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파문’ 한국거래소, 방만한 경영 도마에

e산업 / 이 원 / 2012-09-04 10: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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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직원의 수상한 ‘10分공시’ 뒷거래

지난달 한국거래소(KRX) 역사상 초유의 공시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기업공시를 관리·감독해야하는 업무를 맡은 거래소 직원이 사전에 공시정보를 외부에 유출, 시세 차익을 도모했고 거래소 내부 감시망에 포착, 검찰 고발로 이어져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유출당사자인 A씨는 내부감사가 시작되자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번 사건은 ‘신의 직장’이라 불려온 거래소의 방만한 경영이 도마에 오르며 업계는 국책기관인 거래소의 ‘도덕적 해이’에 비난의 목소리는 물론 증권업계에 불신풍조가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일요주간=이 원 기자] 지난달 18일, 경기도 김포시 누산포구 한강변에서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시장운영팀에 근무하는 A(직책 부부장)씨의 사체가 발견됐다. 검찰 조사결과 그는 최근 거래소 내부에서 수상한 거래가 포착돼 이에 관련 계좌를 조사하는 단계에서 A씨가 이를 눈치 채고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거래소 측은 특정직원에 대한 조사는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진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최근 공시가 나오기 전 특정 E회사 창구에서 매수주문이 들어왔다 공시직후 가격이 상승하면 매도 주문이 바로 이어지는 이상 거래 현상이 발견됐다는 내부 제보로 조사에 나섰고 A씨에 대한 특정 조사는 이뤄진 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조사는 거래소 내 시장감시본부나 감사실은 조사에 참여하기전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상거래에 대해 거래소는 서울 남부 지검에 고발조치 한 상태였던 것.

A씨가 근무한 시장운영팀은 시장 내 종목별 이상 유무를 판단, 거래정지 등의 시장조치가 이뤄지는 곳으로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정보가 등재되기 전 접근이 가능한 부서다. 공시 업무부에서 공시를 담당하지만 해당 팀은 기업의 유상증자나 합병 등의 매매거래 정지 등의 공시 내용을 공시 전 대비하기 위해 열람이 가능했다.

A씨는 공시접수에서 전자공시시스템 등재까지 걸리는 약 10여 분간의 시간이 있다는 점을 노리고 팀 내 규정위반과 광고목적 여부 등에 대한 사전 검토가 이뤄지는 동안 미리 준비해둔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 거래에 나섰다. 그가 목숨을 담보로 시세차익을 얻은 것은 1억 원 안팎.

관계자로 지목된 E증권사 직원 외 1명까지 포함하면 그가 거둔 차익은 큰 금액은 아니다. 특히 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기업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10분이라는 시간 외에 ‘거래소’의 신뢰도가 추락한 점은 증권가 전체의 불신풍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거래소 도덕적 해이 논란
대책 강구 시급해


거래소는 주식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 확립을 모토로 설립된 감시기관이다. 이번 공시 정보 사전 유출로 증권가는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거래소 내 수상한 뒷거래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증권시장에서 기업 간 정보는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가늠하는 생명과도 같다. 그 동안 공시 정보 유출사태가 증권가에서 심심찮게 벌어져온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공시 정보를 주관·감시하는 조직에서 비리가 터졌다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특히 이번 사태 직전까지 거래소는 공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직원이 약 58명이나 됐음에도 불구하고 로그인 기록을 확인하는 등의 사전 감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거래소는 이상거래가 포착된 이후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유출혐의를 받고 있던 A 부부장이 적발되며 사건이 수면에 올랐지만 거래소 직원 누구도 이 같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공시 열람이 가능했던 공시팀과 시장운영팀 전 직원 58명에 대해 공시 이전에 관련 정보를 열람, 유출했던 사실이 있는 지에 대한 검사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사건의 매매차익이 1억 원 안팎이라고 알려졌지만 거래소의 공시 정보 사전 열람하는 직원들의 10분 간 검토시간은 직원이 ‘유출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다시 재발할 수 없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증권업계는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거래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관리감독이 보다 철저하게 이뤄져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공시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관에서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감사가 이뤄진 것은 직원의 양심과 도덕성에 일방적으로 의지한 거래소의 방만한 경영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으로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거래소를 비롯한 외부 기관의 감사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한 상반기 거래대금 급감으로 침체된 코스닥 시장에 시장 불신을 팽배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D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침체기에 이어 평행선을 긋고 있는 코스닥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시장불신’이다”며 “이번 사건으로 불안정한 코스닥 상장 종목에 대한 재검토 및 시장 운영 전반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하는 계기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공시정보, 과연 돈 되나?
업계 “일반투자자, 매매타이밍 선택 어려워 망하기 쉽상”


사례1 지난 2010년 7월 코스닥 상장기업인 A사의 최대 주주와 주식 및 경영권을 취득하는 등의 계약을 체결한 D씨는 정보가 공개되기 전 A사의 주식을 차명계좌를 통행매수, 3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으며 관련 정보를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대가로 1억5,000만원의 추가 이득을 챙겼다.

사례2 또한 2011년 코스닥 상장 기업 G사 대표 H씨는 2010년 회계연도 영업이익과 단기순이익의 적자전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공시가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개되기 직전 자신의 주식을 매도 30억 원이 넘는 손실을 회피한 바 있다.

사례3 지난달 금강제강 최대주주인 일家가 부도 직전 보유 주식을 대량 매각한 것으로 드러나 무책임한 행동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악재 발표를 두고 이미 시세 급락으로 차익을 두둑하게 챙긴 이들이 부도 직전 대량매각했고 다음날 한국거래소가 부도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자 금강제강은 1일 최종부도를 공시했다.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주식 불공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건들 중 미공개정보이용 행위는 올해 들어 19건을 기록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올해 상반기 불공정거래 사건을 조사, 중대한 위법사항이 발견된 검찰에 고발한 사건은 모두 112건으로 지난해 동기대비 55.5% 증가세를 보였다.

공시정보 사전 유출로 호재가 되는 정보를 사전에 알아내 관련 종목의 매도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은 프로세스적으로 어렵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업계는 일반 투자자의 경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의 경우 적절한 매매타이밍에 매도해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지만 개인이 정보 입수로 섣부른 판단에 나섰다간 ‘눈앞의 대박’이 쪽박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유출 사전차단" 거래소,
'즉시공시' 도입 과연?

내부 직원이 기업 공시정보를 사전 유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 한국거래소가 공시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21일 최홍식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은 "거래소 공시 중 현재 시장조치와 관련해 거래소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공시를 제외한 다른 공시들은 절차 없이 기업이 바로 공시시스템에 등록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 본부장은 "이 사건이 있기 전에도 거래소를 경유하게 돼 있는 공시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일부 공시에 대해서는 기업이 직접 공시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바로 내년부터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이거나 우량 공시기업인 경우 일부 자율공시는 거래소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이후부터는 상황을 봐서 전면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는 거래소가 일반 공시 내용을 접수받은 뒤 규정위반 여부나 광고목적의 공시가 아닌지 등을 꼼꼼히 검토한뒤 이를 공개해 왔다.

접수에서 실제 공시까지는 보통 10분 정도의 시간 차이가 발생해 결과적으로 불법행위가 개입될 길을 터주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거래소는 또, 공시 과정에서 내용을 미리 볼 수 있는 직원들의 범위도 공시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로 축소하기로 했다.

거래소는 공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부서를 공시업무부로 제한하기로 했다. 지금은 공시업무부 외에 시장운영팀도 공시 정보를 사전에 얻을 수 있다. 이번에 공시 정보를 유출한 것이 적발돼 자살에 이른 직원도 시장운영팀 소속이었다.

거래소는 공시업무부 내에서도 공시 정보를 직접 다루는 직원을 부장-팀장-특정 상장사 담당 직원으로 차단해 사전 유출 가능성을 줄이기로 했다. 거래소측은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질 경우, 접수되는 전체 공시의 85%정도에 대해서는 접수즉시 공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의 이번 조치는, 접수된 기업 공시정보를 검토과정에서 사전 유출한 혐의를 받던 내부 직원이 지난 18일 숨진 채 발견된데 따른 후속 대책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거래소의 ‘즉시 공시’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해외에 비해 감시망이 부족한 감독시스템에서 기업의 자율적인 공시 및 노출은 오히려 주가조작, 거짓공시 등 부작용이 생길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

특히 이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기업 권한을 무의식적으로 확대할 수 있어 현행 방식을 유지하는 한편 정보 외부 유출 차단을 위한 감시시스템을 강화하는 등의 추가적인 조치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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