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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승용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담양 녹죽원은 어떤 모습의 소리를 간직하며 나를 부를까. 가만히 귀를 씻고 대나무가 말하는 자연의 소리 여름의 소리를 들으러 소리 산책을 했다. 빛이 차단돼 깊이 갈수록 짙은 음영이 깃들어 있는 숲속엔 대나무가 군무를 추면 초록 소음이 허공에서 흩어진다. 귓전에 '스르르' 했다가 어떤 때는 휘파람 불듯 '휘이~~' 하는 댓잎이 서로 몸을 비비며 바스러지는 소리. 내 귓속은 세속의 소음과 조금씩 멀어졌고 자연의 소리로 충만해 있다. 숲의 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나무와 새가 자연의 말을 걸어온다. 자연의 소리에 누(累)가 되지 않게 발걸음을 맞추다 보니 나도 자연 일부가 된 듯 차분해지고 세간 소음에 무뎌 있던 귀의 들림이 서서히 열렸다.
대나무 숲 군락지인 죽녹원이 동양미적인 것을 간직한 곳이라면 '메타세쿼이아랜드'는 이국적인 풍광을 간직한 곳이다. 입구에는 영화 드라마 각종 광고 촬영지로 자리매김한 곳이라는 안내판이 길의 아름다움을 알려줬다.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하듯 이어진 초록 숲에 들어서니 눈이 시원해질 뿐 아니라 발도 편안함을 느낌으로 몸과 마음이 절로 즐거웠다. 비가 내린 후 더욱 푹신해진 황토 바닥, 끝없이 이어진 가로수 길을 걸으며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주변 풍광이 어우러져 운치가 일품이다. 흡사 내가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여주인공과 함께 걷는 착각에 잠시 빠졌다. 맨발로 걷기 좋은 황톳길은 2Km 길이로 조성되어 산책 삼아 숲길을 가볍게 걸으며 황토를 밟으니 땅 기운을 흡수한 내 몸은 작은 우주를 만난 듯 기분이 상쾌해 여행의 피로도 잠시 잊혀졌다.
관방제림은 조선 인조시대에 홍수로 피해 보는 인근 가옥을 위해 당시 부사였던 성위성이 인위적으로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숲길이다. 성위성은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담양천 변을 따라 다양한 수종의 아름드리 320여 나무가 조성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해 있었다.
내친김에 담양에 숨은 듯 자리한 천년고찰 연등사도 들렸다. 일주문 부근에 닿으니 물소리가 우렁차다. 장마로 풍부해진 수량이 폭포를 이루고 있다. 천년의 고찰을 지킨 지장보살 입상과 연등사지 삼층 석탑이 호위한 노천법당에 이어 영화 '전우치'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동굴법당'도 살펴보았다.
전우치가 곡차를 훔쳐먹던 여우를 살려주고 여우로부터 배운 도술로 깨쳤다는 이야기는 전설이라기보다 논픽션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굴법당에서 잠시 눈 감고 귀 기울이니 여우 대신 풀벌레 소리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게 자연의 소리다. 보는 것 익숙해져 놓치고 있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치유받으며 감수성을 회복하는 걷기 여행, 장마로 연일 비가 내리다 잠시 갠 지난 25일 서걱서걱 흙 밟는 소리, 댓잎이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빽빽한 대숲에서는 '숲 멍'했고 물소리를 따라간 죽림 폭포에서 내리꽂히는 물살을 보며 '물 멍'의 시간을 가졌다.
2025년. 6월. 담양 숲을 다녀와 최철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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