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나에게 ‘전통주’를 한번 선물해보자

People / 허시명 평론가 / 2011-01-28 17: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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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시고 감탄하고 남에게 권해야 입소문이 난다
▲ 대한민국 1호 술 평론가이자, 술 기행가, 막걸리 감별사 허시명.
“김치가 ‘기무치’로 막걸리가 ‘마코리’가 돼
우리 것을 일본에 뺏기는 것이 아닌가요?”

막걸리를 즐기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회사의 술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사장님이 직원에게 막걸리 한 잔 마시자고 하면 예전에는 직원들이 속으로 ‘째째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우리 사장님이 트렌드를 아신다며 달리 본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예전에는 소주에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면, 지금은 파전에 막걸리를 즐긴다는 것으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정도를 표현한다.

막걸리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막걸리를 우리 자산으로 지켜내야 되지 않느냐는 우려스런 목소리도 들린다. “김치가 ‘기무치’가 되고 막걸리가 ‘마코리’가 되어서 우리 것을 일본에 뺏기는 것이 아닌가요?” “막걸리는 일주일이면 만들어지고 쉽게 흉내를 낼 수가 있는데, 우리 막걸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포천 막걸리 상표 등록을 일본에서 다른 사람이 했다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독도처럼 막걸리도 어느 나라 술이냐는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등 막걸리에 대해 우려하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문제는 ‘막걸리라는 우리 문화 자원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인데, 영토와 문화는 그 지키는 방법이 다르다. 영토는 총칼을 든 육체로 지키는 것이지만, 문화는 자부심을 지닌 마음으로 지킨다. 즉, 독도는 영토이니 그 경계가 분명하지만,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그 경계를 짓기가 쉽지 않다. 문화는 즐기는 자의 것이고, 문화 상품의 하나가 술이다.

일본에 한국식 막걸리 공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는데, 한국에는 이미 800개 가량되는 막걸리 공장이 있다. 한국에는 지역마다 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고루 분포된 식품회사가 막걸리 양조장이다. 우리가 더 즐기고 우리가 더 가까이 하면 결코 종주국이 어디냐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다.

술이 관광자원화되고 지역 특산품이 되려면, 가장 필요한 게 양조장들이 개방되는 것이다. 식품으로서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 넓어야 한다.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관광지가 된 일본 청주 양조장을 많이 볼 수 있다.

오래된 양조장들은 예전 작업장을 식당이나 기념품 판매장으로 개방하고, 그 근처에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 방해받지 않고 술을 빚는다. 관광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만, 청결을 유지하면서 식품으로서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 양조장들도 음식점들이 주방을 개방하는 것처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막걸리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전통술이나 민속주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해볼 문제다. 민속주는 국가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아직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라고 내세울 만한 공감대가 형성된 전통술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주들이 사유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화재는 사회적인 자산으로, 그 사회가 공유해야 하는데 민속주는 소비하는 것말고 공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더러 민속주 제조장에 가서 술을 “어떻게 만듭니까?”하고 물어보면 “왜 물어보세요.”하는 답이 돌아온다. “양조장 좀 볼 수 있을까요?”하면 “지금은 안 됩니다.”하고 말한다. 그러나 막걸리에 이르면 좀 다르다. 막걸리는 누구 한 사람의 자산이 아니다. 비슷한 맛의 양조장이 지역마다 있기 때문이다.

더러 친척이 운영하는 양조장은 그 내부까지 들어다볼 수 있고, 시골 양조장은 술받으러 갔다가 술독을 구경할 수 있다. 특별한 술 민속주보다 평범한 술 막걸리가 사람들에게 더 친숙하다보니, 아주 편하게 막걸리가 우리 술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하나의 술이, 지역의 명주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의 숙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문화재나 명인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곧장 그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술을 사랑하는 소비자들도 우리 전통주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전통주는 명절인 설날과 추석 때에 많이 팔린다. 주로 선물용으로 팔린다. 그런데 선물용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술을 구매하는 사람은 마시지 않고, 마시는 사람은 그 술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마시고 감탄하고 남에게 권해야 입소문이 나는데, 전통주는 벙어리 소비자들만 존재한다. 전통주가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비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명절에는 전통주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전통주를 선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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