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만화부 소녀가 시인이 되기까지, 『나의 모험 만화』 김보나의 일상 모험기

Interview / 이은화 작가 / 2025-12-01 11: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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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이은화
대담자: 김보나
▲ 김보나 시인

● 김보나 시인 ●시집 『나의 모험 만화』의 저자인 김보나 시인과 함께 했습니다.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한 뒤 이어 활발하게 작품을 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네. 활발하다는 표현보다는 열심히 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웃음)


● 시집 제목이 참 재미있는데요. 먼저 시집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 안녕하세요. 올해 4월에 『나의 모험 만화』(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한 김보나입니다. 제목을 이야기하시니 표제작인 「나의 모험 만화」를 쓰게 된 계기가 떠오르네요. 한창 시를 쓰고 배울 무렵, 다들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데, 나만의 색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잘 꺼내지 않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사각사각’ 써보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저는 말수가 적고 내향적이어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 거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만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죠. 만화부에 가입해 ‘딥펜’과 ‘잉크’를 사서 만화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게 더 익숙한 건 ‘글쓰기’였어요. 소심한 아이라도 연필 하나만 있으면 글쓰기의 모험을 떠날 수 있었고, 그 아이가 자라 이젠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쓰는 일 자체가 제겐 모험이라는 생각에서 ‘나의 모험 만화’가 탄생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요, 시집을 내고 난 뒤 아버지가 제게 물어보셨어요. “네 시집이 왜 ‘아동/만화’ 코너에 뜨니?” 인터넷 서점에서 ‘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데, 아마 제목 때문에 자동적으로 ‘만화’로 인식된 모양이에요. 제 작은 바람은 시집이자 만화책인 『나의 모험 만화』를 읽는 분들이 화자이자 주인공에게 이입해 자신만의 모험을 떠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시집에서 현실보다 훨씬 용감한 화자들의 모험을 보여주셨습니다. 「나의 모험 만화」에서 “모험의 끝은 친구를 만드는 일”이라고 쓰셨는데, 시집 출간 후 독자들의 반응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 ‘모험의 끝은 친구를 만드는 일’이라고 적고 나서 신기해했어요. 저마다 자신만의 항해를 하는 것이 삶일 텐데요, 저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모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는 걸 그 문장을 쓰면서 알게 되었거든요. 그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상상을 하며 그렇게 적었더랬죠.


그런데 시집을 내고 이런 일이 있었어요. ‘밤의서점’에서 낭독회를 했는데, 저는 문을 마주보고 앉아 있어 낭독회에 오시는 분들을 살펴볼 수 있었죠. 대부분 낯선 분들이었어요. 한데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대학 동기였죠. 꽤 오래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제가 SNS에 올린 낭독회 포스터를 보고 찾아와준 거였어요. 반가워서 그만 벌떡 일어났죠. 낭독회가 끝나기 전엔 ‘김보나 시인님의 팬인데요’ 하며 질문도 해주었는데,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가 어찌나 뭉클하던지……. 어릴 적엔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는 것만 생각했는데, 가까운 이와 다시 닿을 수도 있구나, 그런 걸 새삼 배우게 되었어요.


● ‘시집’과 ‘만화책’은 서로 거리가 먼 장르 같은데, 오히려 제목이 밝고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만화’라는 형식이 시 쓰기에 어떤 자유를 주었나요?

▶ 만화는 이미지와 활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매체예요. 시는 활자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예술이고요. 표제작의 경우 시로 만화를 표현하려고 하니 만화의 매력인 ‘칸’이나 ‘지시문’, ‘말풍선’ 같은 것을 어떻게 옮겨 올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정형화된 운율의 장르를 쓰는 사람들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 평소에 쓰지 않던 단어를 써보거나, 인식의 확장을 경험할 때가 있잖아요. 만화라는 장르의 상상력, 화자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지시문 등의 상상력을 시 쓰기에 적용해 보니 평소에 쓰지 않는 방식으로 마음껏 써볼 수 있었어요. 그런 게 형식이 주는 자유가 아닐까요. 

 

▲ 첫 시집을 쓴 영감의 원천을 발표하는 '소스 리스트'에서 여름의 독자들과 함께(재미공작소).


● 표제작 「나의 모험 만화」를 보면 시집 전체가 ‘모험’을 다루지만, 그것은 외부보다 내면과 관계의 여정으로 읽힙니다. 선생님께 ‘모험’은 무엇인가요?

▶ ‘모험(冒險)’은 ‘무릅쓸 모, 험할 험’ 자를 쓰는 단어인데요. 검색해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함’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우선 살아 있다는 게 모험이고요, 글을 쓰는 게 모험이란 생각이 들어요. 둘 다 쉽지 않지만, 실패를 무릅쓰고 나아갈 용기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제 화자들이 저보다 용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나의 글을 마치려면 쓰던 시점보다 더 나아가 있어야 하니까요.


● 선생님의 시들은 ‘뜯지 않은 택배’, ‘토끼 돌보기’, ‘친구 만들기’ 같은 평범한 일상이 모험이 됩니다. 이런 순간들이 시가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 일상 속의 저는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에요. 요즘 유행하는 ‘브이로그’를 찍는다면 재미없는 영상이 남을 거예요. 택배도 바로 정리하지 못해 쌓아 두고, 누군가에게 말 걸기 전에 깊이 주저하고, 해외여행도 많이 가보지 못한 사람이지요. 다만 평범한 일상에 호기심을 더할 때 시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렇게 택배를 쌓아둔 사람을 바깥에서 보면 어떤 그림일까?’라는 궁금증에서 문화일보 등단작 「상자 놀이」가 나왔어요. 새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저 애는 왜 수영에 빠졌을까?’를 궁금해하다 「물가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를 쓸 수 있었고요. 록 페스티벌에 가서 처음 보는 밴드에 푹 빠진 다음에 ‘저 밴드 공연을 다시 보려면 어떻게 하지?’를 상상하다 「히츠지분가쿠 보컬과 결혼하려면」이 완성되었지요. 자신의 일상을 낯설게 보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을 궁금해할 때 일상이 시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황차의 별」의 차 마시는 장면이나 「차이나타운」의 만두 장면처럼, 음식과 먹는 행위가 깊은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선생님께 ‘먹기’와 ‘시 쓰기’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 음……먹어야 시를 쓰죠. (웃음) 보통 맛있는 걸 먹을 땐 혼자가 아니잖아요. 맞은편에 좋아하는 사람, 편한 사람, 혹은 어려운 사람을 두고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식사의 과정이지요. 어떤 음식을 보면 함께 먹었던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저에게 시 쓰기는 누군가 남긴 표정, 말투, 뒷모습을 생각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어서 자연스레 음식이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 시를 통해 용기와 회복을 전하고, 작품 속 용감한 화자를 통해 시인도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시의 치유적 기능과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보시나요?

▶ 이런 질문을 받으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데요. 저는 출퇴근길에 시집을 꺼내 읽었어요. 단 몇 줄 읽었는데도 몇 정거장이 흘러가 있었고, 지하철을 탈 때의 저와 내릴 때의 저는 분명 조금 달라져 있었어요. 설명하긴 어렵지만 세상이 좀 더 제 색깔을 되찾는 느낌이었어요. 문장이 남긴 이상한 감각이나 여운을 곱씹으며 걸으면 집과 회사에 금세 도착해 있었죠. 문학은, 특히 시는, 읽는 사람에게 ‘현재’를 되돌려 주는 것 같아요. 짧은 문장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연습을 많이 하면, 눈 깜빡하는 순간 흘러가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꼭 실물 책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에서 이북을 빌려 읽거나, ‘우시사’ 같은 시 메일링을 통해 시를 접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등하굣길이나 출퇴근길에 시를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 지금까지 시집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일상에서 개인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시 쓰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듣고 싶습니다.

▶ 한때는 ‘모닝 페이지’ 작업을 열심히 했어요. 눈을 뜨자마자 무조건 한 페이지의 글을 쓰는 건데요. 글쓰기 습관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요즘은 만년필로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예전엔 노트북과 휴대폰으로 글을 썼는데, 긴 호흡의 글을 쓰기 좋다는 장점이 있지요. 만년필로 쓰면 손이 아파서 길게, 오래 쓰긴 어려워요. 대신 한 호흡에 한 문장을 쓰면서 자신만의 리듬을 개발하기에 좋습니다. 노트북으로 쓸 땐 자료 조사를 핑계로 인터넷 서핑에 빠지기도 쉬운데, 백지를 앞에 두고 펜을 들고 있으면 딴짓을 하기 어려우니 그것도 장점입니다.

▲ 봄날 경복궁에서, 친구가 선물해 준 시집의 표지 색이 같은 꽃다발을 안은 모습



● 2022년 「상자 놀이」로 등단하실 때 "여백의 미와 리듬감"을 인정받으셨죠. 등단작은 지금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당시 갑상선암 진단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제게 「상자 놀이」는 완성한 뒤에 ‘아, 나 성장했구나’를 실감했던 작품입니다. 말로 전하긴 어렵지만, 그간 써온 작품들과는 여러모로 달랐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표현력도, 발전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떨리지만 자신 있게 신춘문예에 도전할 수 있었고, 언제나 그랬듯 (뽑힌 적이 없으니까) 낸 사실을 잊고 지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놀라고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첫 시집을 묶을 때, 조명 시인님께서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요. 등단작을 빼고 시집 원고를 묶어 보라는 이야기였는데요. 보통 등단작이 그 사람이 쓴 글 중에 가장 돌올한 작품이니까, 그 작품에 기대지 않고도 빛날 만큼 원고를 갈고 닦으라는 말씀이었죠.


그래서 등단작을 넣지 말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상자 놀이」를 살펴봤어요. 그때 쓴 수상소감도 다시 읽어보았죠.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한 주 지나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더랬죠. 「상자 놀이」의 테마인 ‘빛과 어둠’이 저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어요. 제가 2022년에 등단했으니 시집을 낸 지금은 3년이 지나 있었어요. 첫 시집이니, 초심을 찾자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저를 감쌌던 빛과 어둠에 대해 다시 말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죠. 그래서 저의 투병일지 같은 「춘일광상」과 「「미친 봄날 생각」」을 꺼냈어요. 병상에서 썼지만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필사하며 퇴고했지요. 그리고 시집에 넣기로 결심했어요. 저와 같은 병을 가진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길 바라면서요.


● 앞으로 독자들과 어떻게 만나고 싶으신지,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제게 야망이 있다면 ‘한국문학의 다이소’가 되는 것인데요. (웃음) 언제 가든 부담 없는 곳이잖아요. 생필품을 사기에도 좋고요. 제 글을 읽고 문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야망이 있다면, ‘전국 팔도에서 낭독회를 여는 것’입니다. 오는 12월 14일에는 대전의 ‘버들서점’에서 낭독회를 열 예정이에요. 아직 ‘서울, 동인천, 대전’에서만 해 봤는데, 더 많은 독자들과 목소리와 시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는 낭독회에서 시인들이 직접 읽어주는 시를 들으며 시를 쓰게 됐어요. 아마 그때 사람들이 나누어준 목소리, 리듬이 몸에 새겨져 저절로 흘러나오게 된 것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시를 읽고 싶기도 하고, 제 시를 읽어주시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더 많이 듣고 싶어요. 언제 어디서든 환영이니, 저를 불러주세요!


● 『나의 모험 만화』는 일상의 발견에서 존재의 긍정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첫 시집이 도착한 이 지점에서, 다음 시적 모험은 어디로 향할까요? 말씀 들으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첫 시집이 다양한 화자를 내세워 ‘모험’이라는 테마를 강조했다면, 두 번째 시집은 한 차례 모험을 거친 화자가 성장해 ‘나’의 목소리를 찾아 나가는 여정을 떠날 것 같아요. 흔히 익숙한 공간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여행이라고 하죠. 도서관에서 세계의 문학을 읽으며 자란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작가가 되었으니, 작더라도 저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찾아 들려드리고 싶어요. 웃고, 울고, 놀라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 이은화 작가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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