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근혜 빅뱅 ‘초읽기’

정치 / 이지영 / 2011-01-28 16: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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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박근혜 때리기’ 속사정 전모

박근혜 대세론 확산에 MB정권 ‘조기레임덕’ 궁지 몰려
이재오 “군사정권 잔재남아…” 독설로 대세론 차단 나서


이명박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아직도 잔여임기를 2년이나 남겨두고 있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조기레임덕’까지 조심스레 거론되는 실정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궁지로 몰아가는 배후세력은 바로 미래권력의 핵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지난 2007년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치른 당내경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 대통령에게 패권을 넘겼지만, 박 전 대표는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다. 경선패배이후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그 역시 오월동주 격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대통령으로서는 박 전 대표가 여간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최근 들어 대세론이라는 무기까지 손에 쥐면서 살아 있는 권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조기레임덕’이 거론되는 이유다.

살아있는 권력과 미래권력의 은밀한 힘겨루기에 정치권은 이미 긴장국면이다. 행여 절대 권력자들이 충돌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 친이계의 좌장이자 현 정권의 2인자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사고를 쳤다.

이 장관은 지난 19일 국립암센터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진 강연도중 느닷없이 ‘군사정권’의 문제점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이 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군사정권이 3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돈과 총칼로 지배했다”며 “이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반대자와는 무조건 싸워야 하는 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같은 당 안에서도 경선에서 지고도 흔쾌하게 협조하지 않고 있다. 이게 하나의 풍토처럼 돼 있다"며 박 전 대표에게 노골적인 시비를 걸어 왔다.

이 장관이 박 전 대표에게 대립각을 세운 것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표는 항상 ‘침묵모드’로 일관해 왔다. 결국 박 전 대표의 ‘의도된 침묵’에 이 장관의 혀끝에서 독이 나온 것이다.

고문·투옥으로 점철돼 온 과거

사실 이 장관은 군사정권시절 최대 피해자 중의 한사람이다.

15대 국회 입성 전까지 이 장관의 인생은 ‘시위’, ‘투옥’, ‘고문’으로 점철돼 왔다. 그는 박정희 정권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다 3번 구속된 적이 있고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각각 1번씩 감옥에 갔다. 군사정권에서만 모두 5번이나 투옥되는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2006년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색깔론시비에 휘말려 칩거하던 이 장관은 “10년 동안 함께 한 동료들이 어떻게 나를 빨갱이로 몰 수 있느냐. 민주화 운동하다가 옥살이 한 것도 억울하고 미치겠는데…”라며 군사정권에는 이를 갈 정도다.

그런 이 장관에게 박 전 대표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박정희·박근혜 대 이은 악연

거슬러 올라가면 이 장관과 박 전 대표는 항상 앙숙 그 자체였다. 1990년 김문수, 장기표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주역이었던 이 장관은 신한국당을 거쳐 한나라당에 들어가면서 당시 당대표였던 박 전 대표와 사사건건 부딪쳤다.

2005년에는 이 장관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되면서 잠시나마 화해국면을 맞기도 했지만, 다음해인 2006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가 이 장관의 라이벌인 강재섭 전 대표를 미는 바람에 이 장관은 패배의 쓴 잔을 맞보게 됐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당내 경선에서는 오히려 이 장관이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박 전 대표에게 정치인생의 첫 패배를 안겨줬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악연은 이보다 앞선 과거의 한 사건이 신호탄이 됐다. 1979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이었던 시절 이장관이 경북 안동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안동댐에는 새마을봉사단 총재였던 박 전 대표가 안동댐에 자라와 붕어, 잉어 등을 방생해 준 것을 기념하는 ‘영애 박근혜 방생기념탑’이 사람 키보다 크게 세워져 있었는데, 댐 건설공사 중 사고로 숨진 인부들의 위령탑은 한쪽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를 두고 이 장관은 “이것이 유신독재의 실체”라고 비난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구속됐다.

결국 두 사람은 30여 년 전부터 ‘민주화 투사’와 ‘대통령의 딸’로서 악연을 맺은 이래 당내 계파갈등의 카운터파트너로 선 지금까지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기적절한 ‘박근혜 때리기’?

그러나 이 장관이 박 전 대표를 때리는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악연에서만 비롯되지는 않는다. 이 장관이 박 전 대표에게 날선 칼을 들이대는 시점과 당내 계파간 갈등이 정점에 달한 시점이 우연처럼 맞물리는데 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장관은 지난 해 1월엔 고위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세 번 감옥에 갔고, 군사정권이 끝날 때까지 감옥에 다섯 번 가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고 언급했다.

이 시기 당내에서는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두고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자칫 분열사태로까지 이어질 만큼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또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인 지난해 6월 검찰 아카데미 특강에서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비롯된 정부 불신 풍조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말했는데, 이때에도 ‘세종시 수정안 상임위 부
결→국회 본회의 부의’로 역시 계파간의 갈등이 심각한 상태였다.

결국 이 장관의 ‘군사정권’발언은 당내에서 계파갈등으로 충돌을 빚을 때마다 ‘박근혜=군사정권’이란 공식을 들어 시기적절하게 이용해 온 셈이다.

때문에 이 장관의 최근발언 역시 단순한 ‘박근혜 때리기’가 아니라 또 다른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데 무게감이 실린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이 장관의 이번 발언시점과 맞물려 당내에서는 이미 계파간 신경전이 날카롭다. 이번에는 ‘개헌론’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전’이다.

개헌 등 친이계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朴차기대권 장담할 수 없을 듯
‘박근혜 때리기’ 속내…‘조기레임덕’ 차단 이후 개헌드라이버 본격화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개헌 논의’ 발언을 기폭제로 친이계가 본격 개헌 세몰이에 나섰고, 친박계 역시 “정략적 개헌”이라며 반박의 날을 세우고 있다. 내달 초 개헌 의원총회를 앞둔 양측의 ‘세결집’ 경쟁 양상도 감지된다.

개헌 반대가 상당한 당내 스펙트럼을 감안하면, ‘세종시 수정 실패의 데자뷰(기시감)’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권 주류가 ‘세종시 수정식 해법’을 되밟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개헌의 성패를 떠나 계파 세결집, 차기 대선주자 관리 등 또 다른 정치적 맥락이 거론된다.

과학벨트 선정도 골칫거리다. 과학벨트 문제가 당·청, 당내 갈등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여당 지도부는 급히 ‘함구령’을 내렸다. 하지만 자기 지역 유치를 위한 여당 소속 자치단체장의 반발이 거세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과학벨트는 2012년 총선·대선과 연관된 ‘지역이슈’인 만큼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당내 계파간 쟁점이 되고 있는 ‘개헌론’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전’이 친이계의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박 전 대표로서는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상승곡선을 걷던 대세론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순탄하기 진행되던 차기대권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반해 이 대통령은 그동안 청와대를 압박해오던 ‘조기레임덕’을 조기에 차단하면서, 남은 임기동안 강력한 개헌드라이버를 본격화해나갈 수 있다. 이 장관이 ‘박근혜 때리기’에 직접 나선 이유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박 전 대표의 행보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는데 무게를 두고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만약 박 전 대표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어떤 식으로든 액션을 취한다면, 이 대통령 역시 계파 챙기기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다.

이 같은 조짐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계파갈등을 넘어 자칫 살아있는 권력과 미래권력 간의 빅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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