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알아주고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알기 때문에 부부인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관계가 나아지는 법이다. 무슨 옷을 입을지 또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를 안다는 것은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이유는 살면서 모르는 부분이 늘기 때문이다. 서로 소통하지 않아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서로에 대해 무지해지는 탓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불행도 싹트는 것이다.
사람은 소통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고 또 만족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리더의 경우, 부부와 달리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여야 하는 것일까? 소통 없는 독단적 리더십이 과연 유효한 것일까?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들이 인류 역사에 많이 등장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좋은 CEO란 카리스마 있는 제왕과 같은 리더라고 생각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크라이슬러를 구해낸 아이아코카와 같은 CEO는 재임 시절 2.9배의 실적을 달성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결국 크라이슬러는 다임러 벤츠에 팔리고 말았다.
아이아코카는 자신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래리 킹 쇼’와 같은 TV 토크 쇼에 자주 출연했다. 그는 토크 쇼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6개월 내에 국가 경제를 지휘할 수 있다는 심오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그의 개인적 주가는 치솟았지만 재임 후기 크라이슬러의 실적은 악화일로였다. 그리고 그는 퇴임 시 전용 제트기와 스톡옵션을 요구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도약적 성장을 이끈 CEO들은 대체로 겸손하고 성실한 인물들이라는 것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의 결론이다. 그들은 그런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모두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고 다른 이들에게 업적을 돌린다는 것이다.
제왕의 면모를 보인 리더들의 후기가 좋지 않았던 것은 그가 없으면 회사가 운영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통을 기반으로 지휘하는 리더들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 합리적인 업무 분장을 하고 업적도 함께 공유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업적은 팀이나 구성원들의 업적 가운데 묻혀버리기도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회사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많은 변화의 물결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1900년대 초기 헨리 포드에 의한 조립라인 혁신이 있었고, 1970년대 이후 일본에서 대량생산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기업의 조직은 계층 구조화했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제조 현장에 근무할 수 있었다. 기술보다 프로세스가 우선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미래학자들의 주장처럼 세상은 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전에는 설계, 제조, 테스트 등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아무도 제품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고객들이 심판을 하는 입장이 되었고 누군가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과거처럼 제조만 잘 되면 되는 환경에서라면 제왕적이고 추진력이 있는 리더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지만 이제는 고객의 구미에 맞는 빠른 대응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고객들은 외면하고 말 것이다.
결국 고객의 기호에 맞는 분산된 접근이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현재의 산업 흐름은 분산구조로 바뀌고 있다. 가장 최소 단위인 개인이 접근하는 점 조직이나 사람들을 잇는 네트워크 조직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제품이 포화된 상황에서 특별하지 않으면 개인은 구매하지 않는다. 이런 변화에 따라 작은 컴퓨터이자 네트워크 기술을 담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은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관료주의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는 부대끼지 않아도 되지만 이젠 모두가 서로의 독특한 성향을 맞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이들이 바로 리더들이다. 과거에는 기술을 몰라도 전체적인 조정이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복잡하고 분화된 조직구조에서 리더들은 기술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하고 전체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을 제대로 이끌고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리더의 합리적 성향이다.
일본에 지진이 발생하고 쓰나미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들이 폭발한 상황에서 수많은 국가에서 일본에 구조대를 보냈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각국의 구조대들이 조기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 구조대들이 일본을 떠난 이유는 뉴질랜드와 호주 구조대원 4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구조대는 인명구조술을 가르쳐 준 일본의 소방청에 대한 보은의 일환으로 생존자 수색 작업을 위해 구슬 같은 땀을 흘렸다.
한국 사람들은 이성적인 면보다 감성이 앞서는 성향을 보인다. 쉬쉬하고 지나간 이야기지만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반도체 라인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제압하기 위해 라인에 뛰어들었다.
어떤 유독가스가 발생하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다른 나라의 경우라면 인명 탈출이 우선이므로 공장은 결국 재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다. 난 대만에서 UICC 반도체 공장이 재로 변한 것을 목격했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들이 일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구조를 위해 일본을 찾았지만 목숨을 던질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감성적 사고 때문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에너지이다.
그런 에너지로 한국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 선진국 최악 부패국가 1위의 불명예를 뒤집어쓴 한국은 시스템적인 면에서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명하복, 연공서열 및 학연 지연이 지배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다. 의사결정 시 리더가 현명하다면 소통 없이도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리더가 현명하지 않다면 조직은 좌초하게 될 것이다.
또 연장자가 항상 현명한 것만은 아니다. 현명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아랫사람들이 이를 묵묵히 따라야 한다면,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겠는가! 능력에 관계없이 아는 사람을 추천하는 문화는 역겹기까지 하다.
난 국내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이를 지적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문화는 연장자를 존중하는 한국의 미풍양속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소통 없는 한국 조직문화의 원흉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때 수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했지만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의 고집에 따라 이 일은 강행되고 말았다. 그래서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 정부로 낙인이 찍혔다. 당시 수많은 촛불집회도 한 사람의 고집 앞에 효력을 발생하지 못했다. 새로운 정부는 그런 전철을 따르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합리한 조직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이 시대가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리더들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합리적 판단을 위해 소통에 힘쓰는 문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로 가는 길이며 부패를 척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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