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필로 산의 정취를 실어내다”

문화 / 서성록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 2013-06-10 0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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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의 평온함을 담는 작가 소원섭]
▲ @예술통신

화가들마다 선호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기호일 수도, 심오한 철학의 투영일 수도 있다. 베르미어는 평범한 아낙네를, 모네는 풍경을, 얀 반 호연은 모래언덕, 야곱 루이스달은 폐허의 성을, 필립 코닝크는 광활한 하늘 아래 조촐하게 둥지를 튼 마을을 단골로 그렸다.

한 종류의 레퍼토리로 일관한다는 것은 작가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화가 자신으로서는 소재를 깊이 있게 천착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교한 붓질에 의한 도상봉의 정물화나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박고석의 근육질의 풍경화, 질박한 서민의 삶이 묻어나는 박수근의 인물화, 풍부한 색감을 자랑하는 임직순의 여인그림 등은 자신의 주된 레퍼토리로 작가의 예술세계를 뚜렷이 각인시킨 예이다.

소원섭이 즐겨 다루는 레퍼토리는 청명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산자락이다. 그의 작품들은 생명의 기상을 뽐내는 산으로 점철되어 있다. 웅장하나 우쭐대지 않고 아득한 것처럼 생각되나 금세 가까워진다. 산자락이 굽이굽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방금 샤워를 한듯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 개운한 모습이 시선을 잡아끈다.

산을 그리게 된 데에는 그가 성장해온 환경적 배경이 단단한 말뚝처럼 버티고 있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도봉산 인근의 지역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산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고, 지금도 산에 오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변함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그러니까 그에게 산은 예전부터 놀이터요 꿈과 상상을 키워온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에게 산은 여전히 예술적 영감을 제공해주는 각별한 존재로 남아있는 셈이다.

그의 그림에는 수락산과 도봉산, 사패산, 북한산, 설악산까지 여러 산이 등장한다. 형세와 모양은 다르지만 산들은 대체로 고요 속에 파묻혀 있다. 그림을 보는 내내 자신의 숨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 수 없다. 산의 배경으로 자리 잡은 구름 한 점 없는 높다란 하늘도 꽤나 인상적이다.

작가는 고요와 사색의 분위기를 실어내기 위해 가급적이면 강렬함을 피하고 화려하지 않은 색으로 그윽한 깊이를 자아냈다. 마치 도시의 소음과 공해에 시달려온 사람에게 보금자리가 되고 그들을 품어주려는 기세이다.

소원섭은 어떻게 산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포착했을까. 작가는 비록 유채를 사용하였지만 대상을 다루는 수법은 한국화와 유사하다. 특히 윤곽선을 생략한 채 물감의 농담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의 그림은 산수화의 대가 청전(靑田)의 그림에서 발견되듯이 적묵법이 기조를 이룬다.

말하자면 형체를 그리고 색을 칠하는 식이 아니라 붓으로 찍고 누르고 부비고 돌리면서 모필에서 나오는 표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조성한 표면이 산의 오묘한 정취를 재생시킨다는 것인데 제작과정은 우연적이고 즉흥적이나 그 결과는 실물을 방불케 하는 일루젼으로 나타난다.

물론 작가가 초기부터 이런 작업을 해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 그는 꼼꼼한 관찰을 기초로 한 사생에서 출발하였다. 양수리나 포천 등지를 다니면서 농촌이나 전원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는데 이때의 그림은 모든 사물을 또박또박 묘사하는 특색을 지녔다. 그러다가 평붓을 이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수성과 유성의 차이에 착안하여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발휘한 이른바 ‘소원섭 류의 스타일’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면 흐르는 냇가의 물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무거운 짐을 잠시 잊고 산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산 정상을 밟았을 때처럼 속이 후련하고 개운한 느낌을 갖는다.


색조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작가는 울트라마린과 바이올렛, 그리고 버밀리언을 기조색으로 삼고, 그중에서도 특히 청록과 푸른색을 즐겨 사용한다. 즉 근경은 청록과 초록으로, 원경은 옅은 푸른색, 더 멀리는 바이올렛을 사용함으로써 거리감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색이 원근의 차이를 내는 용도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그의 색감이 주는 느낌은 평화스럽고 안온하다. 이런 색깔은 산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허정지심을 바라는 의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또 하나 그의 작품에서 특징적인 요소는 가필 없는 마무리이다. 작가는 붓의 놀림으로 속도감있게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나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갖가지 붓의 흔적이 잔류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짧고 길고, 흐리고 진하고, 성글고 빽빽한 표정이 들어차는 등 붓을 거치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곳곳에 붓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붓의 물결이 퍼지며 조형의 리듬감을 탄생시키고 있다.

터치의 리듬이 결국 화면에 진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용필에 의해 기운이 퍼져가고, 그리하여 생동하는 공간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운이 과도하여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있어선 자연의 접촉을 통한 교감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세상의 때를 씻고 마음을 정화하며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실려 있다. 그러기에 소원섭은 오늘도 산을 생각하고 산을 그리는 것인지 모른다.

시인 신익현이 묘사한 대로 “산은 연인이다/산에 들면 나를 반기고/새들의 오케스트라/반갑게 포옹을 한다.”(“산이 산을 본다”중에서) 누군들 그런 고마운 산을 무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으랴.

작가에게 산은 정다운 벗이요, 연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회화는 사생(寫生)이 아니라 산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사심(寫心)이며, 겉모습을 갈무리한 형사(形似)가 아니라 마음을 갈무리한 심사(心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통신


▲ @예술통신

[PROFILE]

소 원 섭 (So, Won-sub) 蘇元燮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개인전
2011 인사아트쎈터 (서울)
2011 윤당 갤러리 (서울)
2012 구상미술대제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 부스전
2012 부산국제아트페어 (BEXCO, 부산)
2011 명가미술관 아트페어 (중국 칭다오)
2011 바젤아트페어 (스위스 바젤)

◎ 단체전
2013년
- 자연사람미술 (반월아트홀, 포천)
- 갤러리 숨 개관초대전 (갤러리 숨)
- 내마음의 풍경 (갤러리 자작나무, 서울)
- 첸나이 쳄버 비엔날레 (첸나이, 인도)
- 오월의 꽃향기전 (경민미술관, 의정부)

2012년
- 경기경찰청제2청 개청기념전 (의정부)
- 한강살가지전 (구리,춘천, 월정사)
- 수목원가는길 (경희궁미술관, 포천)
- 경기북부작가전 (경민현대미술관, 의정부)
- 사회,예술,역사 전 (경민현대미술관, 의정부)
- 선과색 정기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 어울림전 (포천아트밸리, 포천)
- 뉴욕,코리아 아트페스티발 (뉴욕, 미국)
- 서울미술협회전 (서울시립미술관)
- 밀알회 전 (조형갤러리, 서울)
2011년
- 첫선전 (헤이리 갤러리 소항)
- 함께하는 한마음전 (아산 갤러리, 서울)
- 수목원 가는 길 전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포천)
- 예술의 근본을 되묻다 전 (경민현대미술관, 의정부)
- 선과색 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 내포현대미술제 (충남 홍성)
- 자연사람미술 (반월아트홀, 포천)
- 순수미술대전(다보성 갤러리, 서울)
- 서울미술협회전 (서울시립미술관)
- 한국미술의 새아침전 (공평갤러리, 서울)
- 토끼전 (아산갤러리, 서울)
2010년
* 선과색 정기전 (인사아트 쎈터)
* 길끝에서 전 (물꼬방 갤러리)
* 내포현대미술제(홍성)
* 열린공감전(한가람미술관)
*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전(중국 태산)
* 현대미술 숨전(안산미술관)
* 58인의 작은그림초대전(서산갤러리)
* 명가미술관 초대전 (중국 칭다오)
* 작은작품미술제 (서울미술관)

2009년
* 선과색 정기전 (인사아트 쎈터)
* 갤러리 샘 초대전 (헤이리 청개구리 갤러리 샘)
* 자연과 인간의 교감 전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 따뜻한 이웃, 번영의 동반자 전 (태국 방콕)
* 아름다운 동행전 (공평갤러리)
* DMZ 테마전 (교하아트홀)
2012~2007년 선과색 (인사아트쎈터)
1987~2010년 한국미협전 (예술의 전당)
2002~2003년 파우회전 (하나로 갤러리)
1991년 무한 190-1전 (관훈미술관)
1990년 추계학원 창립50주년 기념전 (디자인포장쎈터)
1989년 아시아 현대미술제 (일본 동경)
1988~1993년 홍익MAE전(서울갤러리)
1984년 앙데팡당 전 (국립현대미술관)
1983~1992년 표상전 (관훈미술관)
1982년 11월전 (덕수미술관)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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