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돌발사태 분석에 대한 토의..."만약 중대사태가 지속되면 TF팀 구성될지도 몰라”

정치 / 이정 작가 / 2015-11-25 16: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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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5)
삿포로

8월 14일 정오 12시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756여객기가 긴 활주로를 힘차게 차고 올라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았다. 비행기가 일정한 고도에 이르자 좌석벨트 등이 꺼지고 승무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자 기내는 다소 부산스러워졌다.
이소나는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 여객기 내부를 둘러보았다. 승객의 대부분이 신혼여행을 떠나는 젊은 커플들이어서인지 마음 한편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항상 결혼에 대한 강박증과 조 박사의 청혼이 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소나는 가정이란 필연이 아닌 선택의 기준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 소나 마음을 달래주는 듬직한 큰오빠 같은 조 박사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은 묘약이지. 오월의 꽃향기처럼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은 열리고 모든 세상의 고통을 잊은 채 오로지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사랑은 묘약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랑은 파도타기야.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소나가 조 박사를 처음 만난 건 한국국방안보대학원 북한학 출강시절 지도교수와 제자로의 만남이었다. 미국이민 3세인 그녀는 미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동아시아문제를 전공한 재원이었다. 그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12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은 숫자놀음이 아니라, 자기 이상의 소통이야! 그건 나이하고는 관계없잖아.”
나이 차이가 많은 그들의 관계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소나가 늘 하는 말이다.
맹렬 여 기자, 끝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진취적 자세를 잃지 않는 소나의 열정, 그녀는 조 박사가 저 하늘의 별도 따다줄 수 있을 것처럼 믿음직스러웠다.

<“박사님 저요, 오늘 오후 2시 비행기에요. 홋카이도 동북아 세미나 아시죠? 출국하기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박사님이랑 이렇게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삶은 육체적 사랑이 다가 아니잖아요. 일을 해야지요. 일을.”
소나는 늘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지 못하고 뱉어 내는 성격이다.
“소나야, 그놈의 일 일. 그만 좀 해라.”
조 박사가 짜증을 냈다.
“선생님 화내지 마세요, 일하면서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죠. 사랑만 하면 짐승이잖아요. 동물요, 동물 알아요?”
“그러면, 이번에 다녀와서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봐요.”
조 박사는 타이르듯 전했다.
“박사님 저는요. 아직까진 결혼 생활을 해 나갈 자신이 없어요. 일을 좀 더 한 다음에 생각할게요.”
소나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방문을 열고나서면서 조 박사를 쳐다보며 다시 한 번 강조하듯 말했다.
“박사님, 결혼은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에요.”>

비행기는 기류를 타고 아래위로 흔들렸다.
눈을 감고 회상을 하던 소나는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았다. 하얀 솜털 같은 양탄자가 손에 잡힐 듯이 깔려 있었다.
소나는 노트북을 꺼내 인터뷰 질문지에 빠뜨린 것이 없나 다시금 꼼꼼히 훑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객기는 에메랄드빛 동해 바다를 횡단해서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그녀는 노트북을 가방에 다시 넣고 나지막한 집들이 구름 사이로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홋카이도의 촌락을 내려다보았다. 고즈넉한 길을 따라 자리한 농가의 풍경은 우리네와 다름없이 정겹고 깔끔하게 다가왔다.

소나는 조 박사의 소개로 삿포로 오쿠라호텔에서 개최되는 ‘동북아안보포럼’ 취재차 닷새간의 여행에 나서게 된 것이다. 조 박사로부터 소개받은 도쿄대학의 ‘동북아정세 연구소장’ 다나카 히로시 교수와의 인터뷰 약속은 동북아시아 전략적 구도 예측에 중요한 기회였다.
비행기는 한 마리 학처럼 날개를 한껏 펼치고 바퀴를 쭉 뻗어 내리고서는 치토세 공항의 서편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치토세 공항은 북미와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작은 공항이지만 분주한 풍경이었다.

국제공항의 청사 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 치토세 공항의 청사는 아담한 느낌마저 들었다.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온 소나는 가벼운 여행 가방을 끌고 공항지하 치토세 전철역으로 내려갔다. 삿포로 역으로 연결되는 JR 에어포트 쾌속열차를 기다리며, 그녀는 스마트 폰을 꺼내 이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 컬러링 음악이 잔잔히 들려 왔다.
조 박사는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미안, 도착했어?”
조 박사가 숨 가쁘게 전화를 받았다.
헐레벌떡 뛰어나온 모양인지 가쁜 숨을 내쉬는 조 박사의 목소리가 불규칙한 톤으로 들렸다.
“예, 그런데 왜 이렇게 전화를 급하게 받아요. 숨쉬기 운동하세요?”
그녀는 오히려 침착하게 말했다.
“하하하.”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쩌렁거리며 울렸다.

“무슨 일이 있어요?”
소나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음. 그래. 장문호 수석비서관 알지? 국가위기관리실장님 말이야.”
“예, 그럼요. 고등학교 선배라고 박사님이 자랑하시던 분이잖아요.”
“그래, 그 선배께서 날 갑자기 불러서 청와대 잠깐 갔다 왔어.”
조 박사는 국제 전화임을 감안하여 정확한 내용 표현을 삼가 했다.
“엊그제 동해 공해상에서 발생한 괴선박 사건하고 군사충돌 관련 내용 알지? 교도통신으로 떴지?”
“선생님, 저도 기자에요. 본론만 간략하게 말씀하세요.”
사실은 소나가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늘상 대답은 알고 있다고 했다.

“북한군의 돌발사태 분석에 대한 토의를 위해 급히 들어왔는데, 만약 중대사태가 지속되면 TF팀이 구성될지도 몰라요.”
“박사님 보기에 특별한 움직임이 있을 것 같아요?”
“에이 거, 민감한 거. 전화로 물으면 안 되는 거. 알면서 그래요.”
“오프더레코드 할 테니까,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간략하게 말씀 좀 해 주시죠. 조기수 교수님?”
“하늘에서 하느님이 들으시면 불편하시잖아요.”
조 박사는 애써 회피했다.
그들의 대화는 더 이상 사적인 연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기자와 전문가의 인터뷰로 흘러갔다.
“현재로선 대외비라 밝힐 수 없는 내용이야 양해해주라.”
조 박사는 구슬리듯 달랬다.
“그러시다면 이만 전화를 끊어야겠군요.”
“그래 나중에 또 통화하자. 토라지지 말고.”
“제 소관이죠. 토라지고 안 토라지고는요.”

그녀는 전화를 끊고 출발을 기다리는 쾌속열차에 탔다. 30분 후 삿포로 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승강장과 대합실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조금은 무거웠다.
그녀가 젊잖게 대기 중인 검정택시에 오르자 백발 중년의 기사는 친절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인사에 대꾸하지 않고 풀죽은 목소리로 목적지만을 간략하게 얘기했다. 검정 중형택시는 차량 소음도 없이 미끌어지듯이 출발했다.
“한국 분이세요?”
조심스레 한국말로 기사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예, 예. 그런데 한국말을 어떻게 하세요.”
소나는 버벅거리며 되물었다.
“허허, 우리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었어요. 내가 어렸을 적 할머니한테서 자랐죠.”
“간간히 조선교포 친구들과 어울리며 컷으니까요. 가끔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많이 그리워져요.”
중년의 기사 아저씨는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 했다.
소나는 내심 반가웠다.
“첫 방문이십니까?”
“네.”

“그럼, 호텔로 가는 길 동안 제가 삿포로의 명소를 간략하게 소개해 드릴까요?”
반백의 중년기사는 삿포로라는 도시명이 홋카이도 토착인 아이누 족 말에서 유래했다고 했다. 역 앞의 JR 타워가 타운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1881년에 완공된 삿포로 시계탑은 13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청아한 종소리를 들려준다고 했다. 붉은 벽돌인 ‘아까랭가’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구 홋카이도 구청사는 미국풍의 바로크 양식으로 1888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소나는 차장으로 지나치며 구경을 하는 동안 어느 새 삿포로의 오도리 공원을 가로질러 목적지인 오쿠라호텔에 도착했다. 소나는 감사한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하면서 택시에서 내렸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옆에 임시로 마련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북한 예상돌발사태분석보고서를 작성하던 조기수 박사는 소나 생각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청혼이 신세계를 살아가는 신여성에게 고리타분하게 비추어진건지 아니면 전처에게처럼 내 의견만 주장하면서 옳다고 고집을 부리고 군림하는 과거 아버지상으로 낙인이 찍힌 건지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요, 헛똑똑이에요. 남들은 똑똑하다 그럴지 모르지만 지금시대에 자신의 부인을 종 다루듯이 위압적인 남편은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어요. 그러니까 박사님은 화석 남편이구요. 군림하는 아버지는 자식들도 싫어해요.”
“대한민국은 4만 달러 시대로 절대 진입 못해요, 선생님.”
“공자의 화석이 이 사회 사방에 널려 있다 보니 그게 큰 장애물이 됐어요.”
“제가 하는 말 싫죠?
귀에 쓰다면 좋은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2천 5백년 전 공자사상을 이제 버릴 때가 되었어요. 이제는 복잡한 전문화시대니까요.
주둥이를 붕어처럼 오무리며 약을 올리던 소나 얼굴이 잡힐 듯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성균관 학당에서 떠들다가는 곤장을 죽을 때까지 맞을 언행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자란 이민 3세와 아직 이 시대의 화석으로 남은 가부장적 남자의 문화적 충돌은 수시로 발생했다. 결국 권위적 아버지로서 가족을 호령하다가 전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조 박사는 관습의 뿌리를 버리지 못하고 급속히 변화하는 세태에 괴로워했다.
한참 동안 맥없이 책상에 앉아 궁상을 떨고 있을 즈음에 문을 열고 장문호 실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생각하시오?”
“어. 아니에요, 생각은 무슨….”
그는 장 수석의 물음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브리핑 자료는 마무리 했어?”
“예, 대략 윤곽을 잡았어요.”
“저들이 어떤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 같아?”
“그러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판인데.”
조기수는 한 곳을 골똘히 주시하다가는 한숨을 쉬듯 말을 이었다.
“쟤네들 곪을 데로 곪아서 자체 내부에서 안 터지면 우리 전방 휴전선 일대, 아니면 생뚱맞은 일본에 화풀이할 수도 있죠.”
“그래? 의외인데. 일본은 갑자기 왜?”

장 수석은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을 살피고는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선배님, 대통령님께 보고가 언제죠?”
“오후 4시로 잡혔어. 그런데 그건 왜?”
“잠깐 머리 좀 식히게요.”
“조 박사, 멀리 가지 말고 이 뒤쪽 북악산 어귀나 잠깐 다녀와.”
“그럴게요.”
“참 맹랑 기자 소나와는 연락됐어?”
장 수석이 문을 열고 나가다가 그에게 물었다.
“통화했어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니요. 그냥 피곤해서요.”
그는 장 수석의 물음을 회피하며 서둘러 함께 나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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