복을 찾아 나선 사람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수 겸 탤런트 고 박용하! 그 역시 현재의 삶을 견디다 못해,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그는 홀로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닐까? 그가 정작 행복하게 사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면, 그리고 그것을 빨리 발견했다면, 그에게 오늘과 같은 불행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비록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정작 그 실체를 알지 못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그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만은 계속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런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식화의 과정에 있는, 결국 지혜롭다고 평가받는 문명 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행복한 삶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윌 모두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적극 찾아 나서야 한다. 이 때, 설령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만으로도 우리들의 불행지수는 크게 낮아질 것이다. 이 같이 불행지수가 낮아지는 만큼 행복지수는 크게 오르기 마련이다.
인기 가수 겸 배우 박용하의 자살,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의 내면에 가해진 자유에의 억압 정도가 어떤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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