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김민호 기자] 지난주 삼성그룹의 이재현 CJ그룹 회장 미행 감시라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CJ그룹은 지난 21일 이 회장을 미행 감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삼성물산 감사팀의 김모 차장을 현장에서 붙잡았다. 다음날인 22일 삼성에 대한 고발과 함께 사과를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이 사건의 시발은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씨가 동생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유산 반환소송과 이건희 회장 이후 삼성그룹 3대 경영권 향배에까지 연결된다는 것이 재계 및 언론의 시각이다. 과연 CJ와 삼성 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CJ그룹은 지난 22일 “삼성그룹에서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삼성그룹의 공식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CJ 측에 따르면 최근 수 일 간 이재현 회장을 미행해 온 차량을 21일 오후 7시 40분쯤 골목으로 유인한 후 뒤따르던 수행원 차량과 접촉사고를 내고 붙잡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근거로 그가 삼성물산 감사팀의 김모 차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물산과 김 차장은 미행이 아니라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삼성 3대 오너에 대한 이병철 언급은 사실인가
“(이)건희가 삼성을 물려받아 경영한 뒤 뒷세대에선 재현이가 물려받으란 게 선대회장(이병철)의 뜻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형 이맹희씨의 이같은 주장은 그동안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가 2월 이맹희씨의 재산권반환소송 제기와 삼성직원의 이재현 회장 미행사건을 벌어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해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식 대에서는 3남 이건희를 지목했고 손자 대에서는 1남 이맹희의 아들 이재현을 점찍었다는 것이다.
이재현 회장은 할머니인 고 박두을 여사, 이건희 회장 등과 함께 이병철 선대회장의 임종을 지킨 몇 안 되는 가족 중 한 명이다. 이 회장은 이병철 회장 장례식 때 영정을 들었고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씨의 어머니인 박두을 여사를 임종 때까지 모시기도 했다. 그리고 이재현 회장은 자신이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장손으로서의 자격을 주장해 왔다. 지금도 서울시 중구에 있는 CJ그룹 사옥에는 삼성그룹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흉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은 2000년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상속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을 겁니다. 선대의 제사를 모시면서 가통을 잇는 상속이 있을 것이고, 집안의 가업을 있는 상속이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의 가통(家統)은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이었고 가업(家業)인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이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삼성가의 가통을 잘 이을 수 있도록 그룹의 일부를 계열분리해줬다는 미담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맹희씨의 이건희 다음 삼성의 경영권을 이재현에게 넘기는 것이 이병철 회장의 뜻이라는 주장은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 간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CJ와 삼성家 긴장 속 갈등관계, 근원은 이병철家 장자권
이맹희씨의 주장처럼 이병철 회장이 삼성그룹을 이건희의 손을 거쳐 이재현에게로 넘기라는 유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가업을 이은 것이 아니라 임시로 맡은 것에 불과한 셈이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제사를 모시는 가통은 자신의 장손 이재현에게로 바로 이어주되 자신이 일군 가업인 삼성그룹은 역량 있는 이건희 회장에게 한 세대동안 맞긴 후 역시 장손 이재현 회장에게로 넘기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본다면 본래 이병철 회장의 가치관 속에는 남성중심 장자승계라는 유교적 사고가 다른 재벌들과 같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자신의 뒤를 맞길 후계자도 당연히 장남 이맹희씨를 마음속으로 우선 지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건희 회장의 두 형인 이맹희와 이창희씨는 이건희에 의해 삼성그룹의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났다가 보다는 자충수를 두면서 스스로 멀어졌다는 시각이 있다.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사건이후 이맹희씨는 삼성그룹의 총수자리를 맡았지만 얼마 안있어 스스로 모든 직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도망가다시피 했고 이창희씨는 이병철의 범죄혐의를 청와대에 밀고했다가 이병철 회장의 분노를 사 미국으로 쫓겨났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가문에서 즉 가통과 가업에서 이맹희씨를 완전히 배재했다.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 영정도 사실 장남인 이맹희씨가 들어야 했고 모든 진행도 그가 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이재현 회장이 모든 것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재현 회장은 자신이 이병철의 삼성가를 잇는 장손이며 적통임을 주장해 왔음에도 이병철과 이맹희와의 관계는 그리 돈독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선친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것은 집안만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재현 회장이 나이에 상관없이 장손으로서 이를 주도할 수 있지만 이병철 집안의 가업인 삼성그룹은 집안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삼성가 전 종업원과 한국 경제와도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병철 회장 자신으로부터 철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검증된 사람을 앉혀야 했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 입장에서 이맹희와 이창희는 스스로 그 기회를 박찼고 나머지 3남 이건희만이 그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손자인 재용, 재현은 너무 어린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맹희씨의 “건희가 삼성을 물려받아 경영한 뒤 뒷세대에선 재현이가 물려받으라는 게 선대회장(이병철)의 뜻”이라는 주장은 삼성그룹을 잘 유지했다가 장손 이재현에게로 도로 물려주라는 의미이기도 한 셈이다.
◆이맹희 소송, 이재현의 회심 일격인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재현 CJ회장 간 숙질 대립은 지난 1994년 이건희 회장이 당시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파견을 보내면서 시작했다. 이학수 부사장은 이재현 회장과 손경식 회장을 제일제당의 이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당연히 이재현 회장은 자신들의 사업 영영을 삼성에서 빼앗으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삼성은 경영을 도와주려고 한 것뿐이라는 해명만 남긴 채 없었던 일이 됐다. 그리고 1995년 삼성그룹이 이재현 회장 이웃 집에 CCTV를 설치했다가 철거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CJ가 대한통운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인수하기 위해 삼성증권과 인수자문사 계약을 맺고 협상을 진행해 왔는데 삼성SDS가 포스코와 손잡고 입찰에 뛰어들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루비콘 강을 건넌 듯 보였다. 당시 CJ는 “삼성이 CJ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같은 양 그룹 간 갈등 관계는 삼성그룹이 선공을 취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물론 두 그룹 사이의 관계가 좋았던 적도 있다. 2010년 이재현 회장은 CJ오쇼핑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보유 중이던 삼성그룹 계열 주식들을 처분하면서 훈풍이 불었던 것. 이 때 이병철 회장의 손자들인 이재현, 이재용, 정용진이 함께 술자리를 갖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과 CJ그룹은 올해 또 다시 첨예한 갈등관계에 놓여져 있다. 이번 갈등은 CJ그룹이 삼성에서 이재현 회장을 불법 미행하고 있다며 고발과 함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삼성 측이 이맹희씨의 소송 배후에 그의 아들 이재현 회장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재계 한 관계자는 "미행 사건을 삼성이 주도한 것이라면 이재현 회장이 소송에 개입됐다고 판단하고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 경우 이건희-이재현 갈등이 이재현-이재용까지 확대될 개연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물론 CJ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인 이맹희씨가 어느 날 갑자기 벌인 일이며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밝혀 이맹희씨의 소송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삼성그룹과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이 사건은 소송을 위한 인지값 만 20억 원이 넘는다. 그리고 이맹희씨가 선임한 변호인단도 국내 굴지의 스타 변호인단으로 구성됐다. 소송비용만 100억 원에 조금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 소송에서 이건희 회장이 승소할 경우 이맹희씨는 이 비용을 고스란히 날려한다.
이맹희씨 입장에서 이같은 위험부담을 떠안기에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배후에 아들 이재현 회장이 있다면 말은 달라진다. 이같은 정황들 때문에 이맹희씨의 배후에 그의 아들 이재현 회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한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이재현 회장이 이번 소송에 관여돼 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런 정황이 삼성 일부 인사들의 미행사건 연루로 표출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맹희씨의 이번 소송에 이재현 회장이 일정부분 이상 관여하고 있으며 그 시작은 이건희 회장이 사실상 먼저 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경향신문>은 23일자에서 “이번 소송(이맹희의 이건희 회장에게 대한 재산 반환 청구소송)은 이건희 회장 측이 CJ의 재무담당 임원에게 ‘상속재산 포기각서’를 받으려고 하면서 촉발된 사건이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 문구를 해석하자면 이건희 회장이 CJ의 재무담당 임원을 통해 이재현 회장에게 먼저 이병철 회장의 상속재산 포기각서를 받으려고 했고 이에 화가 난 이재현 회장이 아버지와 상의해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같은 추론이 맞을 경우 이재현 회장이 이맹희의 소송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이건희 회장을 제외한 이병철 회장의 자손들 즉 인희, 맹희, 창희, 숙희, 순희, 덕희, 명희 본인 혹은 자녀들을 포섭해 재산권 반환 소송에 동참토록 할 수 있다. 이것이 삼성그룹에서 가장 경계하고 있다는 것.
◆이병철-이건희-이재현 구도,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
그런데 삼성그룹은 왜 CJ의 재무담당 임원에게 상속재산 포기각서를 받으려 했을까?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삼성그룹의 경영권이 이병철-이건희-이재현으로 이어지는 것이 선대회장의 뜻이라는 이맹희씨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실 건희-재현이라는 구도는 순전히 경영능력이라는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구도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자녀 3남 5녀(인희, 맹희, 창희, 숙희, 순희, 덕희, 건희, 명희)' 중 결과론적으로 경영능력이 가장 출중하게 입증된 사람은 이건희 회장이다.
이맹희씨는 사카린 밀수사건 이후 삼성그룹 총수권을 임시로 맡았지만 창업공신 등 삼성그룹 내부에서 불협화음과 잡음을 일으켰고 이창희씨는 미국으로 출국한 후 새한미디어를 만들었지만 결국 그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
이인희의 한솔그룹도 재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그룹만이 한국 대표적 재벌그룹으로 안착했지만 삼성그룹에 견줄 정도는 안 된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이병철의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그러나 3대 자손들 중에서는 가장 검증된 사람이 바로 이재현 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 중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삼성그룹의 후계자 위치를 노리고 한 개 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서 역량을 쌓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이재현 회장은 이미 재벌그룹 오너일가의 수장으로서 CJ라는 재벌 대기업 군을 무리 없이 이끌어오고 있다. 그리고 전경련 등 재계에서 이재현 회장은 이건희 회장, 이명희 회장과 같은 반열에서 서열이 매겨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재계서열 1위라면 이재현 회장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어쨌든 한국 재벌가의 당당한 수장으로서 대우받고 있는 것이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손자 손녀들 중 재계에서 이건희 회장과 같은 반열에서 거론되는 사람은 이재현 회장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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