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소주성 정책이 소상공인들 벼랑 끝으로 내몰아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1-05-21 09: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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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소상인들이 장사를 포기해 임대 점포가 늘어나고, 주변 건물에 빈 상가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주요 일간지마다 사회면 톱기사로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 현주소를 일깨워 보이는 이 기사를 접하는 나는 무척이나 염려스럽고 답답하기만 하다.

수십 년 동안 장사를 했던 점포의 문을 닫은 한 후배는 더 이상 소상공인이기를 포기했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매출이 급감하더니 코로나까지 겹쳐 급기야 장사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30여 년 동안에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 준 매장 집기들을 중고 집기상회에 팔며 한숨을 쉬던 날. 그를 불러내 술을 마셨다. 그날 밤 우리는 다소 취했다. 그의 울분과 한숨은 비논리적이었다. 그리고 비논리적이기에 듣는 나도 복장이 터졌다.

내가 장사를 접고 내 처자식의 밥 세 끼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도대체 '소주성 정책'이란 말인가, 멀쩡히 잘하던 장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 이것이 과연 서민을 잘살게 하는 정책이란 말인가? 소주성으로 멀쩡히 장사하는 우리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모는 국가는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그 국가에서 개인은 무엇이고 가정은 무엇이며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개인의 삶을 제물 삼아 국가를 성장시킨다는 정책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현 정권이 고집하는 소주성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소주성 정책 때문에 하던 장사를 치우게 된 것이 문제다.

이런 넋두리가 그의 울분의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그의 울분에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기에 다만 술만 마셨다. 경제의 본질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서 탁상 논리보다 실물 경제가 우선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장사를 접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그 본질의 비논리성을 지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고통 앞에서 세상이 어떻고, 돈이 어떻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좋은 세상이 도래한다는 희망적인 말과 진부한 잠언은 그야말로 위선이거나 사탕발림일 수밖에 없다. 아직은 제도 안에서 밀려나지 않은 자신의 경제활동에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편이 그나마 정직할 것이다. 취거가 오를수록 술이 더 확 깨는 분위기였다.

그다음 날 아침 술이 덜 깬 채로 티브이를 보며 정신이 확 깼다. 대통령이 소주성 정책을 임기 말까지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겠다 발표했다. 그동안은 정책 초기에 나타나는 다소의 부작용이었지만 지금부터 서서히 정책의 효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곁들였다. 대체로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 시점을 분기점으로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는 게 상례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계가 위협당해야 멈출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여당 의원들은 소주성 정책이 이 시대에 가장 잘 맞는 정책이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반대의견은 거의 없거나 공론화되지 않았다.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통령의 미련과 집착에서 나온 말이니까,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는 것으로, 다들 알고 있었다.

이 시대의 소주성 정책의 성공은 수많은 소상공인을 제도 밖으로 추방해야만 가능한가. 혼심의 힘으로 장사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소상공인에게 최저임금을 급격히 상승시켜 업주나 고용인이나 다 어렵게 하는 정책, 그것은 다른 말로 구조조정이다. 이 급물살에 힘없는 소상공인은 이미 건너지 못하고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탁상에 앉아 집행되는 소주성 정책을 통한 구조는 명석한 논리를 갖는다. 이 정권은 그 경제 논리를 현 세태에 맞는 유일한 진리처럼 보고 있다. 그 누구도 아니라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경제 논리 때문에 제도 밖으로 추방된 소상공인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그들을 침묵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돈과 실물 경제의 관계는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미학적인 것도 아니다.

돈 몇 푼을 주며 다 함께 건너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코로나 물결로 세상이 이러니 정부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무조건 버티라며 홍수로 쓸려가는 이 물가에서 버티라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대체로 인간은 우선 돈 몇 푼에 감동하지 않는다. 마구 뿌리는 돈 홍수 속의 그들의 논리성은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한 미끼에 불과할 뿐이며 정치인들의 자기 정당화에 기여할 뿐, 물가에 남은 사람들 희망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오랜 코로나로 실물 경제의 불황으로 서민의 삶은 추춤거리며 팍팍해지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이 국민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처지를 답답해하고 있다. 정부가 이해받지 못한 까닭은 정책집행자들의 서민 삶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제 논리만으로 이 세상이 잘 돌아갈 것이라면 정치인이 왜 필요하고 정책집행자가 왜 필요하겠는가. 소주성 정책으로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환상은 시장 상황을 무시한 일방적 처사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성장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로 갈라졌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은 항상 서민의 주머니를 먼저 비웠고 가진 자들의 뱃살은 날로 두꺼워졌다. 서민의 삶을 향상을 위해 출범한 이 정권은 서민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서민들을 위한다는 그들은 서민의 영혼의 상실감을 주고 있다. 서민은 당장 돈 몇 푼에 매달리지만, 그들은 몇백억의 나랏돈을 자기 주머닛돈처럼 자신들의 지역구에 쓰고 있다. 그들은 겉으로 서민을 위한다지만 속은 다르지 않은가.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28억이다. 그 자산가들이 과연 서민의 삶을 알면 얼마나 알기나 한 건가. 그 자산가들 집행하는 정책이 과연 시장 논리와 맞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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