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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문재인 정권 4년 반 이상 경과 한 요즘 나는, 이 정권을 '아전인수'로 무장해 적과 싸우는 '박멸 정권'이라 규정하고 싶다. 이들의 아전인수 사고(思考)에는 '역지사지'가 없었다. 적을 호명해 척결하는 것, 즉 적폐청산으로 정당성을 쌓으려고 정권은 모든 정적을 바이러스, 박멸 대상으로 간주했다. 언술이나 행동, 민생정책의 본질이 그랬기에 국민은 정권의 확증편향 울타리에 갇혔다. 코로나 장벽은 백신과 복용 치료제 개발로 낮아지고 있지만, 집권층의 편집증 망탈리테 (정신구조)를 치유할 통치학적 백신은 어디에서 구하고 어떤 의료진이 치료할까 궁금하다.
인고의 터널은 끝없이 연장되었다. 잘못된 정책과 인사에 적어도 한번쯤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책엔 좋고 잘된 것만 있는게 아니라 항상 부작용, '의도치 않은 결과'도 수반한다. 현 정권은 그 보편적 법칙을 줄곧 부정했다. 마지못해 내놓는 해명도 자책 인정이 아니라 치졸했다. 변명 수준은 잘못된 것을 만회의 술수에 불과했기에 듣는 국민만 바보로 만들었다. 그들은 잘못된 사실을 사실로써 정립시키지 않고 그 사실을 대중의 정서속에 은폐시킴으로써 잘못한 정책은 교묘한 둔갑술로 위장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은 국민을 더 어렵게 했기에 기만술에 불과했고, 잘못된 정책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은 누구를 위함인지 알 수가 없다. 정권은 이것 때문에 전 국민이 겪은 스트레스 총량을 어떻게 보상하려 하는가.
거대 여당의 집단 포화는 새벽이 밝자마자 선전포고 없이 개시됐다. 정권 나팔수인 공영방송, 정권 지킴이 공수처의 개인 통화사찰, 여권 고위층 인사의 야권 갈라치기 전술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 무차별 폭격을 했다. 이것은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정권 홍위병들의 대통령 지키기가 주목적이었다. 지지율 40%의 대통령이 그동안 무얼 잘못했기에 벌써 대통령 지키기를 하는지 국민은 알 수가 없다.
여당은 대선이 지면 문대통령을 지킬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내 편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감옥살이하는 경남지사도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며 감옥에서 내 편들에게 절실히 외쳤다. 대통령이 외롭고 안쓰러워 지키는 걸까? 지금 외롭고 안쓰러운 건 코로나에 시달려 목구멍 풀칠이 막막한 국민들이 더 외로운데 말이다.
적수와 경쟁자에 대한 뒤틀린 경계의식과 아전인수식 확증편향은 과거 군사정권이 이들에게 남긴 저항적 생체지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과거 80년대 청년시절, 군사정권이 가한 물리적 폭력이 이항대립적(異抗對立的) 민주신념의 절대화를 가져다주었기에, 그들은 "우리들의 '민주'는 순도 백프로"다 라는 강박에서 한 치 물러섬이 없다. 그러기에 타협도 양보도 없다. 적수의 비난과 경쟁자의 도전은 구악(舊惡)과 구태(舊態)로 다 적폐라는 확증편향의 생각이 지배한다. 오직 자신들만이 하층과 약자를 위한 정의의 사도라는 착각으로 정치를 하며 수반되는 부작용은 일시적 현상으로 시간이 해결한다는 비이성적 신념이 스스로를 올 매였다. 그들은 사회 기득권 세력과 경제계 엘리트 카르텔은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며 척결을 위해 마이웨이 정치를 하며 역지사지는 없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국민들이 아우성이지만 부동산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행정력을 동원, 종부세를 두 배나 올리며 국민들 호주머니를 유린했다. 어디 그뿐인가, 토지 소유 금지를 주장한 '헨리 조지'를 되살렸고 "싸움이 격렬할수록 승리는 빛난다"는 '토마스 페인'의 철 지난 급진사상을 액자에 걸고 정치를 했다. 기가 막힌다. 이게 과연 자유민주주의인가?. 펜데믹으로 일자리는 고갈되는데, 기업을 움츠리게 하는 기업규제 3법은 통과됐고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도 통과되었다. 심지어 노동이사제도 법으로 강제하게 만들었다. 해고노동자가 노조로 귀환해 자해라도 한다면 고용주는 처벌 대상이다. 문명과 자본의 구조 법칙이 완전히 뒤바뀐 AI 시대에 의기양양하게 휘두르는 현 정권의 1980년대식 생체지식은 대한민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갔다.
어떤 권력이든 절대 권력은 일란성 쌍둥이다. 과거 군부독재가 그랬듯 타협과 양보는 그들 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정치에 타협과 양보는 만인을 이롭게 하는 지혜이거늘 이들은 자신들만의 이상적 민주 틀에 갇혀 꼼짝달싹 않았다. 절대 관념의 신봉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최고의, 최후의 관념론 군주국이었던 조선 시대 벼슬아치의 정치 형태와 닮았다. 노론(老論)영수 우암 송시열의 존주론(尊周論)은 서구 관념론의 원조인 헤겔(Hegel)을 능가한다. 그가 쓴 법철학에서 "국가는 역사의 구현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저술은 그래도 헤겔은 충돌하는 시민주권의 조정기구(의회)가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조선의 노론은 만인을 강상명교(삼강오륜) 울타리에 가뒀다. 국민을 그들의 민주 관념에 가둔 현 정권의 망탈리테다.
노론의 원혼(寃魂)이 지금 시대에 옮겨붙었는가?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무사고(無思考)가 원천이다. 전직 대통령이 잘못된 애국심 하나로 모든 일탈을 치장했듯이, 현 정권은 자신들만의 왜곡된 민주와 정의가 올바르다. 외치며 독선의 길을 가고 있다. 여당ㆍ야당은 정쟁의 모든 사항에 단골 메뉴인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라는 협박을 후렴으로 달고 있다. 이 말은 내 편이 더 많다는 전략적 선전에 불과하다. 이때의 국민은 허수아비가 되며 이 협박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에 불과하다. 이 파시즘은 국민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존중하는 척하며 바보로 만들어 갔다. 정권이 국민의 심판을 앞세우며 역사의 심판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면, 현실은 저만치에서 헤매고 사고(思考)없음이다.
대선 민심이 싸늘하다. 여당은 자신들이 사고(事故)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가, 연일 읍소하며 쇄신을 말하고 있다. 표를 의식해 묻지 않았는데 자신들의 잘못을 고해성사라도 하듯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진리가 있다. 어제는 아전인수로 세상살이를 했다 해도 내일 삶을 생각한다면 오늘 필요한 건 역지사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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