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김선국 박사] 노자는 지도자들에게 권고한다. 지도자들이 교훈을 통해 도에 가까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 사사로움이 없으니, 少私
絶聖棄智 民利百倍 (절성기지 민리백배)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나 되고
絶仁棄義 民復孝慈 (절인기의 민복효자)
인을 끊고 의를 버리면 백성의 효성과 자애가 회복될 것이며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교기리 도적무유)
교를 끊고 이익을 버리면 도적이 있지 않으니
此三者以 爲文不足 (차삼자이 위문불족)
이 세가지는 법도로 하기에는 부족하다.
여기서 3가지는 성지(聖智)와 인의(仁義)와 교리(巧利)이다.
성인의 가르침과 지혜, 인의와 교리는 세상을 지탱하는 것들이지만 노자는 이런 것들 마저도 법도로 세우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 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것을 노자는 요구한다.
故令有所屬 (고령유소속)
그러므로 뭔가를 덧붙이니
見素抱樸少私寡欲 (견소포박소사과욕)
마음을 깨끗이하고 순박하게 살며 이기심을 버리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올바르게 살라고 인과 의를 가르친다. 종교에는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이 많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노자는 이야기한다. 가르침은 가르침일 뿐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가르치는 자들이 각색 하고 덧붙여 놨으니 본래의 의미에서 한참이나 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종교가 쇠퇴하고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명상이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달하고 살기가 편해지면 이를 이용해서 세상은 도둑이 먼저 날뛴다.
최첨단의 IT기술을 이용한 사기꾼들이 설쳐대고 인터넷과 결합한 다단계가 활개를 친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거추장스럽게 하고 인터넷의 노예가 되도록 만든다.
노자는 이런 것에서 벗어나 소박함으로 돌아오고 사욕을 버리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 힘든 것은 어려운 환경이 아니라 집착 때문이다. 욕심이 없으면 괴로울 일도 없다. 잘 살려는 야망이 없어서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산다면 삶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번뇌는 욕심에서 온다.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사는 삶, 노자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도에 이르려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삶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끝없이 욕망을 자극하는 매스컴과 매스미디어를 대하면서 우리는 욕심을 키운다. 욕심에 사로잡혀 스스로 만든 감옥에 빠진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노자는 경계한다.

◆ 대지의 어머니, 食母
絶學無憂 (절학무우)
학문을 끊을 수만 있다면 걱정이 없을 텐데
唯之與阿 相去幾何 (유지여아 상거기하)
‘예’와 ‘응’의 구별이나 하고 선(善)과 악(惡)의 거리나 재고 있도다.
善之與惡 相去若何 (선지여오 상거약하)
예(禮)와 비례(非禮), 선(善)과 악(惡)의 구별은
人之所畏 不可不畏 (인지소외 불가불외)
사람이 두려워하는 바이니 나 역시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荒兮其未央哉 (황혜기미앙재)
세상을 바라보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구나
衆人熙熙 如享太牢 (중인희희 여향태뢰)
사람들은 희희덕거리며 맛있는 요리를 먹고
如春登臺 我獨泊兮 (여춘등대 아독박혜)
즐거이 망루에 오르는데 나 홀로 떠도는구나
其未兆 如?兒之未孩 (기미조 여영아지미혜)
나는 홀로 버려져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갓난아이와 같도다.
??兮 若無所歸 (루루혜 약무소귀)
고달프고 지쳤건만 돌아갈 곳도 없어라.
衆人皆有餘 我獨若遺 (중인개유여 아독약유)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건마는 나는 모든 것을 잃었도다.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그 마음이 어둡고 어둡도다.
俗人昭昭 我獨昏昏 (속인소소 아독혼혼)
세상 사람들 모두 밝고 명랑한데 나만 홀로 어둡고 아둔하구나.
俗人察察 我獨悶悶 (속인찰찰 아독민민)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 홀로 어두워서
澹兮其若海 兮若無止 (담혜기약해 혜약무지)
바다처럼 일렁이고 바람처럼 흔들리네.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중인개유이 아아독완사비)
사람들은 모두 살아가는 까닭을 지니고 있지만 나는 홀로 무디고 비루하네. 왜 그럴까?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아독이어인 이귀사모)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홀로 천지의 어머니(食母)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식(食)은 먹이고 기른다는 의미이며 사라고 읽는다. 사모(食母)는 우리를 기르고 먹이는 어머니, 즉 대지의 어머니를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서 이 글을 풀어보자.
세상 사람들은 즐겁고 신나게 사는데 노자 자신은 홀로 외톨이이고 재미없게 산다고 스스로를 한탄하고 있다. 세상에는 맛난것 먹으며 재미있고 유익한 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자는 홀로 고달프고 지쳐 있다. 모두들 자신의 뜻을 펼치고 업적을 이루며 주변에서 인정받고 성공을 추구하는데 나 홀로 쓸데 없는 학문으로 오히려 어둡고 어두워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처럼 고뇌하고 있다.
세상은 삶의 의미를 아는 듯하지만 나 홀로 이 세상에서 삶의 의미조차 모르고 있다. 오직 나를 먹이시는 우주의 어머니로 인하여 존재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 글은 노자가 스스로를 한탄하는 글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노자 홀로 깨어있고 도에 가까우며 노자 홀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길은 재미있고 신나지만 도의 길은 그 반대로 어찌할 바 모르는 어둠이다.
그 무지(無知)의 현빈(玄牝)을 찾는 노자는 시대의 유일한 등불이다.
춘추전국시대, 죽음과 배반과 궁핍의 시대, 희망 없음과 황폐한 그 시대에 노자는 진정한 빛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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