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의 사람들(7) - 3인방의 두목 등극(2)

People / 이호준 / 2012-03-26 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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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라켔는교? 내.. 수.. 술 머(먹)었다 아니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우악스럽게 낚아 챈 소주병을 “벌컥벌컥” 하늘 향해 나팔을 불더니 “크흐~” 사정없이 팽개친다. “파~ㄱ~” 검은 아스팔트바닥에 물기어린생채기를 만들며 깨져 흩어지는 소주병, 그 섬뜩함을 배경음악삼아 손등으로 입 주위를 훔치며 희 번득 야비[野鄙]함이 이글대는 눈빛을 휘두른다.
황영감은 그런 지훈에게 한심하다는 눈빛을 놀려대며 달래더니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선다.

“자슥아, 자슥아, 니 나온지 얼매나 됐다고 이라노? 저 양반이 온 진 얼매 안됐어도, 식구들 밥 매기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갑드라! 데려 올텐까네. 시끄럽게 말고, 회해해라.”

“웃기는 소리마소! 내는 그렇켄 못하겠심더.”

일어서는 황 영감을 향해 원망 가득한 눈빛을 휘두르며 침 튀기는 악다구니를 친 지훈,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어깃장이 난 것이다. 황영감은 그러거나 말거나 ‘휘적휘적’ 준을 향한 걸음이다.


그렇게 아직 분이 안 풀린 지훈과 준, 4명의 노숙부랑인들이 황 영감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잖다. 그러나 여차하면 주먹을 날릴 듯 일자 눈을 부라리는 지훈, 이에 질세라 노려보는 준, 최악의 상황을 애써 부정하려는 술잔 주고받기 바쁜 노숙부랑인들,....... 이미 두 사람의 우악스러움에 압도돼버린 분위기다.

준의 손목을 끌고 왔던 황 영감 또한 어떻게 할 수 없어 옆자리에 준과 건너편에 지훈을 번갈라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엉덩이를 당겨 앉으며 두 사람의 허벅지를 가볍게 내리친다. 어떡하든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무릎에 부딪친 소주병들이 기우뚱, 술잔을 들이박고 히스테리하게 나동그라진다.

미세하게 퍼지는 알콜 냄새만큼이나 진한색깔로 젖은 면적을 내주는 라면박스, 그러나 둘러앉은 사내들은 눈빛들의 어색함을 애써 감춘 채 쓰러진 술잔을 주고받으며 채우기 바쁘다. 황 영감 또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화해를 종용하는 너스레를 늘어놓는데, 지훈만이 여전히 막무가내기 악다구니를 칠뿐이다. 그래도 황영감은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 지훈의 손까지 잡아끌며 화해를 종용하고, 4명의 사내들은 여전히 술잔 주고받기 바쁘다.

“마! 이제 고마(그만) 지난 일은 이자뿔고, 화해해라. 지훈이 니 빵에 가있는 동안 여기 있는 가수도 우리식구가 됐다.”

“그게 무슨 귀신 콩 까는 소린교? 부산역에 내가 모르는 식구도 있는가베?”

“그렇게 됐다. 마! 더 알고 싶으면 대장한테 물어보고, 자! 자! 화해해라.”


3. 사랑과 우정.


“저기 동근이 행님 오시는데예!”

준의 옆에 앉아있던 노숙부랑인이 턱짓으로 가르친 쪽엔 최신식양복에 중절모를 비딱하게 쓴 중년의 사내다. ‘휘적휘적’ 걸을 때마다 구두가 ‘빤질빤질’ 황 영감이 대장이라 부르는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 성동근이다.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하는 추레한 차림들에게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끄덕’ 바쁘다.

황 영감의 손을 뿌리친 지훈과 준을 포함한 네 사람 또한 일어나 고개숙인인사를 한다. 그런데 짜 맞춘 듯 똑같이 인사말,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눈빛들을 주고받으며 혹여 동근의 비위가 상하지나 않았을까? 서둘러 장단 맞춘 너스레를 떤다.

“행님! 오셨는교.”

“..........................”

“역시 풍채가 있으니께네. 뭘 입어도 멋지십니더.”

“짜슥, 동근이 행님은 옷걸이가 된다아니가.”

“와~! 한 10년 젊어보이네예.”

“그래! 그래! 맞다. 회춘하시는갑다!”

“행님, 지 왔습니다.”

동근은 한마디씩 거드는 모두를 휘둘러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입 꼬리올린 미소가 살갑다. 그러나 자신을 상기시키는 지훈의 인사를 받다 섞이지 않는 불순물처럼 서있는 준을 발견하곤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목소리를 높인다.

“어! 그래 지훈이, 아니 우리 가수 아니가! 무신 일로 대낮부터 술을 다 하노?”

“뭐, 좀, 그렇게 됐습니다.”

준의 머뭇대는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체크무늬상의를 벗은 동근, 옆에 서있는 노숙부랑인에게 건네며 앉는다. 그러자 준과 지훈, 그리고 4명의 노숙부랑인들이 신호라도 받은 양 적절하게 자릴 분배해가며 앉는다.


“험, 우리 황영감은 밥 무은나?”

“됐다. 마, 재미있었나보네!”

“다 늙어가지고 재미는 무슨! 아쿠쿠쿠,”

“와? 삭신이 쑤시는가베! 대장도 참! 아무튼 지극정성이다.”

“.......................................”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이요 자신에겐 대장인 동근을 보고도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앉아있었던 황 영감, 밥때를 챙겨주는 인사에 고마움은커녕 불퉁한 것이 동근의 지난 행적을 다 알고 있다는 것 같다.

동근에겐 1년에 두 번 찾아와 보름정도 지내다가는 애인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말투로 짐작되는 대구사람이라는 것 이상을 알지 못했고, 동근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디에 사는지,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해서는 서로 알려고도, 가르쳐 줄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벌써 10년째, 때가 되면 부산역광장에 나타나 동근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들 들리는 소문으로 알게 된 사실은 보름동안 호텔에 틀어박혀 난리굿을 피워 쫓겨난 적도 있었고, 시시때때로 절정에 다다른 비명에 폭행 범으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신고당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름이지나면 오늘처럼 지갑을 두툼하게 채운 동근이 번지르르한 차림으로 부산역을 활보하고 다녔다. 그러니까 오늘이 베일속의 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사라진지 딱 보름째 되는 날이다.


그런 동근이 눈앞에 임자 잃은 소주잔을 들자 지훈이 공손함을 잃지 않은 재빠른 동작으로 잔을 채운다.

“빵에서 언제 나왔노?”
“나와가 바로 왔십더.”

“......................”

고분고분한 지훈의 대답을 들으며 잔을 비운 동근이 마른오징어다리를 뜯어 문다.

“근데 행님, 예전부터 궁금했는데예?”

“...................”

“행수님이 행님 살려준 적있다면서예?”

“..................”

흥미 진지한 눈빛을 반짝이며 물어대는 지훈과 묵묵부답(??不答)으로 뜯어 문 오징어를 씹어대는 동근, 그런 두 사람을 번갈라보던 황영감이 역사적 사실이라도 증언하듯 말문을 튼다.

“말마라. 니는 그때 없었으니까. 잘 모르제? 그때 대구아들이 부산역 잡아보겠다고 때 거지로 내려와가, 장난 아녔다 아니가. 밤마다 술 처먹고 아들 때려 오륙십 바늘씩 꼬매고, 와~! 지금생각해도 살 떨린다. 그래가 대장이 오대일로 붙었다 아니가.”

“동근이 행님 혼자서예? 와~!”

“황영감도 참! 고마(그만)해라. 술맛 떨어지게 무신(무슨) 케케묵은 옛날 얘기고?”

“와?”

흥미 진지한 눈빛을 유지하는 지훈의 감탄사에 만류하는 동근의 얼굴표정이 쑥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영감은 흐름을 가로막기엔 너무 늦었다는 퉁명스런 대답과 함께 지훈을 마주보며 말을 잇는다.

“그래, 대장이 그중에서 제일 큰 놈을 분수대로 집어 던져버렸제. 아! 근데 이 새끼가 재수 없게시리, 물 쏘는 쇠 덩어리에 머리를 박고 골로가가, 잘못하면 살인자가 되게 생겼는데, 대장애인이 한방에 해결해 뿌린기라. 호리호리한 생겨 쌕만 발킬 줄 알았는데 와! 멋지데.”

“참! 그땐, 살인범으로 인생 종칠 줄 알았다.”

“합의금에, 변호사에 몇 천은 깨졌을끼다. 대장 안 글나?”

“.....................”

“명숙씬 대장한텐 천운인기라.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같이 살자 케봐라.”

“.....................”

(어쩌라 기억해주는 사람, 지켜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부평초 같은 인생. 사랑도, 이별도 해봤고 외로움에, 고독에 술잔도 마셔봤다. 이젠 그럭저럭 살다 바람처럼 가면 그만이지 뭐! 이제 와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끼라고 같이 살끼고!) 지난날을 떠올리며 장단을 맞추더니 이내 묵묵부답으로 생각이 골똘한 동근, 그럴수록 황영감은 침 튀기기 바쁘다.

그런 두 사람을 번갈라보던 지훈, 흥미에 호기심을 더한 눈빛을 반짝이며 끼어든다.

“근대예? 황행님. 동근이행님이 행수님을 어떻게 만났는데예?”

그러나 동근의 그렁그렁한 중간 톤이 묵직한 목소리에 이내 윤기 자르르한 눈빛을 사그라트리며 고개를 떨 군 채 묵묵부답이다.

“그만 됐고, 지훈이 니, 우리가수 노래 부르는데 가서 난리 칫다면서,”

“.................................”

“ 나온지 얼매나 됐다고 벌써 그라노?”

“.....................”

“앞으로 자중하고 행님으로 모시라. 알겠나?”

“예! 행님!”

처음보다는 누그러진 동근의 다그침에 묵묵부답이던 지훈이 한 점 망설임 없는 대답과 함께 준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야비(野卑)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길거리의 법, 두목의 명령 앞에 개인의 유감은 나중 문제인 것이다.

“용서 하이소. 앞으로 행님으로 모시겠십더.”

동근은 그런 지훈을 보며 들이킨 소주잔을 준에게 권한다. 용서와 관용을 바라는 소주잔, 하지만 시킨 대로 하란 것일 뿐 선택할 여지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자 받으라. 글고 함 봐주라.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테니께네.”


“대장. 이래 된 마당에 아~덜 궁금해 하는 거 싸~ㄱ, 풀어줘야 되지 않겠나.”

황 영감의 능청 섞은 권유에 술잔을 채운 동근이 술병을 내려놓으며 지훈을 쳐다본다.

“황영감도 참! 그러니까. 지훈이 니, 내가 명숙씰 어떻게 만난 지 궁금하다 이거지?”

“예?”

망설임 없는 대답이 경쾌한 지훈, 호기심에 흥미를 더한 눈빛을 다시 반짝인다. 하지만 처음 듣는 준과 전설의 재림인양 흥겨운 황 영감을 뺀 나머지 4명에겐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만큼 들은 이야기, 흥미 없단 눈치다.


“그날은 참~ 이상했다. 부슬부슬 비는 내리는데 술은 안취하고 오줌은 마렵고, 그래가 화장실에 갔다아이가. 아~ 근데, 그날따라 화장실이 미어터지는기라. 그래가! 저기 저........”

동근의 손가락질지휘를 따라 호기심어린눈빛을 반짝이는 준과 지훈, 동근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목소리 톤을 과장스럽게 높였다, 낮췄다 속도를 빠르게, 느리게 조절하며 말을 잇는다. 흡족한 마음에 집중력을 높여 현장감을 느끼게 하려는 고도의 화술[話術]인 것이다.

“예식장 담벼락에다 오줌을 갈기는데, 갑자기 계집아 비명소리가 들리는기라. 그래 가 봤제, 지훈아 니 알제? 작년에 1층에서 잠자다 칼 맞아 돼진 새끼.”

“깨구리요.”

“그~래 그래! 그 새끼가, 쫄~딱 젖어 되도 않는 똘똘이를 빨딱 새우고, 계집아를 개잡듯이 때려 잡는기라.”

“와예?”

“안대주니까. 뚜껑 열린기제. 그땐 예식장 뒤편이 밤만 되면 씨~컴 했거든, 그날은 또 비까지 왔다 아니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은 못하겠노!”

“그래 가지고예?”

“옷이 다 찢어 발겨졌는데도 두 손으로 팬티를 꽉~ 붙잡고 얼메나 맞았는지, 얼굴이 이미 피투성이라. 그래 예이! 추접다 싶어 돌아설라는데,”

“.....................”

“ 계집아 눈빛이 너무 애절한 기라. 그래가 그만하고 술이나 한잔 하자 타일렀지.”

“......................”

“근데 아! 이 호로상-놈에 새끼가 칼을 꺼내 막 휘둘려대는데, 와~! 마 그냥 확~ 미치고 환장하겠데.”

여전히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이야기 끊고 잇던 동근의 수단에 장단을 맞추다 결국엔 듣기만 하던 지훈이 결과를 재촉하는 반문을 한다. 흥미와 호기심에 궁금증까지 더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뒤끝을 키운 약간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그래가 어찌됐는데예?

“아~! 자슥, 진짜 처음 듣는가베? 우리는 하도 들어 이젠 달달다~ㄹ~ 외운다.”

동근 옆에 앉아 있는 노숙부랑인이다. 동근의 상의를 받아 가로수가지에 건 다음 앉아 잠자코 술잔이나 비우다 답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너스레를 피우며 끼어든 것이다. 불쑥 끼어든 것 같지만, 그 적절한 타이밍에 동근이 “흣~”하는 코웃음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들이킨다. 그런 동근을 ‘힐끔힐끔’ 훔치며 꺼냈던 말을 잇는다.

“니도 알다시피, 어디 우리 동근이 행님이 누구한테 당할 인물이가. 깨구리 그 새끼가, 그날 천운으로 살아난기제. 그 후론 아무리 흘린 년이라도 안 건드렸다 아니가.”

“와예?”

“그때 행님이 그 새끼 칼을 뺐아, 좆 대가리 짤라삔다고 휘둘려 삣다 아니가.”

“그래예!”

“그래~ 그날 저기 저! 가로수 밑에서 비구경한다고, 내랑 몇 명이서 우산 쓰고 한잔 빠고 있는데, 와~! 진짜 볼만했다아니가. 깨구리 이 새끼가 갑자기 살려달라고 외치며, 저기 저!”

손가락질지휘를 기본으로 이야기를 끊었다 물어 이으며 동근의 무용담을 늘어놓던 노숙부랑인, 이번엔 제법 긴 장황설을 늘어놓는다.

“예식장 쪽에서 반쯤 벗어재낀 바지춤을 붙잡고, 똘똘이를 ‘덜렁덜렁’ 물기를 털어가며 뛰어오는 기라. 뒤에는 우리 똥근이행님이 칼을 들고 불독처럼 쫒아오고, 근데 깨구리 이 새끼가 안 되겠다 싶은까네. 우리가 마시던 소주병을 깨들고 휘둘려 댔 쌓는데, 와~!”

“진~짜예?”

지훈의 단어 앞머리를 뭉툭하게 키운 반문이다. 못 봐서 아쉽고, 미치고, 환장하고,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어 내뱉는 노숙부랑인의 목소리가 한마디로 윤기 자르르하다.

“그래! 니 봤제? 그 짜슥, 좆 대가리 위로 길게 난 자국.”

“뭐 조직에 있을 때, 칼 맞은 거라던데예!”

“조직은 무슨 조직, 그건 신 뺑이들한테 삥 칠 때나 까는 개 구라고, 동근이 행님한테 칼 맞았다 아니가.”

“그래예!”

“창자까지 튀나와 가 우리가 집어 넣어줬다 아니가.”

“.............................”

“그렇게 행님이 행수님을 구해 병원에 데려갔는데, 며칠 있다 붓기가 빠지고 보니까네. 이건 천하일색(天下一色)인기라. 니도 알다시피~ 행님 거시기가 말 거시기만 하잖냐!”

잠자코 듣고 있는 지훈의 눈앞에 크기를 가름해보란 듯 팔뚝을 들이대자 모두가 동근의 눈칠 살피며 참으려던 폭소를 터트린다.

“킥킥키........헤헤헤....하하하....히히히....”

“그냥 바(봐)도 미치고 환장할 판인데, 맛을 봤다면 어찌 마다하겠노?”

“이 자슥들이 어디?”

“동근 행님도 참! 드라마 진행상 어쩔 수 없다 아닙니까.”

“킥킥킥............히히히......하하하...........”

“그럼 깨구리는 어떻게 됐는데예?”

“어떻게 되긴, 다 죽어서 119에 실려 갔다아이가. 그래도 이 더럽은 새끼가 법 무서운 줄은 알아가 말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마냥 주둥이만 오물대다 흐지부지 됐다 아니가.”

“행수님은예?”

“자슥! 어떻게 됐겠노?”

“어떻게 됐는데예?”

“짝짝꿍이 됐다 아니가. 지금도 거대하신 우리 똥근이 행님이 남겨준 첫정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안 카나! 을마나(얼마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고.”

“그게 뭔 얘긴데예?”

“자슥, 상상력이 없어요. 잘 들으라.”

“.....................”

“행님이 돈이 어딧었겠노! 핏 투성이가 된 행수님을 병원 앞에 던져놓고 며칠 있다 가본기제.”

“.........................”

“근데 돈이 을마나 많은지 1인실에 입원해 있더란다. 완전히 도랑치고, 가제잡고 눌루라라~, 씹빠빠, 할렐루야, 아멘, 하늘이 주신 은총인 게제,”

“..........................”

“그래가, 동근이 행님이 확~ 한 꼬지 하까, 마까 고민을 때릿는데, 지그시 눈을 감으며 이불을 걷더란다.”

“와예?”

굽이굽이 물 흐르듯 쏟아내는 너스레에 정신이 팔려있던 지훈의 짧은 반문, 노숙부랑인은 얼굴을 찡그린 대답에 이해를 돕기 위한 과장스런 몸동작까지 동원한다.

“아~ 새끼, 답답하구로, 볶아먹든 삶아먹든 법대로 하라는기제. 그래가 행님이 못 이기는 척 요래, 요래 누웠다 안카나.”

“아~! 예~”

“자슥, 집중안하나.”

“...................”

“그래가. 행수님에 그 섬섬옥수(纖纖玉手)로 행님 거시기를 더듬더니 눈을 부릅뜨며 끼야~ㄱ, 비명을 지르더란다.”

비명 지르는 과장된 시늉에 지훈이 침을 삼키며 노숙부랑인 쪽으로 다가앉는다.

“와예?”

“행님 거시기 크기 알잖냐! 놀란기제! 뭐 전설에 의하면 어떻게든 합궁을 해볼라꼬, 두 분이서 별짓을 다해봤는데 예이~! 쩝, 소원성췬 못하고,”

“와예?”

“아~! 짜슥. 사이즈, 사이즈가 안 맞다 아니가. 하여간 하루 종일 빨고 흔들어대는 통에 껍질이 다 벗겨졌데나 어쩠데나.”

추임새처럼 물어대는 지훈의 반문에 표현의 수위가 좀 높다 생각되는 부분은 목소리를 낮추던가, 변조[變調]시키며 이야기를 늘어놓던 노숙부랑인, 이젠 조용필 흉내를 내는 노래까지 부른다. 이에 둘려 앉자 있는 이들이 눈을 흘겨 뜨는 동근의 눈치를 살피지만 터져 나오는 폭소를 주체하기엔 역부족이다.

“지금도 사랑에 물~로 꽃을 피운 흔적을,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있단다.”

“큭, 훗, 크~........하하하...........킥킥킥..........으하하하.....”

전설의 재림인 양 시작했던 이야기가 이젠 심심풀이 안주거리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능청스런 행동에 눈을 흘기던 동근도 어쩔 수 없다는 코웃음을 치며 황영감과 술잔을 주고받을 뿐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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