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남효의 고전칼럼] 강태공의 궁팔십 달팔십 (窮八十 達八十)

칼럼 / 배남효 고전연구가 / 2018-04-04 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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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림 배남효]
배남효 고전연구가
배남효 고전연구가

[일요주간 = 배남효 고전연구가] 강태공(姜太公)은 낚시꾼을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유명해진 이름이지만, 실제 인물은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를 일으켜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뛰어난 정치 군사가이다.


위수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곧은 낚시라 하여 곧게 펴진 바늘을 달아, 물고기 낚시와는 무관하게 세월을 낚으며 지냈다는 전설같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강태공의 인생을 대변하는 재미있는 말이 바로 ‘궁팔십 달팔십’인데, 80살을 기점으로 그 전까지는 궁하게 지내다가 그 이후로 팔자가 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즈음 같은 고령 사회를 사는 노인네들에게는, 강태공의 달팔십이 아주 좋은 롤모델로 삼고 싶기도 할 것이고 매우 부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주나라가 BC1041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강태공은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 전의 아주 먼 옛날 사람이고, 남겨진 기록들이 별로 없어 그 일대기를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사마천의 사기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를 보면 제나라를 세운 시조로서 강태공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어, 역사 인물로서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강태공은 원래의 성이 여(呂)씨이고 이름은 상(尙)인데, 강태공이라 불리게 된 것은 어머니쪽 성이 강씨이고 첫아들을 태공이라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라 소속이나 신분을 밝히는 풍습이 있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강태공은 강씨 어머니의 첫째 아들이라는 뜻이다.


강태공을 태공망(太公望) 여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주나라 문왕(文王)이 기다리고 바라던 인물임을 강조하면서 공경하는 뜻으로 붙인 호칭이다.


태공망 여상이 좀더 정확한 호칭이지만 속화된 이름 강태공이 더 익숙하여, 후세 사람들은 강태공이라는 이름으로 낚시꾼처럼 친근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사기 제태공세가에는 강태공이 주나라 문왕을 만나, 왕의 선생이자 군대의 총사령관인 국사(國師)로 파격적인 스카웃이 되는 일화가 흥미롭게 나오고 있다.


문왕이 사냥을 나가면서 점을 쳤는데, ‘잡을 것은 용도 이무기도 아니고, 호랑이도 곰도 아니다. 잡을 것은 패왕의 보필이다’라는 점궤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는 인간의 지식이나 인식이 덜 발달하여 하늘이나 신령에 의존하는 풍습이 강하여,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길흉화복을 미리 알려고 거북점 같은 것을 쳤다고 한다.


문왕이 점궤가 좋으니 기대하면서 사냥을 나갔고, 과연 위수가에서 낚시하던 강태공을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서는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우리 선대(先代)의 태공때부터 이르기를 장차 성인(聖人)이 주나라에 올 것이며, 주나라는 그의 도움으로 일어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선생이 진정 그 분이 아니십니까? 우리 태공께서 선생을 기다린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강태공이 무슨 말로 어떻게 문왕을 사로잡았는지는 모르지만 문왕이 완전히 강태공에 빠져서, 요즈음 말로 하면 자가용인 자신의 수레에 바로 모시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태공망이라 부르게 하면서 국사의 지위로 바로 임용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여, 강태공은 늘그막에 팔자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옛날 일이지만 이 정도면 강태공이 식견과 재능이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가 어떻게 그런 실력을 얻게 되었는지는 기록으로 나오지 않아 잘 알 수가 없다.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육도(六韜)의 내용이나, 문왕과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활약한 무용담을 통해서 그 실력을 유추해볼 따름이다.


사기 제태공세가에는 강태공이 실력을 쌓고 위수가에서 세월을 낚으며 기다리다, 문왕에게 발탁되는 경위를 조금은 다른 두 가지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강태공이 일찍부터 박학다식하여 은나라 왕조를 섬기기도 하고 제후들을 유세하였는데, 여의치 않아 문왕과 만나게 되었다는 일찍부터 정치 활동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하나는 강태공이 처음부터 숨어 살았는데, 그의 실력을 잘 아는 지인들이 그를 불러내어 문왕의 어려움을 구해주는 활동을 하면서 기다리다 발탁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 모두 강태공이 단순히 위수가에서 낚시만 하다 문왕을 만난 것은 아니니, 낚시터의 조우(遭遇)와 스카웃은 좀더 극적으로 꾸며진 일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강태공은 문왕과 무왕을 도와, 폭군 주왕(紂王)의 실정으로 민심이 떠나버린 은(殷)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목야(牧野)의 전투라고 불리는 은나라와 주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대결전에서, 강태공은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서 주나라 승리의 일등공신이 된다.


강태공이 활약한 이야기는 명나라 때 ‘봉신연의(封神演義)’라는 장편소설로 만들어져 나와, 후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고 널리 퍼졌다고 한다.


나는 우연히 어린 조카가 보던 소년 봉신방이라는 5권짜리 어린이용 소설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단히 재미가 좋아 그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었던 적이 있었다.


사기 백이열전을 보면 무왕이 문왕의 상(喪)을 다 치르지도 않고 출정을 하는데, 백이 숙제가 달려와서 상중에 전쟁을 하고 제후가 왕실을 공격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만류를 하였다.


무왕이 화를 내고 이들을 처벌하려 하자, 강태공이 두 사람은 의인(義人)이라고 변호하며 처형을 면하게 하는데, 인심을 잃지 않으려는 강태공의 지략이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강태공이 썼다는 육도는 정치와 병법의 원조 저서로 평가를 받으면서, 그 내용이 아주 탁월하여 강태공의 실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강태공이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이 책에는 정치 병법 모략 등의 내용들이 풍부하게 나와 있어 후대인들에게 정치군사학의 전범(典範)처럼 애용되기도 하였다.


강태공은 단순히 지략과 병법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중심에 두고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민본적인 관점을 육도에서 강조하고 있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의 천하이다. 천하의 이익을 함께 나누는 자는 천하를 얻고, 천하의 이익을 혼자 차지하려는 자는 천하를 잃는다.’


또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강태공은 자신을 숨기며 때를 기다릴줄 아는 지략을 갖춘 인물이기도 한데, 육도에서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내용도 나온다.


‘매가 먹이를 덮치려 할 때는 날개를 거두고 낮게 날며, 맹수가 먹이를 덮치려 할 때는 귀를 내리고 몸을 낮추듯이, 성인이 움직이려 할 때는 반드시 어리석은 척 한다’


강태공은 주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으로 인정받고, 제나라를 봉지(封地)로 받아 다스리면서 시조가 되는데,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강대국으로 위상을 떨치기도 하였다.


춘추시대에는 춘추오패의 첫 번째 제후인 환공이 제나라 출신이고, 또 전국시대에는 진나라와 함께 동서로 양강(兩强)의 구도를 형성하면서 열국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강태공이 늘그막에 이렇게 성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자, 일찌기 그가 궁했을 때 구박을 하다 달아난 부인이 찾아와서 다시 같이 살자고 하였다.


그러자 강태공이 부인에게 물그릇에 물을 떠오게 하고서는, 그 물그릇을 받아서 엎어버리고 물을 그릇에 다시 주워 담아보라고 하였다.


부인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자, 강태공이 부인에게 다시 함께 사는 일이 엎지르진 물을 다시 주워 담는 일과 같아 불가능하다고 꾸짖었다.


강태공의 이 일화에서 엎지르진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覆水不返盆)는 말이 나왔다고 전해오는데, 강태공이 지략이 뛰어난 인물임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다.


그냥 조금씩 알려진 강태공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해 보았지만, 역시 사람의 일생이란 강태공처럼 늘그막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주위에 계신 선배분들을 보면 그런 분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있기도 한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인과(因果)가 자신의 인생에 그대로 들어 있다가 나타나는 것 같다.


사람이 좋아 남 좋은 일만 하다가, 늘그막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볼 때가 가장 딱하고 안스러운데, 혹시 나의 앞날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어 염려되기도 한다.


물질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음가짐이 기본이겠지만, 그래도 항심(恒心)을 가질 정도의 항산(恒産)은 만들어 놓아야 늘그막이 고단하지 않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강태공의 달팔십을 생각하면, 나도 아직 팔자가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기대감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부질없는 세상사에 목매달고 연목구어(緣木求魚) 하는 짓은 이제까지 한 것으로도 충분하니, 남은 날들은 자신의 힘으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살리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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