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개방형·비영리 연합형·공공형 등 기금형 3개 유형 제시… 국민연금공단 참여에는 신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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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려면 원리금보장상품 중심의 운용에서 벗어나 장기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운용체계와 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
초고령사회에서 퇴직연금이 다층노후소득보장 체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적립금 규모 확대에 그치지 않고 운용체계와 지배구조를 함께 손질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자본시장연구원 남재우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4일 발간한 ‘초고령사회 다층노후소득을 위한 퇴직연금제도 개편’ 이슈보고서에서 퇴직연금 적립금이 500조원을 넘어섰지만 원리금보장상품 편중과 낮은 장기수익률, 형식적인 디폴트옵션 등이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퇴직연금의 정책 목표 역시 단순한 적립금 확대보다 장기간 안정적인 운용성과를 통해 근로자의 실질 연금자산을 늘리고, 이를 은퇴 이후 안정적인 소득으로 연결하는 데 둬야 한다고 제시했다.
핵심 개편 방향으로는 기금형과 계약형 퇴직연금의 병존을 제안했다.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계약형이 상당 기간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두 제도를 대체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하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금형은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하고 퇴직연금 관리·운용의 전문성을 높이는 한편, 집합운용을 통한 규모의 경제와 민간 금융기관 간 운용 경쟁을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OECD·IOPS의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은 기금형 제도의 주요 원칙으로 ▲수탁자책임과 적격성 ▲투명성과 정보공개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이해상충 관리 ▲책임성과 규제 준수 ▲회원 권익보호와 민원처리 등 6개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영국과 호주가 주요 사례로 꼽혔다. 영국의 마스터 트러스트는 독립이사와 독립 의장, 감사·위험관리·투자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호주 Superannuation 역시 노동자·사용자 대표 이사회와 독립이사, 위험·준법위원회, 감사위원회, 투자위원회 등을 운영한다.
특히 호주는 기금 간 경쟁 과정에서 대형화가 진행되면서 기금 수가 2017년 219개에서 지난해 6월 말 97개로 줄었다. 보고서는 운용규모가 커질수록 장기수익률이 높아지는 경향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2012년 일본에서 발생한 AIJ 사건은 기금형 제도의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위험 사례로 제시됐다. 당시 퇴직연금기금 자산의 약 90%가 손실됐으며, 이후 일본은 자산운용과 사후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 기금형 3개 유형 제시…국민연금공단 참여에는 신중론
국내에서는 2022년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인 ‘푸른씨앗’이 도입되면서 기금형 퇴직연금이 실제 운영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사정 공동선언에서는 향후 기금형 퇴직연금을 금융기관 개방형·비영리 연합형·공공형 등 3개 유형으로 구분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비영리 연합형은 산업·직종·단체 등을 기반으로 공동 가입 기반과 대표성을 갖춘 비영리 수탁법인이 운영하는 방식이다. 규모의 경제와 근로자 연대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집합운용DC(CDC) 제도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금융기관 개방형은 금융기관의 전문적인 운용 역량과 기금 간 경쟁을 활용해 장기수익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만 계열사 상품 편향 등 이해상충 가능성은 수탁자책임과 투명한 공시를 통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공공형은 중소·영세사업장의 퇴직연금 사각지대를 줄이고 안정적인 수급권을 확보하는 데 목적을 둔다. 성과 역시 기금 규모나 수익률만으로 판단하기보다 가입률과 적립 지속성, 비용, 수급권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연금공단의 퇴직연금 시장 참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국민연금기금과 DC형 퇴직연금은 운용 목적과 허용위험이 달라 동일한 포트폴리오로 운용하기 어렵고, 참여하려면 별도의 운용조직과 전문인력, 독립적인 운용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이 퇴직연금 수탁법인의 OCIO 운용사로 참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OCIO가 민간 자산운용 시장이라는 점에서 공공기관의 참여가 민간시장을 구축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 계약형도 운용체계 손질…“실질적인 노후소득 증대가 목표”
보고서는 기금형 도입만으로 현행 퇴직연금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의 운용 효율성을 함께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계약형 DB형에서는 적립금운용위원회와 적립금운용계획서(IPS)의 실효성을 높이고 OCIO 방식의 일임위탁을 전면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DB형 적립금은 기관자금 성격을 갖는 만큼 개인투자자와 동일한 운용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OCIO를 활용한 DB형 적립금 운용에서는 임금상승률에 따라 증가하는 연금부채와 자산수익률 간 격차를 관리하기 위해 자산부채관리(ALM)에 기반한 자산배분 역량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DC형은 현행 사전지정운용제도를 실질적인 디폴트제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입자가 직접 선택해야 하는 ‘opt-in’ 방식에서 비선택자의 자산이 자동으로 장기 분산투자되는 ‘opt-out’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디폴트옵션 적격상품도 TDF(Target Date Fund)와 TRF(Target Risk Fund) 등 장기 자산배분펀드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비용·성과·위험에 대한 공시와 사후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퇴직연금 개편의 궁극적인 목표가 기금형이라는 새로운 제도 자체를 도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실질적인 노후소득을 늘리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기금형과 계약형이 각자의 장점을 바탕으로 경쟁하면서 전문적인 자산배분과 수탁자책임을 통해 장기 운용성과를 높이고, 이를 안정적인 연금급여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향후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 역시 상품 판매나 단기수익률 중심에서 지배구조와 자산배분, 위험관리, 비용, 장기 운용성과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결국 초고령사회에서 퇴직연금의 역할을 강화하려면 원리금보장상품 중심의 저축형 운용에서 장기투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기금형과 계약형의 장점을 살리고, 수탁자책임과 전문적인 운용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일요주간 / 김완재 기자 ilyoweekl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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