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김쌍주 대기자] 청춘들아!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작고 초라하게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기 자신의 현 모습만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이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값지다.
자신의 값어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이것에 대해 깨달음을 주는 얘기가 있다. 어떤 호기심 많은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을 했다. 스승님 제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됩니까? 스승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제자가 거듭 질문하자, 스승은 돌 하나를 내 밀며 말했다.
“이 돌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흥정을 해봐라. 그러나 절대로 팔지는 말라. 값을 쳐 주겠다는 사람만 나타나면 된다.”
제자는 자그마한 돌을 가지고 시장에 갔다. 이 쓸모없는 돌을 돈 주고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한사람은 천원을, 또 다른 사람은 5천원을 주겠다고 했다. 제자는 몹시 기뻐하며 스승에게 돌아가서 이 쓸모없는 돌을 5천원이나 주겠다고 하는데 팔아야겠다고 했다. 그러자 스승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귀금속 시장에 나가서 흥정해 봐라, 하지만 이번에도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된다.”
제자는 다음날 귀금속 시장에 갔다. 어떤 사람이 돌 값을 5만원을 제시했다. 두 번째 사람은 2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경쟁이 붙어서 100만원 까지 주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흥분한 제자는 스승한테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 일을 말했다. 이번에는 스승이 이렇게 말했다.
“최고급 보석상에 가서 값을 매겨 보거라. 이번에도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된다. 내 말을 명심해라.”
제자는 보석상에 갔다. 보석상이 돌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300만원에 사겠다고 했다. 제자가 거절했다. 그러면 500만원 주겠다고 했다. 역시 거절했다. 보석상이 화가 나서 원하는 가격을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물론 제자는 그 돌을 팔 수 없었다. 그는 돌을 가지고 스승에게 가서 말했다.
“이 돌을 글쎄 5백만 원이나 주겠다는 데요, 스승님 팔아도 좋을 것 같은데요.”
스승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내가 이 일을 시킨 이유를 알겠는가? 보석도 볼 줄 아는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사람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석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귀중한 보석임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귀중한 보석을 시련과 연단을 통해 다듬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초라한 현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내 안에 값진 보석을 발견하고 다듬어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청춘들아!
2010년경쯤으로 기억이 된다. 대한민국 청소년 3,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한 결과 83%가 미래에 대한 꿈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청춘들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컴퓨터 채팅이나 오락에만 빠져 있는 듯하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54%가 하루 3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고 했다.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락에 빠져드는 것이다. 오늘날대다수 현대인들은 시대적으로 가난과 억압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낮은 자존감이 내면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불행하게 살아간다. 어린 시절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역기능적인 요소들이 있는 사람이라도 성장과정에서 자신을 인정해주고 용기를 준 어머니 역할을 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 분을 대할 때마다 위로, 희망, 자신감이 생겼다면 그는 자신에 대한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다.
청춘들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그래서 상한 자아를 치유해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치유방법중의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인자한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해 가는 것이다. 그전에는 내 자신에 대해서 무시하는 냉혹한 부모의 입장에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인자하고 자비로운 부모의 역할로 바꾸어야 한다.
그전에는 자신의 자아를 무시하고 소외시켰다면 이제부터는 그 자아를 관용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양육해 가는 인자한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소외된 자아를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다독거리고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청춘들아!
우리나라사람들의 경우 보통 자신의 가치를 외형적인 것에 둔다. 이것은 집단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치유가 이루어져야 한다.
치유를 통해 외향적인 가치보다 나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치를 소중히 여길 때 삶의 근본적인 태도가 바뀌게 된다. 나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잘 아는데 밖의 것은 잘 모른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밖의 것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열심히 외적으로 밖의 것을 채우며 가꾼 모습이 실제 자신의 모습인데, 그것이 인간의 본능인 ‘욕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거나 깨닫고 떠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무의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그 뿌리에 의해 열매가 나와 어떤 나무인가를 알게 되듯 근본을 알 때 모든 것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자신의 가치는 우리의 재능, 미모, 재산, 지식, 건강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호의존성에서는 자신의 참 자아를 쓸모없다고 소외시키고 지나치게 외향적인 삶으로 치우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자기가 소외시킨 참 자아가 매우 고귀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등한시 하지 않고, 너무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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