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의 사람들(5) - 나쁜 녀석들

People / 이호준 / 2012-03-13 13: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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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면3대악인.

‘서면3대악인’은 김호삼, 김동만, 김지훈을 멤버로 서면을 거점으로 밑도 끝도 없는 악행으로 유명세를 떨치다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와해[瓦解] 돼버린 조직이다. 이들은 원래 부산역에서 힘 좀 쓴다는 치들 꼬붕 노릇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햇볕 좋은 가을날 담배 한개 피를 돌려 피며 이런저런 너스레를 떨다, 더 이상 꼬붕 노릇은 할 짓이 못 된다는 것에 의기투합[意氣投合], 파라다이스[paradise]를 꿈꾸며 부산역을 등지고 서면으로 갔다.


당시 서면의 롯데백화점지하와 공판장은 망명지와도 같은 곳으로 따돌림이나 괴롭힘 등의 사연들을 품고 지역 지역에서 찾아온 노숙부랑인들이 서로를 견제, 보호하며 군웅할거[群雄割據]하고 있었다. 당연히 부산역에서 넘어와 뭉친 패거리들도 있었는데, 3인방은 그들과 마주친 순간 꿈꿨던 파라다이스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돼버렸고 역전생활과 별다른 차이 없는 꼬붕 노릇의 연장[延長]이 돼버렸다. 대부분이 3인방보다 나이도 많을 뿐더러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알아볼 수 있는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산역으로 컴백홈[Come Back Home]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하루하루가 불평불만[不平不滿]으로 전환되어 갈 즘이었다. 3인방은 공원벤치에 앉아 자판기커피를 홀짝 홀짝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는데, 공원입구를 막 들어선 다섯 명의 덩치 좋은 사내들, 한명은 불룩한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있다. ‘휘적휘적’ 3인방에게 다가가며 악다구니 치는 시비다.


“야! 이 노숙자 새끼들아 여기가 어디라꼬, 퍼질러 앉아 지랄이고?”
“뭐라카노?”
“이 자슥들이, 뭘 꼬나보는데? 빨리 안 꺼지나.”
“이 밥버러지 짜슥들! 도자로 확! 쓸어삐리야 하는 긴데, 세월이 참~ 좋아진 기라.”
“대낮부터 약 처~ 묵나? 가만있는데 와 지랄이고?”
“아이구~ 자슥들아! 사지육신 말짱해가고.....”


예로부터 공원은 동패[同牌]들의 아지트[agitpunkt]로 다섯 덩치 또한 무료한 낮 시간을 때우며 단합도 도모 할 겸해서 소주에 마른오징어 등을 들고 온 것이다. 그런데 옆 벤치에 가방3개를 앉혀놓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시시덕거리기 바쁜 3명의 사내들, 아름드리 가로수 그늘이 제일 좋은 벤치에 딱 봐도 빌어먹을 노숙자들이다. 5명의 동네양아치들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여차하면 나와바리[なわばり]쟁탈전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유야 어째든 ‘티격태격’ 시작한 말다툼이 물불 안 가리는 싸움으로 돌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동네양아치들의 숫자적 우세와 덩치 큰 효과는 시작부터 소주병을 휘둘러 동만의 머리를 박살내는 등 그야말로 우격다짐의 느와르[noir]였다.


하지만 3인방 또한 부산역에서 산전수전[山戰水戰]으로 단련된 몸, 잡히는 대로 던지며 물고 뜯는 무대포식 깡다구를 부린다. 결국 2명의 동네양아치들이 나가떨어지자 당황한 3명이 ‘주춤주춤’ 악다구니 줄행랑을 친다.


“이 자슥들, 꼼짝 말고 기다리라.”
“큰 소리치지마라. 자슥들아. 우리‘서면3대악인’을 뭐로 보고!”
지훈의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리려는 악다구니다. 동만도 머리상처를 누른 손바닥에 힘을 주는 맞장구질을 친다.
“그~래! 맟다. 3대악인, 우리가 바로 3대악인이다. 이 양아치새끼들아!”
그런데 스펀지[sponge]를 쥔 듯 동만의 손바닥을 비집고나온 피, 빛깔조차 뜨겁게 뒷목을 타고 흘러 아이보리색 티를 적시는 붉은 면적을 넓혀간다. 이를 확인한 호삼 또한 ‘번들번들’ 심상찮은 눈빛을 반짝이는 악다구니를 친다.
“그래! 자슥들아! 얼매, 얼~매든지 댐비바라”
그러나 동료들을 남겨놓고 간 양아치들, 전열을 정비하며 다시 쳐들어 올 것은 안 봐도 빤한 것이다. 지훈이 뒷주머니에서 꺼낸 일회용티슈[tissue]를 두껍게 뭉쳐 동만의 머리상처에 대고 누른다. 이를 악문 신음소리를 내뱉는 동만, 지훈은 누르고 있던 뭉치를 바통터치 하듯 넘기며 자신의 흰색 면 티를 벗는다.
“아~! 자슥, 조심 좀 하지.”
“으음~~ ”
“자슥 엄살은, 이거 좀 꽉 누르고 있으라.”
호삼은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얼굴을 찡그리며 번들대는 땀을 훔치더니 캥거루걸음을 뛴 발길질을 내지른다. 일어나려 몸을 꼼지락거리는 덩치를 향해서다. 바닥에 널 부러져 있던 두 덩치 중 가까이 있던 덩치로, 도살된 짐승에게 등급도장을 찍듯 엉덩이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 발길질이다.


“꿇으라 이 양아치새끼들아.”
“욱”
단발의 비명을 내뱉은 덩치, 괴로운 엉덩일 붙잡으며 무릎을 꿇는다. 좀 떨어져 널 부러져 있던 덩치 또한 경계의 눈빛을 반짝이며 엉거주춤 무릎을 꿇는다. 호삼은 자신의 뜻대로 되어가는 상황에 가슴 뭉클한 흥분을 주체할 수 없다. 지훈을 보며 목소리를 높여본다.


“동만인 좀 어떻노?”
“어떻긴 새꺄, 병원에 가야지.”
진정하라는 듯 퉁명스럽게 내뱉은 지훈이 막노동으로 단련된 구릿빛상체를 자랑하며 벗은 면 티를 어금니로 물어 찧는다. 그리고 머리상처에 핏 덩어리처럼 뭉쳐 있는 화장지를 팽개치는 손놀림으로 머리상처를 동여맨다. 이에 동만이 원망과 통증을 가름할 수 있는 악다구닐 친다.


“호삼아. 그 새끼들 확~ 죽이 삐라. 아~씨~ 쪽팔리구로!”
“새끼, 좆도 아닌 새끼들한테 터지기나 하고, 쪽팔린 건 아나?”
그렇게 10분정도가 지났을까. 공원입구를 콱 채우며 등장하는 덩치들, 줄행랑을 쳤던 세 명의 동네 양아치다. 어깨를 ‘흔들흔들’ 눈빛을 ‘번들번들’ 우악스럽다.
호삼 앞에 두 덩치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재빠르게 뒤로 합류한다. 무릎 꿇고 앉아 자신들을 팽개친 채 도망친 3명의 동료들을 원망하며 눈치 보기 바빴던 두 덩치들, 호삼이 넋 놓고 쳐다봐야할 정도로 빠른 동작이다.


5대3.


서로를 째려보는 우악스러움에 얼굴을 훔치고 스쳐지나가는 속모를 바람,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장감이다. 좌우를 휘둘려보던 동만이 때마침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나선다.


“그래! 좋타. 니그가 죽던 우리가 죽던 함 해보자.”


피가 배어나온 하얀 헝겊을 두른 머리에 오만상을 찌푸리는 것이 화끈한 액션을 보여주기 전 전쟁영화 속 ‘실베스터 스텔론[Sylvester Gardenzio Stallone]같다. 그런 동만과 동시에 한 덩치가 내복약이라는 파란 색 글씨가 선명하게 인쇄되어있는 불룩한 하얀 봉투를 내밀며 나서는데 당당한 폼이다.


“우리가 졌다. 고만하자.”


그런데 갑자기 귀청을 찢는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 사내들의 놀랜 시선이 좌우로 나누어진 공원양쪽엔 2대씩 나뉘어 입구를 가로막아선 4대의 순찰차다. 서둘러 내린 8명의경찰관들이 포위하듯 공원으로 진입한다.


화해무드를 타려했던 8인의 사내들에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 눈빛을 주고받으며 지훈과 나란히 선 덩치를 앞세워 진을 친다. 동만에게 화해의 약봉투를 내밀었던 덩치로 엉겁결에 네 덩치들의 패두[牌頭]가 된 것이다.


“아저씨들, 공원에서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와요?”
“죄송하지만 주민등록 좀 보여주십시오.”
“와요?”
“패싸움을 한다는 주민신고가 들어와서 그럽니다.”


경찰관의 파헤치기 식 업무다. 불퉁하게 응대[應對]하던 지훈이 옆에 서있는 덩치를 향해 간절함이 그렁그렁한 일자 눈을 치켜뜨며 불퉁한 목소리를 한층 높여본다.


“싸우기는 누가 싸웠다는 기고? 우리가 싸웠나?”
“그게 뭔 말이고? 줘 바라. 병원가기 전에 소독하고 붕대부터 감자.”


지훈과 눈이 마주치자 정색[正色]을 한 덩치, 무슨 뜻인 줄 알겠다는 듯 동만에게 건넸던 약봉투를 낚아챈다. 그리고 머리상처를 휘 감고 있는 핏물 든 헝겊을 걷어낸다. 피범벅으로 뭉친 머리카락사이로 드러나는 째진 속살, “쩝~ 쩝~”소름 돋는 입맛을 다시며 봉투에서 꺼낸 소독약을 찔끔찔끔 붓는다. 물이 끓듯 보글보글 일어나는 하얀 거품, 동만이 “으~음~” 오만상을 찡그린 신음소리를 씹어 뱉는다.


하지만 태연하게 외면한 덩치, 역할이 끝난 소독약병을 옆에 서있는 동패[同牌]에게 건네며 다시 약 봉투를 뒤져 꺼낸 약솜으로 상처부위에 거품을 눌러 닦아낸다. 조심스런 손놀림이 경험 많은 응급요원 같다.
경찰관들은 그렇게 똘똘 몽친 8명의 사내들을 당장이라도 덮칠 기세다. 지금껏 한 발 물러 섬 없던 지훈도 소독을 끝낸 머리 상처에 붕댈 감는 덩치를 보며 불퉁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해 볼 테면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경찰 아제요. 보소! 누가 싸웠다는 교?”
“그럼, 저기 깨진 병은 뭐고? 피까지 흘려가며 여기서 뭐했습니까?”
“차력, 차력연습 했다 아니요.”
“뭐요?”
“공원에서 차력연습 좀 했다꼬, 대한민국 법에 위배라도 되는 교?”
무슨 자신감인지 되는대로 갖다 붙이는 사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8인의사내들, 신고 받은 내용과는 다른 현실이다. 어깨에 무궁화 한 송이 견장을 단 나이많은경찰관이 유연한 목소리를 꾸미며 끼어든다.
“아! 아! 그렇게 흥분할건 아니고,”
“..............................”


8명의 시선, 부담스럽다. 하지만 잎사귀 하나 때부터 지금껏 각종 사건사고현장을 누비며 힘겹게 단 무궁화 한 송이다. 기다렸다는 듯 동만을 지목하며 말을 잇는다.


“김 순경이 여기 이친구하고 같이 병원 가고, 나머지 분들은 같이 가서....... ”
“가긴 어딜 간단 말 인교?”
“지구대로 가서 조서하나만 꾸밉시다.”
“와예? 우리가 문죄를 짓다고?”
“죄를 졌다는 게 아니라 신고가 들어와서 그라니까. 가서 간단하게 조서하나만 꾸밉시다.”
“.....................”
“ 협조 좀 해주소.”


이날 싸움은 경찰관들의 개입으로 화해고, 뭐고 그렇게 일단락 돼버렸다. 그리고 부산역에서 넘어온 신출내기 꼬붕들은 인근 상인들에게 골칫거리를 처단한 정의의사도로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다. 식당에선 밥을 포장마차에선 소주를 공짜로 내놓을 정도였다.


3인방은 꿈에도 생각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손발이 잘 맞아 거둔 눈먼 승리와 생각지 않은 대접, 어차피 꿈도 희망도 없는 인생을 꿈틀대는 야성[野性]에 던지기로 의기투합했다. 그것은 싸움판에서 급조했던‘서면3대악인’을 앞세워 앵벌이들에게 밥값에 술, 담배 값을 우려내는 것을 시작으로 다방이나 식당, 포장마차 등을 돌며 푼돈을 뜯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면 칼을 꺼내 자해를 하거나 소주병을 하늘 향해 나발 불며 노란 통에 든 라이터용 휘발유를 뿌리고, 지포라이터를 켰다, 껐다, 반복하며 히죽거렸다.


그 서슬 퍼런 악행에 모두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속담을 핑계 삼아 쉬쉬했고, 업주들은 장사를 위해 몇 푼 쥐어주고 말자는 식이었다. 피해자도, 피의자도 돈 몇 푼에 윤리와 도덕, 사회성을 외면해 버린 배금주의(拜金主義)에 초상(肖像)인 것이다. 3인방은 그렇게 챙긴 돈으로 쪽방생활에 일용직을 전전하는 이들을 모아 화투판을 벌려놓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가로챘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김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그래도 대부분이 대항하거나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것은 돈 없고 빽없는 죄로 거리로 내쫓긴 인생들에게 주먹은 법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3인방은 이런 잡스런 악행으로 세를 과시하며 하루일과를 소일했었다.

2. 3인방에 대하여

이들3인방의 과거를 보면 지훈을 제외한다면 특별할 것이 없다. 호삼과 동만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직공으로, 자동차정비공으로 취직을 했었다. 현실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였다. 그런 두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은 장기간의 경제 불황, 죽어라 일만하다 실직자가 돼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직장을 구한다, 장사를 해 보겠다 벌어놓은 돈 다 까먹고, 이래저래 빚까지 지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뱃일에... 막노동에 안 해본일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하다 결국 길거리에 나앉은 전형적인 실직 형 노숙부랑인으로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청년이었다.


그러나 지훈은 이 둘과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2남 1녀를 둔 부유한집안의 둘째로 고교시절까지 학내석차5등 밖으로 밀려나 본적이 없는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360도로 돌변해버린 것은 3학년 2학기를 진급할 때 즘이었다. 하루일과를 TV가 있는 거실에서 이방, 저 방을 배회하더니 아예 며칠씩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하지만 주위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 병원의사조차 스트레스[stress] 때문이라며 지켜보자는 조심스런 소견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고교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모두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 8년 동안을 작지만 탄탄한 건설 회사를 운영하시던 아버질 따라 건설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지훈의 옛 모습에 기대를 걸었었던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에겐 만족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지나간 세월을 마냥 원망할 수도 없어 그나마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 여기며 모든 근심걱정이 가물가물한 과거 속으로 묻히길 바랬다. 그런데 지훈이 주위사람들의 이런 소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가 없었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그야말로 눈을 뜨면 지옥이요 눈을 감으면 악몽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갈팡질팡하는 경찰관들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렇게 모이면 슬퍼하기 바빴던 가족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형은 형대로,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마주치지 않으려는 엇갈린 일과를 소일했다. 그런 가족들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는 숨죽인 열망[熱望]이 꿈틀됐다. 그것은 알뜰살뜰 챙겨주는 가족이란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은 마음에 지훈이 이대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열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제일 늦게 귀가하는 여고3학년생인 막내를 맞이한 가족들이 과일을 깎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연속적으로 울리는 초인종소리, 가족들은 지훈이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과일 먹던 동작을 멈춘 채 마주친 눈빛들 “아! 평화는 끝났구나.” 그러나 현실은 대문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야 하는 이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야말로 두 눈 뜨곤 볼 수없는 거지꼴이었다. 몇날며칠을 씻지 않은 쾌쾌한 냄새에 때 구정물이 줄줄한 옷차림, 인사를 대신한 배고프다는 첫마디에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간 어머니와 여동생이 찌개를 데우고, 계란프라이를 하고 냉장고에서 꺼낸 이런저런 반찬으로 차린 밥상을 ‘허겁지겁’ 해치웠다.


그 후로는 집을 나가도 길어야 3~4일면 어김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옷을 갈아입고, 도둑고양이처럼 먹을 것과 돈이나 돈 될 만한 것들을 챙겨들고 나갔다. 그런데 TV이나 냉장고 같이 덩치 큰 가전제품들까지 싹쓸이 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두고 불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모인 가족들은 정신병원입원을 의론했고,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신병원치료가 고문에 가깝다느니, 죽으면 뒷마당에 묻어버린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들을 얘기할 때는 어느 누구도 적극적인 호응이나 결정을 내리질 못했다.


결국 시간이 길어지자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 위안 삼으며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버린 것이 전부였다.

3. 관계

그런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부산역으로 흘러들어와 꼬붕 노릇을 했던 3인방, 서면으로 넘어와서는 ‘서면3대악인’으로 똘똘 뭉친 의리와 깡다구를 앞세워 인근일대를 주름잡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성인오락장이나 술집 등을 운영하는 토착세력들 조차 담배 값에 술값을 챙겨주며 달랠 정도였고, 그 어느 것도 그들의 관계를 못 깨트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영원불변[永遠不變]이란 없는 법, 철옹성 같던 그들의 관계에도 먹구름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지훈이 3~4일에 한 번씩 집에서 가져다나르는 것들을 두 사람이 나눠먹고 쓰는 재미에 빠져 들 때쯤이었다. 지훈이 두목으로서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훈에 비해 두 사람은 아무리 때를 빼고 광을 내봐도 노숙생활의 추래함을 지울 수가 없었고, 신변에 문제가 될 만한 일이라면 무조건 기피했다. 자칫 지구대라도 끌려가게 되면 하다못해 경범죄스티커라도 끊어야하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비교해 봐도 비교가 안 되는 극과 극, 그러니까 지훈의 두목등극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큰 싸움이 날 것이란 건 자명[自明]한 사실로 인근일대에 소문이 파다했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살기등등[殺氣騰騰]한 무대포정신이 3인방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였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복잡하게 얽힐 것만 같았던 싸움이 싱겁게 정리돼버렸다. 호삼과 동만이 많은 노숙부랑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훈 앞에 무릎을 꿇어버린 것이다. 별 먹을 것 없는 두목이라는 자리보다 시시때때로 집에서 가져다나르는 지훈의 해택에 더 무게 중심을 둔 나름대로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지훈을 묵사발 내주길 응원했던 앵벌이들에겐 그야말로 식은땀 나는 반전, 돈이고 나발이고 일단 지훈의 나와 바리가 돼 버린 서면을 벗어나고 보잔 심정으로 삼삼오오 뭉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더욱더 잔인하고 집요해질 지훈의 행패가 두려웠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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