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의 흑두루미 실례’ 글쓰기 모델..."검토와 피드백 통해 오류 줄여"

People / 최형선 칼럼니스트 / 2014-02-22 21: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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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선의 insight review [일요주간=최형선 칼럼니스트]1991년 한 아이가 순천의 한 논에서 다리를 다친 흑두루미를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순천만 갈대밭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흑두루미를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무리에서 낙오된 이 흑두루미를 순천남국민학교에서 거둬들여 ‘두리’란 이름을 지어 키운 일이 있었다. 사실 나도 이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공작이나 칠면조 같은 새를 키우는 새장을 기억하고 있다. 학교를 방문하면 연못과 새장을 보고 과거를 추억하곤 했으니 잊어버릴 리가 만무하다.

10년이 흐른 후 우연히 학교를 찾은 한 동물병원의 원장 선생님이 흑두루미의 시베리아 귀환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 순천지역 환경보호단체들도 발벗고 나서 이 일을 도왔다. 마침내 1년 후 ‘두리’는 시베리아로 돌아갔는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흑두루미가 2003년에 100여 마리가 찾아오더니 다시 10년 후인 2012년에는 660여 마리나 찾아온 것이다.

순천만 사람들은 철새들의 안전을 위해 인근 전봇대를 모두 제거하고 비행고도를 제한하는 조치를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제 순천만은 흑두루미뿐 아니라 노랑부리저어새, 고니, 백로, 황로, 왜가리, 도요새, 검은머리갈매기 등의 새들이 찾아와 서식하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인 순천만 이야기를 내가 앞에서 소개한 이유는 순천만을 홍보하기 위함이거나 모교인 순천남국민학교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글쓰기 원칙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기 위함이다.

엔지니어들에게 글쓰기 원칙을 가르칠 때 난 5C를 언급한다. 5C는 Compact, Clear, Correct, Complete, Consistent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는 독자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앞에서 순천만을 소개하는 글에서 난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여쓰지 않고 한 문장에 하나의 논지만을 담도록 되도록이면 짧게 표현(Compact)했다. 스티브 잡스가 대중에게 발표할 때 항상 짧은 문장을 선호했던 것은 한 문장에 여러가지 논지가 담겨 있으면 상대를 이해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문학을 제외한 대부분 장르의 글이 간결한 문체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단언컨대 오늘날 독자들은 만연체를 싫어한다.

글의 논지는 확실(Clear)해야 한다. 순천만 소개 글에서 난 모호한 추억의 글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사실 과거 많은 글이 모호한 표현을 선호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생기자 최근 기술문서 장르를 위시한 많은 장르의 분야에서 모호함을 없애고 명확한 글을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모호한 글을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은 정확한 정보(Correct)를 담고 있어야 한다. 순천만 소개 글에서 난 과거의 야사를 소개하는 글을 삭제했다. 왜냐하면 그 야사가 정확하지 않은 소수만의 경험을 대변하기 때문이고 상반된 의견을 가진 이들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 내가 그런 부정확한 글을 함께 게재했다면 불신을 낳는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문학이 아니라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독자를 설득하려면 논지가 정확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자가 의문을 갖지 않도록 완성된 논리(Complete)를 제공해야 한다. 난 순천만 소개글에서 발생 순서대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함으로써 논리적 비약이나 의문을 야기시키는 요소를 제거했다.

논리적으로 완성된 형태임을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글에 논리적 비약이나 비논리적인 요소가 있을 때 독자는 그 글을 신뢰하지 않는다. 난 일의 성격상 국내의 많은 기술 문서를 대하곤 하는데 완성되지 않은 논리를 발견할 때면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앞에서 무슨 말을 전개했건 논리가 완성되지 않았다면 앞의 문장은 독자에게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 차라리 쓰지 않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된다.

문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글은 일관된 형태(Consistent)로 전개해야 한다. 일관되다는 말이 갖는 의미는 문서가 Control(제어)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순천만 소개글은 사실 내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여러 소재를 차용하여 재가공한 것이다.

글을 읽어보면 마치 내가 적은 글처럼 보인다. 이는 독자에게 보다 다가서기 위한 요소로서 감정이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문체도 나의 문체로 변형했다. 만약 차용한 글을 짜집기만 했다면 글의 문체는 일관성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글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고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다. 만약 제품을 소개하는 글이 일관성을 잃었다면 독자는 제품도 믿지 않을 것이다. 제품의 품질 관리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될 테니 말이다.

글의 문법도 일관성 원칙이란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대중이 표준으로 알고 있는 구두법과 띄어쓰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 대중은 그 글을 덜 신뢰하게 될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런 원칙을 배워서 익혀두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의 원칙이 문법을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문서에서 일관되게 문법오류가 발생하고 있다면, 독자는 그것에 익숙해지게 되고 문서에 대해 의구심을 풀게 된다. 왜냐하면 일관된 원칙을 통해 문서가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일관성은 앞의 네 가지 원칙보다 우선하다.

과거 미국회사에서 Lifecycle(생애주기)이란 개념을 배우면서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좋은 결과물은 좋은 기획에서 출발한 것임을 발견하면서 난 기획이 곧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글도 기획을 거칠 때 통제할 수 있고 의도된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획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도출된 문제점을 다시 기획에 반영함으로써 글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글쓰기에서 기획이란 점검할 체크리스트와 단계 프로세스를 의미하고 협업을 할 때 소통의 수단이 된다. 품질이 좋은 글은 결국 세밀한 점검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획 의도가 흐려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한다.

최종적으로 글은 반드시 검토를 거쳐야 하고 피드백을 통해 오류를 줄이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경험상 완벽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중에게 전달되는 문서의 경우, 똥배짱이 아니라면 꼭 누군가의 검토를 거치기 바란다.

그동안 나의 글쓰기 연재에 관심을 기울여준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부터 10회까지만 연재하려고 했기 때문에 여기서 그치려고 한다. 나의 경험이 다른 후배 작가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최형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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