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도란 과연 무엇인가? 노자가 체험한 도의 실체를 아주 집약적으로 말함으로써 도덕경이 시작된다.
◆ 진리, 道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도는 도라고 해도 좋지만 늘 도라고 할 것만은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이름은 그 이름으로 불러도 좋지만 꼭 그 이름으로 부를 것만은 아니다.
도는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로고스라 해도 좋고 법이라 해도 좋으며 진리라 해도 좋다. 궁극의 원리라 해도 좋고 무한한 실상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은 바로 그것이다. 다만 그 대상을 부를 때는 각각의 역할이나 관계가 있지만 그것이 나의 본질은 아니다. 나는 나인 것이다. 도를 도라고 부르지만 그 무엇이라 부르면 어떠랴!
온 세상이 도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노자가 나서서 도를 설파하지만 누가 그 도를 제대로 알겠는가. 여기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도가도 비상도의 가장 첫 글자의 도는 ‘그대들이 믿는 도’라고 해석하 면 좋을 듯 하다. 그대들이 믿는 그 진리라는 것이 진리일지는 모르겠지 만 그것이 상도(常道), 즉 진정한 도는 아니라고 노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도 그저 지식의 쪼가리이고 ‘나’ 라는 개체가 어느 때, 어떤 환경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무엇으로부 터 얻은 것일 뿐이다. 그것이 설사 종교의 가르침이라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 라 얼마나 많이 왜곡되는지를 수많은 사이비 종교와 헛된 지식의 범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노자는 그런 왜곡된 진리가 아닌 진정한 진리를 말하고 싶지만 전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이 짧은 문장 속에 숨겨진 진정한 의도를 알아 차리기를 바랄 뿐이다.

無名天地之始 (무명천지지시)
(도는) 이름도 없던 천지의 비롯됨이고
有名萬物之母 (유명만물지모)
이름이 있는 만물의 어미라.
이육사의 시 ‘광야’ 앞부분을 보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여기를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이 땅이 생기기 전,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도道는 있었고 천지의 시작은 바로 도(道)로부터 비롯됐다. 무명천지(無名天地)는 이름 없는 하늘을 말하는 것이며 유명만물(有名萬物)은 이름 있는 모든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도 또한 도(道)라는 어미(母), 즉 근원으로부터 생겨났다.
천지의 시작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비현현(非現顯)이라고 부른다. 이 비현현의 때에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있지만 없는 것, 있어도 있다 할 수 없는 상태의 그 무극(無極)의 때는 도라는 원리조차 적용되지 않는 공(空)의 상태인 것이다.
그 공에서 어떤 의지가 있어서 세상이 생겨났고 만물의 근원이 됐다. 그 근원에서 법칙이 생기고 기운도 유행하고 모든 것이 생동하면서 생명이 태어나고 온 우주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그 근원을 다른 장에서는 사모(食母), 즉 먹이는 어머니라고 불렀다. 만물을 먹이고 기르고 자라게 하는 만물의 어머니, 이 도가 우리를 먹이는 근원인 것이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고상무욕이관기묘)
그래서 늘 하고자 함이 없으면 그 묘를 볼 것이며
常有欲以觀其? (상유욕이관기요)
하고자 함이 있으면 그 요를 보겠지만
此兩者同 出而異名 (차양자동출이이명)
묘나 요는 같은 것이니 나와서 이름만 다르다
同謂之玄 玄之又玄 (동위지현현지우현)
둘다 심오하니 심오하고 또 심오하여서
衆妙之門 (중묘지문)
도는 모든 심오함이 나오는 문이라.
여기서 묘(妙)와 요(?)의 뜻을 생각해보자. 묘는 미묘하고 오묘함을 뜻 하는 단어임이 명확하다. 묘는 어떤 뜻일까?
무욕과 유욕으로 댓구를 이 루었으니 반대되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뒤의 문장에서는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이고 이름만 다르다고 말한다.
따라서 요는 묘와 반대되면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다. 묘가 미묘하 다는 의미라면 요는 심원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묘하고도 심원(深遠)한 것이 도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玄)이라는 글자는 흔히들 검다는 의미도 있지만 심오(深奧)하다는 의 미도 있다. 여기서는 심오하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도는 무엇이라 이름하든 온갖 심오함의 문이기에 무릇 도를 보고자 하는 자는 그 심오함을 보아야 하지만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노자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을 묘니 요니 하면서 설명하지만 그 실상 을 보여줄 수 없으니 그 이름 밖에 말할 것이 없다.
아무도 그 도를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깨달은 현인들이 있어서 그 세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요약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無名天地之始 (무명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 (유명만물지모)
故常無欲以觀其妙 (고상무욕이관기묘)
常有欲以觀其? (상유욕이관기요)
此兩者同 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 玄之又玄 (동위지현 현지우현)
衆妙之門 (중묘지문)
도는 도라고 해도 좋지만 늘 도라고 할 것만은 아니다.
이름은 그 이름으로 불러도 좋지만 꼭 그 이름으로 부를 것만은 아니다.
(도는) 이름도 없던 천지의 비롯됨이고 이름이 있는 만물의 어미(母)라.
그래서 늘 하고자 함이 없으면 그 묘(妙)를 볼 것이며
하고자 함이 있으면 그 요(?)를 보겠지만
묘나 요는 같은 것이니 나와서 이름만 다르다
둘다 심오하니 심오하고 또 심오하여서
도는 모든 심오함이 나오는 문이라.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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