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생멸하는 모든 현상에 연관된 자신의 본질을 자각하고 사유하여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총체적인 인식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인생경영에 있어 마음 고르기가 기초 작업이었다면 자기철학은 그 터 위에 골조를 세우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자기인식에 도달한 정신을 헤겔은 절대정신이라 했다지요. 이 자신에 대한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자신의 절대정신은 바로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만 가능합니다. 경험하고 배운다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틀고 생을 뜨겁게 끌어안고 되새기고 곱씹어야 나오는 영혼의 수액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더 이상 인간중심의 세상이 아닙니다. 정의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허세(虛勢)와 만용(蠻勇)이 진을 치고 있고, 자의식은 물질적 안정을 후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야욕과 마주칠 때마다 진리는 부조리와 모순에 번번이 구타당해 멍들고, 인간을 메치고 되치고 업어치기 하는 과학기술은 점점 더 물질의 노예만 출산하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우주의 의도와 질서를 무시한 것처럼, 물질은 인간을 그보다 더 무참하게 짓밟았습니다. 이것이 21세기의 바벨탑이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삶의 안정을 가져온 과학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퇴치할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지요. 과학기술의 발달과 아울러 마음의 진화도 함께 꾀했다면, 과학기술의 부산물인 물질적 편의(便宜) 이상으로 마음의 참모습도 함께 추구했다면, 지금과 같이 있으나마나 한 심장으로 사는 패륜(悖倫)의 군상은 양산되지 않았을 터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누구를 무엇을 단죄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내 탓인걸. 정신의 퇴행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순리에 역행하기를 밥 먹듯 하며, 자기모순에 갇혀 쉽게 무디어지고 쉬이 병든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하는 걸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자기 자신이 없다면,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자기만의 시선이 없다면 잠시 피었다 시들어버리는 꽃과 무엇이 다를까요.
때문에 무엇을 하며 살든 어떠한 상황이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재와 삶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만의 색과 향기(매력)를 조율하고, 자기만이 가진 독특한 맛(개성)을 조리하여 자발적으로 피워낸 마음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을 밝히고 강화시키는 빛이며 에너지이지요. 게다가 인간다우면서도 아름답게 나이들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철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멈춰 서거나 돌아보지 않는 시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구별된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철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하지도 거창하지도 무엇보다 어렵지도 않습니다. 감히 오를 수 없는 산도 건널 수 없는 강도 아닙니다. 이렇게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으니 병이 날 수밖에요.
철학이란 내가 가는 길이 인간으로서의 바른길인가 돌아보는 일입니다. 내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바로 장착되어 있는지 보듬어 살피는 일입니다. 아울러 내가 가진 생각과 신념과 꿈에 대한 변함없는 추구 그리고 그리되도록 아끼지 않는 마음의 뜻과 정성,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철학자입니다. 이로써 참다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고 물질에 잠식되어버린 세상에서 적어도 영혼을 저당 잡히는 어리석은 파우스트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배부르냐고요? 존 스튜어트 밀은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고 말입니다. 나도 분명히 말합니다, 우린 모두 인간이라고. 이 하나만큼은 당신도 알고 그대도 아는 사실 아니냐고 말입니다.
나는 지금 철학자가 되자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도인(道人)으로 살아보자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지금 마음의 일과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울 수 있고 인간으로서 멋들어지게 잘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넌지시 제안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품었다고 사람의 탈을 썼다고 해서 모두다 인간은 아니니까요.
늘 마음 들여다보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철학적으로 살게 되고, 철학적으로 살다보면 저절로 여유롭고 자유로워집니다. 이는 우주의 원자이자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 이미 주어진 섭리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목매다는 행복은 덤이고요. 행복이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인정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철학을 정립하는 데 필요한 팁 하나. 내가 자주 되새김질 하는 주문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곧 병이다[知不知尙矣, 不知不知病矣(지부지상의하고 부지부지병의니라)]” 노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내가 부족하고 내가 모자라며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인식에서 자기반성과 각성은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사유가 꽃피기 시작하면 인생의 골조공사인 자기철학은 더욱 견고해지게 됩니다. 이 주문에 당신의 마음도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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